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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Nov 15. 2021

2년 만에, 초고를 새로 썼다

 2년 전, 빼빼로 데이에 두 번째 책을 계약했어요. 첫 번째 책 <화내는 엄마에게>라는 책도 세상에 꼭 알리고 싶은 꿈이었지만, 그보다 더 훨씬 오래전부터 꿈꾸었던 책의 계약이었어요. 바로, '알아차림'이에요. 상담사로서 기초를 세워 준 게슈탈트 상담심리의 중요한 개념이 '알아차림'이거든요. 만성 우울에 대인관계 문제가 심했던 저를 살려준 이름이기도 해요. 지금 여기, 이 순간 내 마음이 어떤지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이죠.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어렵게 마음을 풀어가려 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시각이 팽배했었기 때문에 마치 간증하듯이 이 알아차림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책을 한 권 내고 나면 다음은 더 쉬울 것 같았는데, 웬걸요. 초고를 쓰는 것만도 만만치 않았어요. 작가가 이 정도도 못 써서야 되겠어라는 말도 그렇고 저 스스로도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세상을 위해 책을 내야 한다는 소명으로 글쓰기 멘토 선생님께 매일매일 한 꼭지씩 메일로 제출하고 숙제 확인받듯이라도 장치를 마련했어요. 그렇게 35개의 꼭지로 초고를 완성했고, 출판사 100군데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첫 번째 책에서도 100군데 중 연락이 왔던 출판사 한 곳과 계약을 했기에 '아쉽게도 저희 출판사와는 함께 작업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거절 메일에 익숙할 만도 한데, 무뎌지긴 했지만 '윽'하는 소리와 함께 타격은 같았어요. 가족여행으로 중국에 잠시 나가 있을 때 메일이 도착했는데 로밍 상태가 좋지 않아 확인이 늦어졌어요. 기대 없이 열었던 메일에서 제가 알고 있던 출판사 대표님의 호의적인 답을 읽고는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요. 한국 오자마자 약속 날짜를 잡고, 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계약을 했어요. 저는 걱정이 많은 편인지라 결정에 애를 먹는 편이지만, 어떨 때는 마음먹으면 앞뒤 재지 않고 결정 내릴 때가 있어요. 실패할 때도 물론 많지만, 그래도 제 인생의 많은 항로를 바꾸어 준 특성이기도 하죠.

 그렇게 2년 전, 빼빼로 데이에 행복한 계약을 하고, 여기저기 알리고, 축하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문제가 생겼어요. 책의 방향을 의논하고, 초고를 수정해서 보내기만 하면 책은 나올 텐데, 초고 수정이 안 되는 거예요. '~다.'로 썼던 것을 '~입니다.'로 바꾸고, 조금만 손을 대면되는데 진도가 나가질 않았어요.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 거죠.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마음은 어떨 때는 급행으로 출발해서 달리고, 움직여야 할 때 절대로 꿈쩍도 하지 않아요. 하... 대표님과 약속한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만 가는데, 그 와중에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딸에게 선물한다고 책을 한 권 또 쓰고 있고요. 그러면서도 이 초고만은 거들떠지지도 않고, 간신히 마음을 잡고 손을 대도 한 장이 채 넘어가질 않았어요.


 정말 다행히 감사하게도 대표님께서 글은 억지로 써지지 않는다면서 저를 기다려 주셨어요. 그래도 제 마음이 절대로 움직이질 않으니 이번 생에서 포기해야 하나 했습니다. 강력한 효과를 주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 알렸어요.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하면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할 것이다 했죠. 하.. 그것도 통하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요? 이 마음이 왜 그랬을까요?

 그런 저를 붙들어 준 것은 개인상담, 집단상담 등 상담을 받은 내담자분들의 변화였어요. 알아차림을 알려드리고, 마음에 쌓였던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고, 상담받기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됐다는 분들의 편지와 감사인사와 확신에 찬 모습이 제게 용기와 힘을 주었어요. 그러면서 마음이 아파 고생하고 있는 분들이 보였어요. 그 아픔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상태가 얼마나 힘든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저라서 지체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알려드려야 한다고 마음이 움직였어요. 더 이상은 미루는 것이 기만이라 생각하고, 브런치의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매일매일 또 숙제하듯이 한 꼭지씩을 올렸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던 커다란 바위가 드디어 그 버팀을 이겨낼 0.0001의 힘이 가해지면서 움직인 거예요.


 딱 2년 만인, 2021년 빼빼로데이에 대표님께 메일로 새로 쓴 초고를 보냈습니다. 그동안 마음에 쌓여있던 짐이 날아간 듯 이제 저도 숨이 쉬어지네요. 저도 고생했다고 토닥여주고, 마음을 가벼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스쳤어요.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네 까짓 게 뭐라고 사람들 마음에 대해 쓰겠다는 거야? 전문가도 뭣도 아니잖아. 누가 너의 이야기를 믿어주겠어?'

 이 목소리가 이제야 들렸어요. 무수히 속삭여댔을 텐데 다행히 힘이 생겼는지 저 멀리 갔다 놨었더라고요. 저는 심리상담사이지만, 대학원 동기들은 모두 취득한 상담심리 전문가, 임상심리 전문가 타이틀을 따지 않았어요. 못했다가 맞기도 하지만, 제가 굳이 전문가 자격증을 따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기에 저는 '않았다'라고 생각해요. 가끔 강의 의뢰를 할 때도 전문가 타이틀이 왜 없느냐고 묻는 분들도 계세요. 상담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강사, 작가 등 저만의 길이 있었기에 위축되지는 않았지만, 심리 책을 쓸 때는 발목을 잡았나 봐요.


 한발 더 나아가, 자격증 따위가 아닌, 저 자신에 대한 신뢰였겠죠. '네 까짓 게'라고 생각하는 저의 깊은 수치심이 저를 꽁꽁 묶어놨을 거예요. 실제로도 책이 나온다면 전문가나 대가 선생님들께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내용이 별로라는 악플 같은 솔직한 리뷰와 반응들도 받을 거예요. 첫 번째 책에서도 그랬으니까요.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쓰지 못하게 했을 수 있겠네요.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어떤 일이 생길지는요. 하지만, 완벽한 책이 아니라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정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만을 생각할 거예요. 거짓말도 아니고, 꾸며서 쓴 것도 아니고, 제가 18년 동안 상담을 하며, 또 제가 성장하고 건강해지기 위해 몸부림쳐왔던 길의 이야기니까요. 저는 20년을 돌아왔지만, 다른 분들은 조금이라도 세상에 이미 있는 길을 찾으실 수 있도록 알려드려야 하니까요.

 2년 동안 마음은 너무도 괴로웠지만, 저의 수치심과 당당히 겨뤄온 시간이었어요. 다음번에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짜 움직여야 할 타이밍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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