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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Dec 27. 2021

부모님께 용기내고 있는 중입니다

사춘기가 두려운 부모에게 12

 첫째 딸이 4학년 말부터 사춘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장 변한 건 제가 혼낼 때였어요. 화내고, 소리 지르면 눈물만 흘리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달라졌어요.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고, 분노의 감정을 담아 저를 똑바로 바라보더라고요. 아이의 이런 눈빛을 처음 볼 때는 놀랐는데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상으로 저도 더 세게 나갔던 것 같아요.


 추운 겨울밤, 저녁식사 시간이었어요. 어떤 일로 그랬는지 가물가물한데 이 날도 첫째가 저를 눈물이 그렁한 채로 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제가 왜 이걸 못하냐고 안 되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아이가 말했어요.


"엄마도 못하면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아이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저를 충격과 혼란으로 빠트렸어요. 보통은 어디서 엄마한테 누가 그런 말을 하냐고 더 호통을 치고 아이를 천하에 버릇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그때 저는 아무 말 못 했어요. 맞는 말이었거든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어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아이는 엄마도 제대로 못 하는 걸 알면서도 참아왔던 거죠. 무서워서, 더 혼날 것 같아서.. 그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앞에서 마치 뭐라도 된 듯이 떠들어대고 있었던 거예요.


  이 장면을 기억하는 이유는 첫째가 남긴 시 때문이었어요. 저를 한 방에 KO 시킨 그 밤에 예쁜 새 노트에다가 시를 썼더라고요. 며칠 뒤에 우연히 노트를 발견하고 읽어봐도 되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허락해 줬어요. 제목은 '두 개의 엄마'예요.


어렸을 땐 악마로 보이던 엄마,

소리 지르면 불 날 것 같고

얼굴이 무서워지면 험상궂게 변한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 즘 악마는 어디 가고 천사가 나온 것일까?

소리 지르면 나도 소리 지르고

무섭게 변하면 나도 화내고

그러면? 내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엄마가 변한 것일까?

내가 더 커지면 엄마는 순한 양이 될까?


 '아.. 아이가 많이 컸구나.. 힘이 생겼네..' 하며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시를 다 읽고 나자 아이가 이 시를 쓰고 기분이 좋아졌대요. 왠지 모르게 시원했다네요. 10여 년 동안 아이도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었을까요? 아이도 이 세상에 부모만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자체가 불안하고 두려운 일인데 그 부모가 자기에게 잘못됐다, 그러면 안 된다 난리를 칠 때마다 얼마나 무섭고 싫었을까요? 이제는 아이의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저에게 경고장이 내려온 것 같았어요.


'이 선 넘으면 삑! 침범이야!!!'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시기마다 중요 미션들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고 신체 발달이 자연스레 일어나겠지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나와 우리로서 살아가기 위해 몸의 성장처럼 마음도 시기마다 발달하게 된답니다. 미국의 정신분석가 에릭슨은 심리사회적으로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8개의 발달 단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유전적 기질을 바탕으로 사회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한 단계씩 거쳐가게 됩니다. 사춘기, 청소년기의 발달 과업은 정체성, 즉 자아정체감이에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죠.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그렇다면 '내가 누구지?'라는 질문의 답은 어디서 찾을까요? 뇌도 20대 초 중반까지 자라기 때문에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평가하기가 어려워요. 바로, 그동안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 시선, 피드백 등으로 나를 인식하게 됩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주위 사람들로 부모님, 형제자매, 선생님, 친구들, 친척들과의 관계에서 답을 찾아요.


"너는 왜 이렇게 게으르니?"

"우리 딸이 제일 착하네"

"너는 말이 너무 많아. 그 말 좀 못 줄이니?"

"못됐어. 자기만 생각하는 얘야!!!"

"너는 고집불통이야!!!"

"엄마 말을 이렇게 잘 들어요. 최고 최고"

"너는 방 정리도 안하고 지저분하고 도대체 생각이 있니?"

...

' 아, 나는 게으른 애지. 잘 하는 것도 없댔지..'

'나는 이기적이고 못되서 사람들이 싫어할거야. 내 주장을 하면 안돼. 나는 사람들에게 맞춰야 돼..'

'난 착해야 돼.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해. 엄마 고생시키면 안돼'

'나는 상대방이 화내고 소리질러도 할말이 없어. 말 못할거야..'


 이것이 100% 객관적인 사실일까요? 제가 강의 때마다 여쭤보면 대부분 고개를 저으세요. 아니라고요. 부모로 살아보니 지칠 때도 있고, 부담감과 함께 막막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제 맘대로 행동하고 선을 넘을 때가 너무 많았어요. 저의 말과 시선, 반응들로 자신을 보게 되리라 생각 못 했던거죠. 다 잘 되라고 한 건데요. 이렇게 형성된 자아정체감, 정체성, 자존감이 성인이 되서도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사춘기가 부모님에게 온 두번째 기회입니다.


 에릭슨은 특히 이 시기에 주요한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말했어요. 하나는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하여 그 집단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는 ‘소속감(commitment)’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고 시도하는 ‘탐색(exploration)’이예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도로의 용기를 내는 거죠.


 당연히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에서 채워지지 않는다면 더 어려울 수 밖에 없겠죠. 아이의 눈빛이나 행동이 달라졌다면 그 이면의 마음을 알아주세요.


 '아이가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고 자기로서의 힘을 써보려고 하는구나..'


  부모님을 무시하고 버릇없는 행동이라기 보다는 아기 때 걸음마 배우듯이 자신을 찾느라 좌충우돌 중이라고요. 산같이 큰 존재였던 부모를 향해 용기내고 있다고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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