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상담사 Uni Aug 16. 2020

눈물, 당당히 흘리자

천 개의 감정

 지난 7월부터 종이 신문을 구독했어요. 코로나 이후 바뀌는 시대에 적응한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소식을 다양하게 접하자는 의도였어요. 예상과는 달리 매일 꼼꼼히 살펴보지 못하고, 짐처럼 쌓여가기만 했죠. 오늘은 주말을 맞아 식탁에 널찍하게 펼쳐놓고 꼼꼼히 읽어보기로 했어요.


 첫 장부터 저의 이목을 끄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려있네요. 남녀를 불문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부끄러움을 강요하는 '성적 수치심'을 묻지 말고, 다른 말로 대체하여 '성적 불편감' 등의 표현을 제시하는 기사였어요.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건 수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묻는 사항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냐는 말이래요. '수치심'의 심리학 용어사전 뜻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결점이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고 판단할 때 발생하는 정서'예요. 분명 피해를 당한 당사자인데도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법원 판결문에는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2011도 8805)이라고 되어 있어요. 피해자분들 중에서 '불쾌함, 분하고, 더럽고, 황당하고, 고통스럽고, 경악스럽고, 토할 것 같고, 속상하고, 비참하고, 괘씸하고, 두렵고,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배신감, 모욕감, 굴욕감'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임에도 '성적 수치심'이 처벌의 큰 척도로 판단되고, 사회가 이를 강요하고 있다는 의견이 실렸어요.

출처: 픽사베이

 세상이 많이 변한 만큼 시대착오적인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 대신에 피해자를 향한 공감의 언어와 피해감정을 대변하기에 적절한 표현이 무엇이 있을까요? 성적 불쾌감, 성적 모욕감, 성적 혐오감 등이 조사 결과 나왔어요. 독일에서도 성적 수치심을 삭제했고, '불쾌감 유발', '성적 남용' 같은 표현으로 대체되었다고 해요.

출처 :  한겨레신문 2020년 8월 15일 3면 강요된 '성적 수치심'

 제가 이 기사를 읽고 기록하고 싶었던 이유는 모든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였어요. 누군가는 성적 불편감으로 분노, 불편, 두려움을 느끼고, 당연히 누군가는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어요. 수치심 역시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치부하면 안 되죠.  천 명의 피해자가 있으면 천  이상피해감정이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에 울컥했어요. 저 역시 크고 작은 성폭력의 피해의 경험에서 공감되는 말이었나 봐요.


  눈물이 쏟아질 듯 차오르자 가족들이 모두 거실에 있던 상황이라 눈물을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 순간, '나의 눈물이 창피한가? 감춰야 할 감정인가'라는 생각이 스치는 거예요. 기쁠 때 웃는 건 괜찮고, 슬퍼서 올라온 눈물은 왜 보이지 않아야 하는가.. 눈물을 보고 당황할 상대를 배려해서 얼른 닦아내고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하는 건지.

 

  오늘 본 유튜브에서도 한 가수가 곡에 심취했다가 마지막에 감정이 올라오고, 눈물을 보였어요. 그랬더니 모두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고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이 슬픈 마음이구나. 마음이 아팠구나'하면서 그 마음을 보아주면 되어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더 위로가 될 거예요. 상담실에서도 눈물을 흘리면 '죄송해요.'라며 얼른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시는 분들도 있어요. 나를 가장 안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곳인데도요. 그래서, 저는 초기면담 때도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올라오면 자연스럽게 표현하셔도 된다고 먼저 안내를 드립니다. 편안히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어요.

출처: 픽사베이

 저도 눈물을 당당히 흘리기로 했어요. 가족들이 모두 강아지의 애교에 빠져 있어서 저를 볼 틈도 없었지만, 저는 눈물을 애써 삭히려 하지 않았어요. 당당히 올라 온 감정을 안아 주었고, 뜨거운 눈물을 만났어요. 눈물, 당당히 흘리세요. 눈물은 약한 것도, 여린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에요. 그저, 내 마음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에요. 그 마음에 한번 더 나의 손길이 닿게 만드는 순간이에요. 눈물이 흘러내릴 때 얼굴을 한번 더 쓰다듬어 주잖아요. 눈물을 닦는 건 나를 보듬어 주라는 하늘의 뜻 아닐까요?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해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마음의 목소리가 당당 하도록요.

매거진의 이전글 왼쪽 무릎 아래 하트가 말해 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