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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Aug 12. 2020

왼쪽 무릎 아래 하트가 말해 주는 것

7월 14일 

 둘째가 일주일 하루 학교 가는 날이었어요. 둘째랑 약속을 해서 끝나는 시간 마중을 가기로 했어요. 나가려고 할 때 빗방울이 떨어져서 우산을 챙겼죠. 시간이 촉박했어요. 어찌할까 고민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한 손에는 우산을 쓰고, 한 손으로 가보기로 한 거죠. 조금씩은 한 손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온전히 한 손으로 가야 하니 고민은 했지만, 가보자 했어요. 

 5분 거리지만, 자전거로 조금이라도 단축해보고자 했던 마음에 속도를 냈어요. 한 손으로도 괜찮더라고요. 아파트 단지 길이라 장애물도 별로 없고, 다닐 만했어요. 그러다, 공사의 잘못인지 아스팔트 자체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길을 건너는 순간, 아뿔싸. 자전거가 휘청하더니 드디어 균형을 잃었어요. 넘어가면서 손에 힘을 줬어야 했는데, 그 생각까지 못한 거죠.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 슬로비디오처럼 지나가네요. 조금이라도 덜 넘어지겠다며 몸을 끝까지 오른쪽으로 쏠려 보지만 결국 왼쪽으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어요. 왼쪽 무릎 아래쪽이 정확히 아스팔트에 꽂혔고, 너무 아팠지만 창피하니까 얼른 일어났어요. 또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딸을 생각하면서요.  

 아, 절뚝거리며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무릎이 쓰라려요. 그래도 어떡해요. 빨리 가야죠. 한 손으로 탈 때 도로 상황에 따라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함을 뼈저리게 배우고, 그냥 걸어올걸 후회하며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는 무릎에서 피가 흐른다며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고, 저는 "엄마, 괜찮아~~"하며 집으로 향했죠. 사실, 아팠는데도요. 

 괜찮다는 말이 참 익숙해요.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면이 있어요. 아프면 아프다고 해, 뭐가 맨날 괜찮냐고요. 저도 괜찮다는 말이 참 익숙했네요.


 일단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는데 쓰라리고, 진물이 나서 물이 자꾸 나오네요. 하루 한 번씩 밴드를 갈아야 하니 떼고 붙일 떼마다 상처를 보게 되잖아요. 도무지 아물 생각을 안 해요.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가운데 부분은 계속 진물이 나오고 생살이 보이니 걱정이 됐어요. 예전에도 엄지 손가락에 상처가 났는데 아물겠지, 아물겠지 하다가 한 달이 넘어도 낫지를 않아서 뒤늦게 피부과에 갔어요. 손가락에 주사를 콱 놓는데 어찌나 아팠던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약도 열심히 발라주고, 밴드도 갈아주면서 잘 낫기를 기다렸어요.


 3주가 넘으니, 서서히 딱지가 앉기 시작했어요. '아, 드디어, 딱지가 앉는구나.' 무릎 아래쪽이라 굽히고 펼 때마다 당기는 느낌이 불편했지만, 딱지가 앉으니 안심했죠. 피부과는 더 안 가도 되겠구나. 딱지가 지니 밴드에 달라붙지 않아 갈기도 쉽고, 이제 제게 더 신경이 쓰이지 않는 존재가 됐어요. 익숙해진 거죠.

 드디어, 4주 만에 딱지가 달랑달랑하더니 어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떨어져 있더라고요. 한 달 동안 신경을 쓰이게 했던 상처가 완쾌했다는 시원함과, 꽤 큰 딱지였는데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 버려 아쉬움이 함께 오네요. 저는 몸에서 생긴 새로운 부산물들 관찰하기를 좋아하거든요. 딱지가 떨어진 곳에는 핑크빛으로 올라온 새 살이 짜잔 하고 돋아났어요. 마치 핑크 하트 같아서 귀엽게 보이기도 했어요. 잘 이겨냈다고 주는 선물처럼 제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네요. 다 나은 줄 알고 무릎으로 바닥을 찍고 일어날 때, '아야' 하며 알아차렸죠.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끼처럼 새 살도 닿으니 쓰라리고, 연약한 상태란 걸요.


 4주간의 상처와 동고동락하면서 단계별 아픔과 나아감이 신선하게 보였어요.  예고 없이 찾아온 상처에 놀라고 아플 때,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서 낫도록 돌볼 때, 딱지가 앉아서 편안해졌을 때,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 완료될 때까지요. 상처는 상처일 뿐이지만, 단계별의 상태는 다르죠.

 

 마음에도 상처가 나면 그 단계를 알아차려 보는 거예요. 막 생겨나서 쓰라리고 괴롭다면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와 공감, 치유의 시간을 주어요. 마음에서 튼튼하게 감싸주는 딱쟁이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기다려줘요. 매일 줄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을 주는 수밖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엔가 딱쟁이가 생길 거예요. 이젠 아픔이 느껴져도 전보다 훨씬 적을 거고, 나아가는 중임을 떠올리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딱지가 생기니까 아픈 것도 잊고 있었는데, 새살이 돋으면 적응하느라 몇 번 더 건드려지죠. 그렇지만 금세 툭툭 털고 지나갈 수 있어요. 잘 아물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해요.

 왼쪽 무릎 아래 하트가 마음을 단단히 지켜줄 것 같아요. 상처에 대응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알려 준 타투를 새긴 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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