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벌써 6년 전, 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는 빨간 염소를 아프리카에 선물한 적이 있단다. 엄마도 벌써 기억 저너머에 넘겼다가 며칠 전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 너도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얼른 남겨본다.
네가 1학년 때, 우리 집 현관문 앞 신발장에는 작은 돼지 저금통이 있었단다. 어른 주먹 2개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핑크색 커다란 코가 귀여운 저금통이었지. 그 저금통 옆에는 동전 통도 있었어. 식구들이 현관을 나가면서 기부하는 식처럼 동전 통에 담긴 동전을 넣고 갈 수 있도록 놓아두었지. 엄마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유태인 가정의 모습을 보고, 우리 집에서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다짐했던 일이야. 하지만, 매일 오가며 챙기지 못해서 엄마만 넣는 날도 많았지만 가끔 이어도 네가 저금하면서 기부의 의미를 배웠으리라 생각했어. 완벽히 해내지 못해도 괜찮단다. 그것을 하고자 하는 의미를 배우는 것이 핵심이니까.
드디어 1년이 지나고 연말이 가까워 오자, 꽤 무거워진 저금통을 뜯어보기로 했지. 엄마도 어렸을 때 빨간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서 동전이랑 꾸깃꾸깃 접힌 지폐들이 우르르 나올 때 얼마나 설레고 즐겁던지, 그 느낌이 기억나더라. 작았던 아이가 이제 엄마가 되어 딸과 똑같은 일을 한다니 신기하지. 우리는 가위로 돼지 저금통의 등을 갈랐어. 너는 돼지저금통 가르는 것도 마음 아파했지만 그런 운명인 것을 어쩌겠니. 눈 질끈 감고, 등을 갈라 그 안에 들어있던 돈을 와르르르 털어냈단다. 너의 두 팔로 바닥에 흩어진 동전을 싹 쓸어 담으니 완전 한 가득이더라. 그 작은 저금통에 어쩜 그리도 많이 들어가 있던지, 와, 와하며 동전을 세기 시작했지. 천 원짜리도 몇 장 있었고, 백 원, 오백 원 끼리끼리 모아서 천 원씩 탑을 쌓았어. 1개, 2개 쌓이고 점점 옆에 쭉 늘어서더니 다 모아 보니 28,500원이나 됐어. 동전으로 3만 원 돈이 가까이 되었으니 정말 많이 모인 거지.
이제 행복한 고민이 시작했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돈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 처음부터 기부하기로 한 돈임을 알기에 너도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 이야기도 안 하고, 열심히 생각하더라. 엄마는 그즈음에 우리가 즐겨 듣던 노래가 있어서 약간 마음에 두었던 곳이 있었어. 너도 엄마 마음을 알았는지 그 이야기를 했잖아. 우연히 듣게 된 옥상달빛 그룹의 ‘빨간 염소’라는 노래야.
‘너희들은 염소가 얼만지 아니? 몰라, 몰라, 아프리카에선 염소 한 마리, 4만 원이래. 정말?’
재밌는 노래였지. 음도 위아래 왔다 갔다 하며 따라 부르기도 쉽고. 무엇보다 가사가 인상적이었어. 염소 한 마리가 아프리카에서 4만 원이라고 가사에 쓰인 게 무슨 뜻일까 해서 찾아봤더니 진짜 염소 한 마리를 기부하는 곳이 있더라.
아프리카에는 빨간 염소라 불리는 니제르 염소가 있어. 이 염소가 집에 있으면 먹을 것이 부족한 대신 영양을 챙길 수 있도록 젖을 짜 먹을 수도 있고, 생계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단체에서 일시적인 후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후원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어. 우리나라 돈으로 4만 원이면 아프리카의 한 가정에는 얼마간이라도 든든한 버팀목이 생기는 거란다. 이런 취지로 옥상달빛도 노래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신 거란다. 너도 이 이야기를 듣고는 28,500원에 돈을 보태어 4만 원을 채워서 이 곳에 염소 한 마리 후원하자고 약속했단다.
얼마 후, 어느 날, 네가 하교하면서 뜬금없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는 거야. 장학금? 1학년인 너에게 뜬금없이 어떤 장학금이지 했는데 장학증서를 보니 ‘햇빛 장학금’이라고 하더라. 장학금이니 당연히 돈도 있는데, 금액은 5만 원. 도대체 뭐지, 뭐지 하며 내내 궁금해하다가 용기를 내어 담임선생님께 연락드려 보았지. 그랬더니 학교에 태양력 발전장치가 후원으로 설치가 되었고, 그로 인해서 절약된 전기료를 각 반의 학생 1명에게 돌려준다는 취지의 장학금이었어. 공부, 성과와 상관없이 햇빛처럼 밝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학생에게 선정해서 주신다는 설명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친가며, 외가댁에 이 사실을 알렸더니 공부 잘해서 받아 온 상보다 훨씬 더 좋은 상이라며 칭찬해 주셨단다. 엄마도 왠지 기분이 좋더라. 우리 딸이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1학기 때는 걱정도 많고, 학교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는데 2학기에 안정되면서 장학금까지 받으니 감사할 따름이었지.
더 놀란 건, 너에게 그 5만 원을 그대로 주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그 돈으로 빨간 염소 한 마리를 더 보내주고 싶다는 거야. 4만 원은 빨간 염소에게 보내고, 만원만 갖겠다고 하니, 우리 딸이 마음이 참 예쁘더라. 가끔씩 엄마도 생각하지 못한 속 깊은 말들을 해서 깜짝깜짝 놀라게 해 주는데, 이번에도 그랬어.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마음을 실천하는 예쁜 아이.
돼지 저금통의 돈과 너의 장학금을 합쳐서 빨간 염소 2마리를 보내려고 세이브 더 칠드런에 들어가 봤더니 'School Me'라는 후원이 눈에 들어왔어. 아프리카에서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교육받는 것이 특히 더 어려워지는데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야. 어찌 보면 한 번의 식사, 옷들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힘이야. 교육을 받아야 다양한 기회를 맞이할 수 있어. 이 프로그램도 어떤지 묻자 너도 좋다고 해서 빨간 염소는 너의 이름으로, School Me는 동생의 이름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단다.
연말에 큰돈이 아니어도 너희와 1년 동안 기부를 목적으로 동전을 모으고, 뜻밖의 선물이었던 장학금으로 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보탤 수 있다니 진짜 뿌듯했어. 우리는 그 후에도 다른 단체에서 어려운 나라의 두 친구를 정기 후원하며 돕고 있잖아. 어찌 보면 매달 몇만 원의 돈도 큰돈이지만, 외식 한번 할 때는 더 큰돈도 척척 쓰듯이 한번 외식 줄이면 누군가는 한 달을 조금은 여유 있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 하면 가치 있는 돈이 된단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옆의 누군가의 아픔도 줄 수 있다면 조금씩 내 것을 내어 주는 것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지. 또, 우리 역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고.
엄마가 말 안 해도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서로 돕는 것의 기쁨을. 아픔을 나누면 작아지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삶에서 배워가기를 바랄게.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너의 마음에 엄마는 든든하단다. 멋지다,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