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해결 과제를 풀어가 볼 시간이에요. 미해결 과제라 하면 상대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에 남은 이야기와 감정, 행동 등을 말해요. 살면서 '이렇게 말해볼걸, 왜 그렇게 못했지..' 내내 후회로 남는 일들 있잖아요. 또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거나 그 상황에서 상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압도되어 눌려져 있을 수도 있어요. 마음은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아요. 올바르게 처리되어 정화되기를 바라고 있죠.
상담을 오래 받은 분들은 상담 시작하기 전부터 발견한 미해결 과제들을 풀어놓으세요. 어렵고 무거운 느낌이 아니라 "이번에도 '요놈 잡았다'를 알아차렸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불안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어요."라고 표현하세요. 이분들도 상담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자신을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나를 제대로 보면서 어떤 사람인지 확신을 갖게 되고,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올라왔을 때 '아하!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었구나'를 깨닫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해요. 그다음에는 더 이상 미해결 과제가 두렵지많은 않죠. 풀어갈 수 있으니까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실마리처럼 베베 꼬여있는 털실이라도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들을 알아차리며 집중하고 바라보면 결국은 풀어진다는 것을 알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상담사가 없어도 휘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마음 이야기를 접속하고 해결점을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요. 혼자서 미해결 과제를 풀어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상담실이나 저 개인적으로 어떻게 풀어왔는지 알려 드릴게요.
미해결 과제가 상대적으로 덜 쌓여있는 아동들을 상담하면 회기도 짧고 효과도 훨씬 좋아요. 다양한 아이들 중에서도 입은 꽉 다물고 있고, 눈빛은 저를 경계하면서도 제대로 보지는 못하는 모습이 있어요. 표정도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고요. 어떤 일에서든 마음이 닫힌 거겠죠. 그럼, 먼저 감정카드로 시작해요. 감정단 어가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는 60여 장의 카드를 건네고, 이 중에 요즘 이런 마음이 있었는지를 골라보게 해요. 어떤 아이는 처음부터 30장의 카드를 골라요. '화나다, 서운하다, 곤란하다, 밉다, 속상하다, 걱정된다, 짜증 난다.. '등등의 카드가 골라지고, 어떤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들어봐요. 그리고, "속상할 만했겠다, 그 친구가 무례하게 행동했네." "엄마, 아빠가 큰 소리로 혼내셔서 말도 못 하고 무섭고 억울했겠다."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러면 점점 눈빛이 반짝이고, 저와 눈을 맞추는 횟수가 늘어나요. 지금까지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으니까요, 그 반가움이 얼굴에 드러난답니다.
마음이 열린 아이는 다음에 미술작업이나 놀이 작업을 하면서 미해결 과제를 완료하려고 해요. 크레파스로 종이에 자기를 괴롭힌 친구를 다른 캐릭터로 표현해서 혼내주는 장면을 그리기도 해요. 자기에게도 힘이 있는데 참아준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죠. 더 심하면 인형으로 만들어서 그 친구를 혼내주는 장면도 연출해요. 지금은 아이가 공격적이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친구에게 화가 났고, 마음이 아팠었다는 것을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예요. 그 마음이 공감받고 치유되면 현실에서는 실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면요, 어김없이 다음 시간에 올 때는 아이가 신이 나 있어요. 그동안에는 참기만 했는데 하지 말라고 말도 하고, 사과도 받아냈대요.
아동기는 그래도 순탄한 편이지만 격정의 사춘기를 품은 청소년기가 되고, 가족이나 주변 상황들이 평탄하지 않을 때도 많이 있어요. 성인들도 여러 역할과 책임감 등이 엮이면서 마음속의 미해결 과제를 푸는 것만으로 상황이 쉽게 바뀌지 않아요. 하지만, 미해결 과제를 해소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존재로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순간순간 알아차림으로 현명한 선택을 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으며 상담을 해요.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의미를 두고, 감정이 느껴지고, 에너지가 쓰인다면 과거의 경험에서 이어질 수 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긴장이 되고, 눈치를 많이 살폈어요. 특히, 여자 선배들이나 언니들에게는 한 살만 위여도 깍듯이 존댓말을 쓰고, 거리를 두다 보니 상대방 쪽에서도 편하게 지내질 못했어요. 저도 말도 놓고, 잘 지내고 싶은데 나는 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거리를 두는지 답답했답니다. 상담을 받으며 현재의 답답함을 이야기하다가 "과거에도 이런 답답함이나 여자 어른에 대한 무서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라는 상담사의 질문을 받으면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엄마가 차가웠어요. 여동생 2명과는 달리 저에게 웃어주지도 않으셨고, 살갑게 표현해 주지도 않고, 칭찬을 받은 적도 거의 없죠. 어렸을 때는 그래도 희망을 갖고 엄마에게 잘했다고 인정받고 싶어서 받아쓰기 공책, 100점짜리 시험지를 내밀면 "알았어."라는 차가운 반응만이 돌아왔어요. 심지어 제가 첫째 임신했다고 엄마에게 제일 먼저 알렸을 때도 엄마의 반응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병원 가서 확인한 거야?"였거든요. 엄마에게 있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반응을 받을 때마다 너무도 차갑고 매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가가기가 어려웠죠. 다가갔다가 상처 받을 게 뻔했으니까요. 엄마와의 장면에서 느꼈던 저의 소외감, 외로움, 좌절감 등을 알아주는 거예요.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그 마음도 알아주는 거죠. 그 아이가 그런 마음들을 안고 혼자 속상했을 텐데, 잘 살아왔었구나 하며 지지도 보내주고요.
이런 작업을 거치고, 마음속의 감정들이 해소되고 나면 여자 어른들에 대해 가졌던 저의 두려움, 불안들이 서서히 녹아요. 현실에서도 여자 어른들을 만나서 긴장되면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예전에 엄마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들은 이제 괜찮고, 이 분들은 또 다를 것이라고 저에게 알려줍니다. 다가가 보고 싶은 만큼 용기를 내기도 하고, 실험을 해 볼 수도 있죠.
이렇듯 미해결 과제는 지금과 과거의 어느 지점이 영향을 미치는 연결고리예요. 이 고리들을 풀어가면서 감추어 두었던 진짜 내가 세상과 만나게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