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드레스 입고 갈 거야

by 마음상담사 Uni

5. 딸아, 너의 마음속 목소리에 귀 기울이렴.


어릴 적, 너는 정말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아이였어. 가끔씩 컴퓨터에서 동영상 앨범 찾아볼 때가 있잖아. 그러면 우리 네 식구가 깔깔깔 웃고, 너희들은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전혀 모른다는 표정도 짓고, 창피해서 못 보겠다고 어이없어하기도 하고 재밌는 순간이야.


6살까지도 길을 가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 율동 따라 하곤 했는데. 시크릿 걸 그룹의 ‘샤이보이’랑 ‘별빛 달빛’이란 노래만 나오면 엄청 좋아했어. 누가 보든 말든 노래에 이끌려 몸이 자동 반응하면서 오른손 한번 흔들고, 왼손 한번 흔들고, 엉덩이도 왔다 갔다 하면서 노래에 푹 빠졌지. 6학년인 네가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무슨 생각에 그랬냐고 하지만, 6살의 나이는 남들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한 거 같아. 그런 때지.


유치원에 갈 때도 드레스 입고 가고 싶다고, 며칠에 한 번씩은 말했지. 실제로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봐도 절대 아랑곳하지 않고 자아도취하며, 공주가 된 듯 오히려 도도하게 거리를 활보했단다. 입고 보니 생활하는데 불편하면 얼마간은 조용하다가 또 필이 꽂히면 드레스를 입고 갔어. 박물관이나 체험관에서도 바닥에 엎드려 직접 관찰하기도 하고, 공상에 빠져 연극하듯이 자신만의 무대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지. 그래서 엄마는 네가 뮤지컬 배우가 되려나 했단다.


6살까지만 그랬을까? 2학년 때도 기억나니? 요즘은 절대 갈 일도 없고, 들여보내 주지도 않지만 어릴 때는 키즈카페 자주 갔었잖아. 너와 친구들은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데, 층간소음 때문에 아래층이 신경 쓰여 뛰지 말라고 해야 할 때, 산이며 놀이터며 나가서 놀고 싶은데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서 밖에도 나가지 말라 할 때 키즈카페 만한 곳이 없었어. 엄마들도 모여 이야기할 수 있고, 너희는 너희대로 신나게 놀 수 있거든.


2학년 겨울이라 보통 속에 내복을 입고, 옷을 입잖아. 키즈카페는 실내라 따듯하고, 너희는 마음껏 뛰어다니니 덥지. 방방이 가서 열심히 제자리 뛰기 하고, 텀블링도 하고,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다니느라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금세 얼굴은 빨개지고, 땀이 난단다. 그러면 너는 별 고민 없이 옷을 벗어두고, 내복을 입은 채로 놀았어. 엄마는 안 된다고 해도 너는 이게 편하다며 내복만 입고 다녔지. 그러더니 으레 키즈카페 들어오면 겉옷부터 해서 옷을 벗어두고, 내복이 가장 편하다고 그곳의 시간을 만끽했단다. 내복이라 해도 얇은 실내복처럼 생겼으니 크게 이상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복만 입고 논 아이들은 너희들 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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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려야 했을지도 몰라. 다른 아이들도 내복만 입고 놀고 싶은데 엄마들이 제제를 했을 거야. 아니면 반팔을 미리 준비해 와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엄마는 네가 너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참 부러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되고,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야.


사실, 엄마는 특히 어릴 적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했던 기억이 별로 없어. 외할머니께 여쭤보면 분명 다를 테지만, 엄마는 늘 다른 사람들 눈치를 살폈었어. 기억이 나는 유치원 때부터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 썼고, 맞추는 편이었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자연스레 타인의 반응을 신경 쓰게 되지만, 어릴 때부터 눈치 보는 아이였단다. ‘하고 싶은 걸 했다가 비웃고, 놀리면 어떡하지? 날 안 좋게 볼 거야. 그러니까 하지 말자. 참자’ 크게 실수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왔지만 어딘가는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엄마만의 생기가 없단 말이기도 하지.


그래서, 우리 딸이 당당히 자기를 표현하고, 마음에서 원하는 일들을 말할 때 들어주고 싶었어. 떠오른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해. 우리 딸은 정말 용기가 빛나는 사람이야. 엄마가 수없이 안 된다고 했을 때도 절대 너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엄마를 설득하잖아. 그리고 해내잖아.


엄마가 너와 동생을 임신했을 때 참 행복했어. 보이지 않지만 엄마의 뱃속에 한 생명이 꾸물꾸물 대며 움직이는 모습이 진짜 신기했어. 그러다가도 문득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까? 나도 행복하게 살지 못했는데 과연...’ 생각하면서 무섭고 불안할 때도 있었어.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가 너희를 키우기도 했지만, 너희들이 엄마를 자라게 해 주었더라. 엄마가 너희들 덕분에 삶이 무엇인지 넓게 알게 되었거든.


엄마도 어릴 때 너희들처럼 용기를 내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아니야. 그때는 여러 상황들과 엄마의 성격 때문에 그랬던 거지. 너희 덕분에 엄마가 용기를 많이 내고 있어. 내 안의 것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안심이 되었어.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도, 엄마가 글을 쓰고, 강의를 하게 될 때도 너희를 보며 용기를 냈단다. 엄마가 되기 전의 삶과 되고 난 후가 정말 달라진 것 같아. 너희 덕분이야. 우리 딸들, 고마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네가 자연스럽게 타인들과의 경계를 찾아가더라. 어릴 때처럼 드레스만, 내복만 입으려 하지 않잖아.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살피는 네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어. 엄마도 그 시절을 겪어왔으면서도 까먹는다. 사람의 일생이 흐름 속에 있는 것 같아. 어렸을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꽂혀서 마음껏 하고 나면, 커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맞춰가잖아. 이렇게 자라는 걸 알았으면 우리 딸, 더 맘껏 표현하게 해 줄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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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늘 용기 있는 아이였고, 너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란다. 지금도 물론이지. 앞으로도 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렴. 주위를 둘러보며 너의 옆 사람들의 마음도 살펴주렴. 그 안에 답이 있을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맞춰주는 것도 절대 답이 아니야. 너의 마음 목소리를 먼저 듣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관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해답이 나올 거야. 그 해답은 정해져 있지가 않더라.


어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어. 답이 없는 것에서 답을 찾는 것이 지혜라고. 우리 인생의 매 순간 정해진 답을 모를 때 그 답을 찾으려 고민하는 순간 지혜를 깨우는 과정이야. 용기 있는 네가 지혜까지 깨워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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