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상담사 Uni Dec 20. 2021

사춘기, 부모에게 온 두 번째 기회

사춘기가 두려운 부모에게 05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면서 이렇게 공부했으면 뭐라도 했겠다 싶을 정도로 육아서를 파고들지 않으셨나요? 얼마 전에도 13살 아이가 아기 때 너무 유별나서 육아서 300권은 읽었는데 알려 준 방법대로 성공한 것이 거의 없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나왔으니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육아서를 공부하셨겠어요. 저도 돌 전까지는 잘 먹이고, 재우고, 발달할 수 있는 책을 읽고, 이후부터는 아이를 잘 키웠다는 선배맘들의 강의, 육아서를 열심히 쫓아다녔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은 지금, 현재를 살기에 해맑게 보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이 처음이다 보니 감각도 예민하고, 엄마, 아빠가 없이 홀로 살아갈 수 없으니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존의 두려움이 커요. 아이만 그럴까요? 이제 갓 엄마, 아빠가 된 우리들도 마음에 이 문장이 자꾸 떠올라요.


'내가 이 아이를 잘 못 키우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망치면 어떡하지?'

 성인 팔의 절반만 한 작은 아기를 안다가도 어디 잘못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고요. 아이가 열이 나고, 아토피가 있고, 다쳐도 내 탓인 것 같고,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보여도, 부족한 것이 보여도 내가 어떻게 해야만 될 것 같아요. 당연히 모든 것이 부모의 영향이 아님에도 그 시기에는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게끔 환경이 조성되었어요.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인 영향도 있고, 심지어 몸에서도 호르몬조차 아이만 보이게 분비되잖아요.  


 육아서마다 아이에게는 만 3세까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를 해요. 혼자서 앉고, 기고, 걷고, 뛰게 되며 뇌와 신체의 발달은 물론이고 정서적인 애착 관계의 기초를 쌓는다고 하죠. 저는 상담사라는 직업 덕택에 아는 게 병이라고 3년에 얼마나 집착을 했었는지 만 3세 생일에 큰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았어요. 이때 잘못 키우면 큰일이라도 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이라 잘 몰랐었으니까요.


 아이와 십여 년을 보내면서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말은 했지만 제 뜻대로 움직이길 바랬고, 그렇게 안 되면 달래도 보고, 회유도 해보고, 참다 참다 안되면  화내고,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며 왔어요. 한글을 배울 때, 빨리 떼어서 남들에게 보여주고도 싶었고, 초등학교에 가서 공부도 잘하고, 잘 키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어요.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면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기에 내가 더 정보를 모으고, 머리를 쓰고, 아이 마음을 돌려서 잘 키우면 될 거라 믿었죠.


 그런데,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알았어요. 제가 아이를 대했던 방식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존중이라 말할 수 없었는지를요. 아이 얼굴에 묻은 것이 있어서 떼주려고 하는데 아이가 손을 밀치며 찡그리고 짜증을 내더라고요.


'아, 내가 아이에게 떼어줘도 될지 묻지 않았구나.'    

 

 아이라고 생각해서 옷도 입히고 싶은 대로 입게 하고, 너를 위한 거라며 얼굴에도, 몸에도 막 손을 대고, 몸에 좋은 거라며 먹으라고, 먹지 말라고 강요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어요. 저의 방식으로 아이 마음에 억울하고, 속상하고, 화나고, 무서웠던 마음들 삼키며 살아왔었을지를요. 엄마, 아빠가 나를 버리면 안 되니까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치사해도 참고, 힘들어도 버텼을 순간들이 그제야 떠올랐어요. 아이에게 화 내도, 엄마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풀어주는 애교와 편지에 나름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젠 눈빛 레이더 제대로 날리는 모습에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저희 좌절하고 자책만 할 수는 없죠. 지금까지 보낸 시절에서 애쓰고 잘 해낸 것들은 저장하고,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상처 받은 부분은 사과해야 해요. 달라져야 할 것은 노력하면 돼요. 사춘기는 어쩌면 아이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용기 내어 알리는 시기예요. 엄마, 아빠에게 내가 더 이상은 이런 대우를 받고 살 수 없다, 나를 한 인격으로 존중해 달라, 하지만 아직은 흔들림이 많으니 좀 더 버텨달라는 메세지일 거예요. 특히 1~2년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돼요.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많다 보니 아이도 좀 풀어야 하잖아요. 더구나 뇌가 리모델링 중이라 합리적이지 못할 때도 많아서 부모 입장에서 기가 막힐 때도 많아요.


 아이 때 쌓인 게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난 수많은 분들은 결국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을 풀어내셨어요.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요. 엄마가 나를 맡겨두고 며칠이고 오지 않았을 때 불안했던 마음, 아빠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혼내고 때릴 때 수치스러웠던 마음, 형제자매와 비교당하며 무시받을 때 억울했던 마음들까지도 남겨진 이야기가 됩니다. 감정은 한순간이지만 강철같이 남거든요. 특히,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삶에서 길가에 뾰족 튀어나온 돌멩이처럼 내내 걸려 넘어져요.


 저는 이 시기가 부모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라 생각해요. 뇌가 리모델링 중이라 했잖아요. 아이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건강한 자존감을 세울 수 있는 기회요. 마음에 풀지 못하고 쌓아뒀던 감정들 보듬고 가벼이 출발할 수 있어요. 제대로 우리 아이의 진짜를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걸어가는지 보여줄 수 있어요. 부모님이 보아주는 대로 아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답을 찾아갑니다.


'나의 마음을 표현해도 되는구나, 나는 존중받는 사람이구나, 내 마음을 이렇게 조절해 갈 수 있구나. 나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사춘기가 힘들고, 두렵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충분한 의미가 있음을 알고, 우리 가 보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10년 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