내 안의 미해결 과제들과 친해지셨나요? 최근에 쌓였던 것들부터 차근차근 풀어주다 보면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까지 올라올 거예요. 상담실에서 30, 40대 이상의 성인 분들도 인생을 살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꺼내보시는 때도 많아요. 여러 이유에서였겠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람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거나 가벼워지면 그때의 일을 말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옵니다. 믿을만한 누군가에게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짐을 털어버리고 싶고,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도 해요. 내가 이런 경험을 했어도 나의 존재가치는 변하지 않음을 느끼고 싶은 것 같아요.
저도 스무 살에 심리학과에 입학하고, 무수히 많은 상담 장면을 배우고,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나처럼 힘든 사람을 돕겠다고 했지만, 우선 제가 먼저 살아야겠었거든요. 상담사가 건강한 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기도 했고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제가 갈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 수업 중에 상담 장면을 보여주는 시연이 필요하면 어느 때고 제일 먼저 손을 들고나가서 내담자를 했어요. 교수님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대해 알아도 상관이 없었어요. 외국인 교수님을 초청해서 배우는 상담학회에서도 기회만 있으면 내담자 신청을 하고 상담을 받았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도 저를 분석하고 판단한다 해도 저는 신뢰하는 상담사에게 가서 상담을 받고 제가 건강해지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수련생에게 부담되는 금액일지라도 개인상담, 집단상담을 참여할 수 있는 대로 받았어요. 그만큼 간절하게, 저는 행복해지고 싶었나 봐요.
그럼에도 늘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수많은 상담을 경험하면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 한 구석에 놓였던 이야기들이 퍼즐이 맞춰지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운 순간들을 경험해도 시간이 지나면 도로 아미타불 같은 거예요. 물론, 그 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생각은 들지만 다시 나를 사랑하기가 어렵고, 여전히 오리무중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참 지겹다. 지겹여, 그렇게 상담을 받고도 나는 안 되는구나. 나를 사랑할 수가 없구나. 얼마나 더 해야 되는 거니?' 하며 답답한 마음에 저를 비난했어요. 제게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분들이 더 건강해져서 종결을 하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마음 한 구석에는 포기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더구나 엄마이기에 자유롭지 못했고, 상담도 겨우겨우 일주일에 한 번 파트타임으로만 명맥을 유지해야 했어요. 결혼하기 전, 나로 건강해졌다며 태교도 정말 헌신을 다했는데 엄마가 되자마자 보름도 안돼서 아기에게 소리를 질러버리더라고요. 엄마로 살면서 아이들에게 건강하지 못한 모습일 때는 책임감이 부담감과 압박으로 다가와 좌절도 심했어요.
근데요. 삶이 참 신기해요. 30대 중반,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하락곡선을 겪으면서 오히려 제가 단단해졌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할까요..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니까 정신력이 강해지기도 하고, 무서우면서도 살 궁리를 찾아내기도 하고요. 저를 지켜야겠다는 무의식이 발동됐나 봐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 스치면서 무수한 상담들 속에서도 왜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었는지 깨달았어요. 내가 나를 깨진 항아리로 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밑 빠진 독 물 붓기처럼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