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상담사 Uni Dec 28. 2021

사춘기는 나사 하나 빠진 게 아니라 조립 중이에요

사춘기가 두려운 부모에게 12

 '나사가 하나 빠졌어.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릴랙스.. 릴랙스..'


해도 해도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고 화가 올라올 때는 아이에게 기대를 낮추고, 마음을 달랜다며 이렇게 생각했어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도저히 제 선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요. 저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상담실이나 주위에서 듣는 이야기들도 놀랠 노 자였죠.


 초등학교 때는 머리카락도 끈 하나로 질끈 묶고 신경도 안 쓰던 아이가 앞머리가 이상해서 마음에 안 든다며 가족 약속에서 갑자기 안 나가겠대요. 아무도 너의 머리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설득해도 그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요. 억지로 회유와 반 협박으로 데리고 나가도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있을 거라 그냥 체념을 합니다. 샤워도 대충 씻는 듯 마는 듯했던 아이가 외출 한 번 하려면 화장실 들어가서 씻는데만 1시간이 넘어요. 그만 좀 나오라고 해도 함흥차사, 천하태평한 태도에 밖에서 기다리는 식구들만 애가 탑니다. 패션쇼 가는 것도 아닌데 옷도 쫙 꺼내놓고 입었다 벗었다 마음에 들기까지 또 한참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 눈썹이 진해지더니 입술이 점점 새빨개져요. 조금 있으니 얼굴만 하얘지고, 화장 없이는 집 앞 슈퍼도 나가지 않아요. 요즘이야 코로나로 마스크가 일상이지만 잠깐이라도 맨 얼굴로 나가려면 후드 티로 모자 뒤집어쓰고, 마스크 쓰고 연예인처럼 자기를 철저히 가려야 해요. 최근에는 학교에서 학생의 자율성과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화장과 두발에도 단속이 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단속이 심하더라도 어떻게든 화장 진하게 하고 가더라고요. 다 컸다며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며 어른으로 대접을 요구하다가도 부딪치지 않으려고 물러서 있거나 경제적인 부분으로 성이 차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고 불만을 갖고요. 부모도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학원에 갈 시간인데 움직임이 없어서 그제야 알려주면 왜 이제 알려주냐며 늦었다고 안 가겠대요. 어릴 때는 울리기라도 해서 학원 앞에 데려갔는데 이젠 머리가 커진 아이를 움직일 수가 없어요. 학원만 해도 속이 타는데 학교까지 안 가겠다고 하면 그때부턴 부모님 온 마음이 타들어갑니다. 초등학교까지 완전 모범생에 엄마, 아빠 말이라면 그대로 따르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눈빛이 변하고 한마디마다 시한폭탄 같더니 학교를 그만두고 싶대요. 아이들도 사정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어요. 선생님이 너무 강압적이고 크게 창피를 당했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소외를 겪었을 수 있어요. 친구 문제라고 말하면 부모님들은 그런 아이들 무시하고 참고 다니라고 마음을 끌어보지만, 강철같이 움직이지 않아요. 아이가 힘들어하는데도 억지로 다니게 했다가 20대, 30대까지도 방문 밖을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왜 그럴까요? '중2병'이란 말처럼 아이들이 이상해져서 문제가 있는 걸까요? 저도 아이들의 행동을 적다 보니까 '나도 옛날에 그랬는데..' 하며 그때 모습들이 떠올랐어요. 다들 저만 보고 있는 것 같고, 앞머리가 삐뚤어져도 내내 신경이 쓰였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어도 나를 보고 비웃나 생각이 들고, 집에 와서도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뭔가 하나가 마음에 안 들면 불화산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서 책상 위의 책들 다 집어던졌던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죠. 여러분도 지금 생각하면 나사가 하나 빠졌던 것 같은 날들이 있었나요?


 정도의 차이에 심리적인 상태의 결합이 작용하지만, 당연히 이런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요. 청소년기의 두드러지는 특성이 자기 중심성이에요. 뇌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고 또한 자기의 입장에서 체계화를 시작요. 신체와 정서적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다 보니 자신의 외모와 행동에 몰두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도 자신에게 큰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중심성의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상상적 관중(imaginary audiance)과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예요. 사람들이 관중처럼 모두 무대 위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며 행동해요. 또, 자신의 감정과 사고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어요. 이런 특징들도 발달 과정에서 타인의 사고에 대한 개념화를 이루고, 친밀감이 건강하게 획득되면 자연스레 사라지게 됩니다. 철들었다는 말처럼, 혼돈의 경험 속에서 나와 타인 간의 건강한 거리를 배워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어요.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 이면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 같아요. 부모도 사람인지라 늘 화내지 말고 참으라는 건 효과가 별로 없어요.


 아이들 속마음은 어떨까요? 아이들이 생각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다 나를 주시하는 것 같고, 조금만 실수하고 부족해도 비난할 것 같은 마음이 든대요. 친구들끼리 작은 일로도 손절당하고, 따돌림을 받으면 교실 안에서 1분 1초도 버티기 힘들어요. 겉으로는 신경 안 쓰는 척 아무 일 없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비참하고, 속상하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대요. 급식 시스템이다 보니 친구가 없으면 점심도 거의 굶어요. 다들 삼삼오오 짝지어서 밥 먹는데, 혼자만 먹고 있으면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운 거죠. 상담할 때, 학기 중에 내내 점심 안 먹는 아이들은 간식을 몇 배로 챙겨줬어요.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나오는데 오후 3, 4시까지 얼마나 배고플까요? 한창 클 나이에 그 허기진 몸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도록요.    


 밖에서도 긴장하고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집에 와서도 이런 마음을 나눌 수가 없대요. 부모님께서는 마음에 안 드는 행동들만 지적하고, 말만 하면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들만 늘어놓으시니까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기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사람들 사이에서 속상하고 다친 마음 위로받는 것이 필요한 거죠.


 몇 년 전에, 중학교 선생님께서 화장하고 오는 아이들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는 말씀에 저의 시각이 달라지게 됐어요. 화장 잘하려고 검색하고, 노력하고, 시간 들여서 해 내는 아이들이라 더 성실하대요. 여태껏 색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벗고 제대로 보니 훨씬 그 아이들이 예뻐 보였어요.


 한 어머니께서 중학생 딸이 자기는 눈도 낮고 코도 낮고 마음에 안 든다고 속상해할 때 어떻게 이야기해 주면 좋겠냐고 물으셨어요. 아무리 위로를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대요. 흔히들 많이 하는 위로법을 쓰셨던 거죠.


"우리 딸이 제일 예쁜데, 걱정하지 마~~"


 아이들이요, 눈치가 비상해요. 엄마 눈에만 그렇게 보인다는 걸요, 엄마도 빨리 이 상황 넘기려고 하는 말이라는 걸요. 진짜 공감하는 말을 알려드렸어요. 사실 저도 매번 통하지는 않아서 긴가민가 하고 전해드렸어요.


"우리 딸, 외모 때문에 고민했구나. 많이 걱정하고 속상했겠는데, 엄마가 그 마음도 몰라줬네."    


 어머니께서 공감하는 말만 해줬더니 딸이 펑펑 울더래요. 혼자 속 끓였던 마음이 다독여진 거죠. 학원 끝나고는 전화해서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했다며 문자를 주셨어요. 사춘기 자녀와의 데이트는 하늘에 별 따기인 거 아시죠. 아이들도 자기가 왔다 갔다 하는 거 알지만, 그럼에도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에게 마음 열고, 좋은 선택을 배워가요.


 

저도 마음을 바꿨어요. 둘째의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 눈에 보이면 얼른 저에게 알려줘요.


'우리 딸, 지금 나사 조립 중이야. 잘 맞춰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께 용기내고 있는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