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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Dec 29. 2021

사춘기 자녀의 한마디에 비상사태

사춘기가 두려운 부모에게 12

"우리 아이는 다 좋은데 가끔 아빠랑 한번 부딪치면 그때마다 시한폭탄 같아요ㅠㅠ."  


 며칠 전에 만난 첫째의 오래된 친구 엄마의 이야기예요. 저도 바로 박수치며 맞다 맞다 했죠. 친구들 사이에서도 예의 바르고 리더십이 뛰어난 그 아이도 사춘기가 되니 부모님과 많이 부딪쳤대요. 얼마 전에도 저녁 식사 중에 아이가 물을 마시려 할 때 아빠가 자기도 물 한잔 달라고 했다가 아빠가 떠서 마시면 되지 자기에게 왜 시키냐고 한 마디 했대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엄습하더니 아빠가 폭발해서 내가 딸한테 물 한잔도 못 달라고 하냐며 화를 엄청 내셨대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 밖에서 열심히 돈 벌고 왔더니 대접도 못 받는 것 같아 서운하다 못해 서러우셨을 아빠 마음도 너무 이해가 돼요. 그리고, 자기도 한 마디 했다가 갑자기 폭탄 맞고 억울했을 아이의 마음도요.  



 비단 이 가정뿐만의 일이 아니에요. 사춘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와 행동 하나로 가족 모두에게는 위기가 닥쳐요. 저희 집에서도 평소 아빠와 친하게 지내는 둘째가 식사 중에 "아빠나 잘하시지." 한 마디 했다가 끝내 밥을 다 못 먹고 일어났답니다. 어른들 생각에는 아무리 친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가끔가다 툭 치고 들어오는, 소위 '싸가지'가 없는 말투 앞에서는 욱 하고 화가 올라옵니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과 이 예의 없는 버릇을 당장에 고쳐야겠다는 마음이죠. 다른 데 가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걱정까지도 더해집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혼내는 것에서 끝이 나지만, 사춘기의 아이들은 다르죠.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하고 듣고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도 눈이 뒤집혀 대든다거나 싸움이 나기도 해요. 심지어 아이와 부모의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상담실에서 고등학생, 대학생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 아빠와 특히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빠에게 인사 안 했다가, 한 마디 했다가, 아니면 자기는 영문도 모른 채 맞았을 때가 있었어요. 갑자기 화가 나셔서 뺨을 때렸거나 심각한 폭력일 때도 있습니다. 단 한 번의 경험일지라도 아이들은 이 날의 기억으로 아빠에 대한 분노와 함께 두려움을 갖고 살아왔었어요. 부모님도 그 때만 참았으면 좋았을 걸 후회하면서도 가르쳤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어느 쪽도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사과할 수 없는 이 날의 기억을 마음에 묻고, 관계에는 벽이 생겨버립니다.   


 이쯤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우리 집 아이만 버릇이 없고, 나를 무시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란 거죠. 사춘기니까, 반항적인 때라 한 번씩 기를 확 눌러주려는 의도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충동적이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를 먼저 알려 드릴게요. 


 사춘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뇌의 전두엽 활성화예요. 전두엽은 뇌의 가장 앞쪽에 자리 잡은 영역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합리적,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을 해요. 전두엽은 12세 정도부터 발달하기 시작해서 20대 초, 중반쯤에 완성이 됩니다. 현재는 뇌의 리모델링이라 할 정도로 치열하게 발달 중이다 보니까 뇌의 시냅스들은 늘어나 있고 작동은 미숙해서 판단력에 혼란이 생겨요. 쉽게 말해서, 초등학교 때보다도 가끔 왜 저러나 싶을 때가 있는 거죠. 전두엽이 아직 제 기능을 못하다 보니 정서적인 반응을 하는 변연계가 먼저 작동을 해요. 특히 상대의 말에서 불쾌했거나 권위적이거나 억압적인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서 반항적으로 행동하게 돼요. 

 그래도,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있다 보니 조절을 할 수 있어요. 유독 가정 내에서 더 부딪치는 이유는 그동안 꾹꾹 눌러뒀던 감정들이 더해지기 때문이에요. <사춘기 자존감 수업>의 저자 안정희 작가님도 '아동기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문제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때가 바로 사춘기이며 관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사춘기는 위기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해요. 아이도 판단력이 미숙한 상태이고, 정서적으로 충동적이며 쌓여있던 감정들까지 더해져 행동을 했을 때, 주변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정체감을 형성하고 성인기까지 이어집니다. 또다시 억압과 무시, 수치심, 폭력을 경험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에 위기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보면 기회이기도 해요.


 부모님들께 알려드릴 한 가지가 더 있어요. 위기 촉발의 순간은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충동적이었지만, 아이들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깨달아요. 자신의 행동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요. 그래서, 부모님들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먼저 준비를 해 놓는 것이  필요해요. 혹시나 아이들이 굉장히 까칠하고, 버릇없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알아차리셔야 해요.


'아,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야. 아이의 뇌가 오작동을 한 거야. 지금 침착하게 대응해 주면 돼. 기회야.'


 너무 긴가요? 여러분이 그 상황에서 나 스스로의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문장으로 만들어 두세요. 그래야 위급 상황에 발휘해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먼저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아이도 이 상황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모델링이 됩니다. 또한, 자신이 부모님에게 실수했는데도 자기 마음을 이해해 주고, 너그러이 품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그로써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원래 자존감은 실수, 실패했을 때 받는 지지와 용기로 가장 크게 올라간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가끔 삔트에 안 맞는 이야기를 해도, 저의 가슴을 후벼 파는 비수를 날려도 동요되고 가지 않아요. 지금,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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