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 아니야
딸아, 엄마는 도서관이 참 좋아. 너는 별로 안 좋아했지? 책 읽는 건 좋아하는데 도서관은 싫어했어. 조용히 해야 하는 것 때문인지 별로라고 하잖아. 엄마는 도서관 가면 왠지 편안하고,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런가 봐.
대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 외에는 거의 도서관에서 보냈단다. 대학교는 수업이 친구들과 항상 같이 듣는 게 아니다 보니까 나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았거든. 그렇다고 책만 열심히 읽은 게 아니라 도서관에 가면 재밌는 할 일이 많았어. 지금은 영화도 스마트 폰으로 다 다운로드하여서 볼 수 있지만 20년 전에는 DVD나 비디오 테이프로 봐야 했단다. 도서관 미디어 실은 보고 싶은 영화도 공짜로 빌려서 아예 볼 수 있는 공간까지 있었어. 시간 때우기도 좋고, 좋아하는 영화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컴퓨터실이 있으니 컴퓨터도 쓰고,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엄마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었어. 창가 쪽 벽 끝, 맨 구석자리. 평상시에는 늘 비어있는 그 자리에 앉아서 책도 읽고, 과제도 하고, 엄마의 공상들을 열심히 키웠던 곳이지.
5년 전에 동생이 엄마가 다닌 학교의 유치원을 다니면서 엄마는 또 3년을 추억의 도서관에서 보낼 수 있었단다. 리모델링해서 예전 모습은 없어졌는데 시설도 좋아졌고, 그냥 도서관이라 좋았어. 빨간 벽돌에 둘러싸여 있고,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그곳이 엄마의 아지트였단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곳. 그냥 도서관이 엄마는 좋아.
우리 딸도 도서관이 좋은 곳으로 남기를 바랐는데 아무리 해도 도서관이 싫다 하니 고민하다가 도서관 품앗이 모임을 신청했어. 너의 베프가 이미 활동하는 모임이기도 했고, 도서관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생길 거라 기대했지. 역시 엄마의 선택은 탁월했지?
숲 모임과 달리 도서관 모임 ‘또래책’은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모여서 엄마들이 돌아가며 수업을 하니, 커가면서도 서로 공감대 형성이 좋더라. 엄마들도 너희를 잘 알고, 같은 나이라 하는 고민들도 비슷했어. 도서관 수업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우리는 늘 강당을 빌렸어. 100명은 앉을 수 있는 강당에서 옹기종기 모여 과학 수업, 역사 수업, 사회 수업도 하고, 강당 앞 무대에 돗자리 펴고 앉아서 요리수업도 했지. 열혈 엄마들이 한 짐 가득 싣고 오시는데, 오븐까지도 바로 대령했어. 거기서 또띠아 피자도 만들어 먹고, 설날이면 떡국도 끓여 먹고, 여름이면 수박 한 통 사 와서 화채도 달달하게 먹었어.
절기마다 도서관의 명절 행사를 엄마들이 맡아서 하다 보니까 절기의 묘미도 느끼고. 추석이면 송편도 만들고, 단오에는 창포물에 머리도 담가보고, 동짓날에는 팥죽도 먹고, 전래놀이도 늘 빠지지 않았지. 할로윈 데이 행사도 지금은 도서관에서 하지만, 그때는 또래책 회장님 집에 모여 두루마리 휴지와 신문지를 길게 늘여서 천장마다 붙이고, 관문마다 통과해서 가면 무서운 귀신 한 명이 문제도 냈지. 귀엽고 재기 발랄한 회장님 덕분에 너희도, 엄마들도 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단다.
설이면, 도서관 관장님 모셔다가 세배도 드렸잖아. 한복 곱게 입고, 관장님께 절하면 덕담도 듣고, 강당 위 돗자리에서 떡이랑 간식 나눠 먹으며 웃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러면, 너희는 곧 일어나서 넓디넓은 강당을 뛰어다니고, 도서관이 놀이터인 것처럼 하하 호호 웃고 다니면 곧 제지도 들어오지만 그렇게 우리는 도서관에서 참 즐겁게 보냈다. 기억나니? 딸아.
엄마는 품앗이 수업 중에 작가 수업했잖아. 동화책 읽어주고, 독후 활동하는 건 많이들 하시니까 엄마는 조금 틀어서 작가님들을 알려주고 싶었어. 작가는 어려운 게 아니라고, 너희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분야를 글로 써서 알려주면 그게 작가라고 말이야. 또, 너희의 생각을 그림과 글로만 표현해서 묶어내도 그게 책이고, 동화작가가 되는 거지. 엄마도 수업 준비를 하면서 작가들의 삶을 조사해 보니까 참 다양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려 했던 분들도 많지만, 실제 유명하신 분들 보면 40, 50대에 그림을 좋아하고, 책을 만드신 분들도 많았어.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들의 사진으로 책을 만든 작가도 있었고, 그림뿐만 아니라 돌멩이, 종이 찢기 등 표현해 내는 방법들도 기발했지.
너희에게 알려주려고 작가라는 직업을 자꾸 찾다가 진짜 엄마가 작가가 되었어. 너희에게 수업한 지 1년 만에 엄마도 글을 쓰고 책까지 나오게 된 거야. 수업할 때만 해도 엄마가 작가가 되리란 생각도 못했는데 이럴 때 보면 인생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아. 우연 같지만 필연처럼 느껴지는 상황들을 아마 너도 곧 경험하게 될 거야.
딸아, 2학년부터 시작한 또래책이 벌써 6년이 되었구나. 너희가 고학년이 되고, 엄마들보다 더 바빠지고, 멀리 이사 간 친구들도 있고, 모임은 예전처럼 못하지만,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나서 만나면 참 좋아. 수원 화성행궁도 1박 2일로 다녀오고, 수원 연극제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즐겼지. 참, 전에 한성 탐험대 하면서 남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걸어서 그곳을 걸어갔다 내려왔던 일 생각나니? 배고파서 맛집을 찾는데 허름하고 작지만 1인분에 국수를 3그릇이나 주는 곳을 찾아서 우리 열 명이 30그릇 앞에 너무도 행복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아이들이라고 할인까지 해 주시고, 그런 훈훈한 인심에 우리의 추억도 따듯해졌지. 두고두고 만날 때마다 “맞아, 맞아, 거기~~~”하면서 이야기 나눌 곳이 있다는 건 삶의 톡톡 조미료 같은 멋진 양념거리야.
엄마들도 행사 하나 기획하면 자기 일처럼 열심히 나서 주고, 역할을 나눠서 척척 진행이 되니 늘 든든하고 고마운 분들이야. 세월이 쌓인 만큼 집안 사정도 알고, 고민도 나누니 1년에 한 번 만나도 어떤 마음인지 손발이 척척 맞는단다. 친구가 적었던 엄마에게 이런 엄마 친구들이 계시다는 건, 진짜 행운이야.
너희들도 중학생이 되니 몸도 컸지만 마음도 부쩍 컸더라. 어렸을 때는 조그만 일에도 티격태격 싸우고, 깔깔깔깔 웃어대고 일 만드느라 시끌벅적했는데 이제는 조용히 앉아서 핸드폰도 하지만, 이야기도 나누고, 챙겨주는 모습이 기특했어.
너희의 어릴 적 모습을 엄마는 기억하니까, 앞으로도 자라 갈 모습이 신기해. 엄마 반만큼 왔던 아이들이 이제 엄마 키를 넘기려 하니 사람이 자란다는 것이 어떤 건지 배우게 된단다. 딸아, 너에겐 유년시절, 함께 한 친구들이 많아서 참 부럽다~~~ 엄마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네. 대신, 엄마도 우리 딸들 덕분에 좋은 엄마 친구들 많이 생겼어~ 고마워~ 너희 덕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