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진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멋지게 꾸며놓고, 다음 부모님들의 필수 코스는 선물 고르기예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선물은 미리 구매해 놓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어 서둘러야 하기도 해요. 어렵게 준비한 선물들은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옷장이나 베란다 등에 꽁꽁 숨겨둬요. 12월 24일 밤이 되면 대단한 작전 하에 산타 할아버지가 주고 갔다는 설정과 연기까지 필수랍니다. 12월 25일 아침, 아이들의 함성 가득한 그 순간을 위해서요.
저희 집은 중 2인 첫째가 5학년 때까지, 4학년인 둘째가 작년까지도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신다고 믿었어요. 선물을 몰래 들여다 놓고 포장지도 마트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도록 따로 사서 포장해 둬요. 심지어 카드도 산타할아버지의 필체가 느껴지도록 영어로 흘려쓰듯 적어요.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들 머리맡에 놓고 나면 그제야 크리스마스 미션 완수입니다. 작년에는 둘째가 선물 받자마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잘못 줬다고 말해서 미션 성공의 기쁨과 아쉬움 가득이었더랬어요.
이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들. 우리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선물 미션과 함께 한 가지 더 해 보세요.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잠들기 전에 일 년 동안 아이에게 미안했거나 잘못한 일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해 주세요. 멋진 선물과 함께 마음을 어루만지고, 훗날 아이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뜬금없이 왠 사과지? 하실 수도 있어요. 아이의 마음에 남아있는 감정이 너무나 중요하거든요. 상담사들은 본인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어떤 직업군보다 필수예요. 완벽하게 건강해야 한다기보다는 현재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과거의 일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등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상담 장면에서 상담받는 분들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느껴지는 감정이 온전히 그분들을 위한 것인지 구별할 수 있어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집단상담, 개인상담을 받는 것이 필수랍니다. 이번 가을 학기에도 여러 상담을 경험했는데요, 늘 결론은 같아요. 상담사들의 상담도 지금 현실에서의 문제로 시작하지만, 연결되어 올라오는 감정의 뿌리는 대부분 영유아기부터 10대까지의 어린 시절이에요.
현재 나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어려운데 어렸을 때 친척집에 맡겨지고 불안했던 마음이 집에 돌아와서도 버려지지 않을까 두려움으로 남을 수 있어요. 늘 긴장이 많이 되고, 지적받을까 불안했는데 학창 시절에 도둑으로 몰리고 따돌림을 당하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살아왔더랬어요.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없는데 어려서부터 형제와의 차별대우와 무시를 받으며 살아왔었어요. 지금도 엄마를 보면 잘 지내고 싶다가도 화가 올라와서 살펴보니, 어린 시절 창피를 주고, 화 내고 무섭게 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떠올라서 힘들어해요.
이 시기는 부모에게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하고, 경제적인 뒷받침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아이들의 입장에서 자기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억울해도, 화가 나도, 속상해도, 미워도, 외로워도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야 할 수 있어요. 마음을 이해받고 공감받지 못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20여 년의 시간 동안 부모에게 돌봄 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억압된 마음 관리 시스템이 성인이 된다고 갑자기 작동이 잘 될까요?
마음의 원리 중 하나는 감정은 공감받거나 이해받지 못하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영국의 한 작가는 한순간이지만 강철 같다라고도 표현했어요. 어린아이들이라도 부모에 의해서 불안하고, 슬프고, 무섭고, 창피했던 마음은 안에 다 쌓여 있어요. 그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살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존재로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다고 느낀답니다. 공부를 잘해서, 심부름을 잘해서, 부모님 걱정 안 시켜 드려서 인정받으려 하거나 더 말썽을 피우고, 문제를 일으켜서 주목받으려고도 하죠.
특히, 10대 초중반 '내가 누구지?'라는 인생의 중대한 질문을 던지며 사춘기를 겪을 때 그동안 쌓아뒀던 마음속 감정들이 올라와요. 신체적, 정서적 혼란의 시기인 탓도 있지만, 아이 마음에 꾹꾹 담아놨던 감정들을 이제는 다시 보아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우선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이 마음에 응어리로 남지 않도록 보듬어 주세요.
부모님들도 사과를 하신다고 말씀하세요. 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부모도 사람이니 살다 보면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게 되는 순간이 있죠. 보통 부모님의 사과는 이렇게 전개가 돼요.
"아까 엄마 아빠가 화내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무서웠지? 너도 동생이랑 싸우고 말썽 부려서 더 혼나잖아. 그러니까 너도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행동을 잘해야 돼. 알겠어?"
지금까지 이렇게 사과하셨다면 안타깝지만 헛수고하신 거예요. 사과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이 풀릴까요? 부모님 마음 가벼워지시려고 하는 행동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사과는 받는 사람의 마음 풀어짐이 키포인트입니다.
"아까 엄마 아빠가 화내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큰 소리 나니까 무섭고, 불안했을 것 같아. 엄마, 아빠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너를 배려하지 못하고 이런 모습 보여서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엄마, 아빠가 잘 해결해 가는 모습 보이도록 노력할게. 엄마 이야기 듣고 하고 싶은 말 있어? 지금 마음이 어때?"
부모도 어찌 완벽하게 역할을 다 하고,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사과하며 살 수 있겠어요. 우리도 잘하려다 보니까 너무 애쓰다 보니까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 거죠. 아이들을 위하는 우리의 노력과 진심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과 함께 마음도 꼭 보듬어 주세요. 올 한 해 동안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기억하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속상하고, 미안하고, 화가 나고 불안했던 마음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해 주세요.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은 아이는 이 순간으로 자존감을 저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