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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Dec 24. 2021

어머니, 아이가 관심군으로 나왔어요

사춘기가 두려운 부모에게 11

 "어머님, 안녕하세요? 지금 잠깐 전화드려도 될까요?"


 첫째의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셨어요. 일단 마음이 철렁했어요. 그전에 일정 등 관련한 일은 문자로 처리하셨었기에 통화가 필요하다는 건 아이의 신상에 관련된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6년 내내 학교에서 문제나 어려움 없이 잘 지내왔던 아이였기에 짐작 가는 일도 없어서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얼른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아이에게 일어난 요즘의 변화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00이가 요즘 집에서 우울하거나 힘들어하는 점이 있나요? 걱정돼서 연락드렸어요"


  선생님의 이 질문에 저는 먼저 방어기제가 작동했어요. 엄마가 심리상담사인데 마치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럴 리 없어, 잘 지내고 있는데, 내가 캐치 못 했을 리 없는데..' 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긴장상태가 되죠. 선생님께서도 이런 저의 마음을 읽어주셨는지, 제가 상담사인 걸 알고 있고, 선생님도 의아한 마음이었다고 하셨어요. 이 전화의 발단은 전국의 중 1 학생을 대상으로 학생 정서행동검사를 실시하는데, 여기에서 첫째가 우울, 불안 등의 지수가 위험 수준으로 나왔던 거예요. 소위 말해 관심군으로 선정되어서 의무적으로 재검사, 상담을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특별히 어려워하는 점이 있으면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책만 읽어서 오히려 책 읽기를 금지했을 정도였대요. 아이가 뭔가 힘들어서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가정에서도 관심 부탁드린다며 통화는 마무리되었습니다.

  통화를 마친 후,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초등학교 6년을 밝디 밝게 자란 아이였고, 중학교도 바로 초등학교 옆이어서 적응에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상담사 엄마'의 괜한 압박으로 다른 사람들만 신경 쓰다가 정작 딸은 못 돌봤다는 자책감이 몰려오고, 아이 마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었어요. 첫째가 중 1이 되는 해에 코로나가 시작됐어요. 방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첫째는 학교 가지 않는다며 너무 좋아했었고, 동굴 속에 들어간 아이처럼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5학년 때, 1년을 저와 격정적인 사춘기를 보냈고, 가족들과도 트러블이 없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몇 달 동안 아이의 마음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혼자 머릿속으로만 굴려봤자 답은 없고, 첫째가 오면 대화해 보기로 했어요.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어떻게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학원 픽업으로 단 둘이 차에서 보낼 때, 슬며시 물었죠. 


"얼마 전에 학교에서 심리검사했다며? 검사할 때 어땠어?"


"그 검사? 문항들 읽으면서 내 맘이랑 비슷한 게 많았어. 요즘에 괴롭고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많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지. 방에서 명상도 하고, 죽음도 생각이 들고, 옛날 일들이 막 떠올랐거든. 특히 7살 때 바위에서 떨어져서 이마 찢어졌었잖아. 방에 혼자 있을 때, 그때 생각이 자꾸 떠올랐어. 혼자 있을 때가 많냐는 질문에도 코로나로 맨날 집에 있으니까 그렇다고 했고."


 그제야 안심이 되면서 비밀이 풀렸어요. 코로나로 친구들도 못 만나고, 방에 혼자 있고, 죽음도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검사 문항들에 답하다 보니 우울, 불안 등의 항목에 체크가 됐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예전의 기억들과 그 속의 미해결 감정들을 다시 처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어요. 그런 작업까지 하고 있는 줄은 몰랐거든요. 어쩌면 강제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아이가 꼭 거쳐야 할 과정을 보낼 수 있었겠구나 어느 정도는 안심도 됐어요.


 갑자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떠오르면서 장면들이 겹쳐졌어요. 어른들의 완벽한 힐링 애니메이션이라 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철저한 고증과 3년여에 걸친 고민들로 만들어진 작품인데요. 11살의 라일리가 사춘기처럼 성장의 단계에서 뇌와 마음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재밌으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준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느끼는 수백 가지의 감정들 중 가장 기본 뼈대라 할 수 있는 5가지 감정인 기쁨이와 슬픔이,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가 나와요. 기쁨이는 다른 감정들, 특히 슬픔이 때문에 불행해진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서든 라일리가 기쁘고 행복감만 느끼도록 노력하죠.

출처: 네이버 영화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기쁨이가 부모님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캐럴에도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라며 착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준다며 눈물, 슬픔, 화는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사람들에 대해서도 경계를 하면 소심하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 겁이 많냐고 하면서 그 감정들은 쓸데없고, 좋지 못하다고 알려줘요. 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 뇌의 장기기억 속에 다 저장을 해 두어요. 지금 해결이 안 되더라도 나중에 돌보라는 뜻 아닐까요?


 사춘기가 특히 그래요. 뇌의 리모델링, 정리로 일대 혼란이 일어나면서 아이들이 감정 표현의 충동성이 커져요. 상황에 맞지 않게 날 선 이야기를 한다든가, 기분대로 안 한다고 하거나, 버럭 화만 먼저 내버리고 말기도 해요. 또, 아이의 내면에서는 불쑥불쑥 예전에 느꼈던 기억과 감정들이 올라와요.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 크게 혼 내서 창피했던 것, 부모님이 자기만 할머니 댁에 맡겨두고 갔을 때 불안했던 것, 갑자기 오토바이에 치여 다치고 놀랐던 것,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는데 슬퍼하지 못했던 것 등등 명확하진 않은데 움찔움찔한 느낌으로 올라와요. 첫째도 이런 느낌이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마음에서 그 순간들에 느꼈던 강렬한 감정들을 돌봐 주어야 해요. 이 시기에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성인으로 살면서도 두고두고 따라올 기억들이거든요. 엉킨 털실들끼리 뭉쳐지면 더 꼬이고 복잡해지듯이 기억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핵심감정을 찾기가 어렵고,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감정은 이유가 있어요. 소심이는 안전을 지키고, 버럭이는 자신의 선과 경계를 보여주고, 까칠이는 소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죠. 기쁨이는 삶의 활력소가 되고, 슬픔이는 아픔을 알아차리며 사람들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다리가 됩니다. 슬픔이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할 때 소중한 기억이 되고,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을 기쁨이도 깨달았어요. 


 사춘기는 몸이 크는 만큼, 십여 년의 삶을 돌아보고 뇌와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기예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아주세요. 또,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여주고, 귀하게 바라봐 주시면 아이들도 마음을 돌볼 힘이 생길 거예요.

출처: 네이버 영화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첫째는 학교의 우려 속에 재검사를 받았어요. 대부분은 재검사를 통해서 제외되는데, 다시 또 관심군으로 나왔습니다. 아주 열심히 자신의 내면 구석구석까지 돌보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상담실 가서 선생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행사들에도 참여할 수 있었어요. 또 덕분에 아이의 검사 결과로 걱정하던 남편을 설득해서 그토록 소원이었던 반려견과 식구가 되었어요. 지금은 그 동굴에서 잘 보낸 덕분에 몸, 맘 건강히 보내고 있어요. 


 한 가지 비밀을 첫째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알게 되었는데요. 아이들은 심리 검사할 때 대충 좋은 말 체크하고, 아무렇게나 찍었었대요ㅠㅠ 교육정책의 현실에 씁쓸했지만, 우리 아이는 마음에 솔직했구나 싶어 감사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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