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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Apr 09. 2020

14살, 딸에게 주는 세상 하나뿐인 선물

엄마는 너의 빛남을 기록하는 사람


지난 2월, 첫째 딸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입학식 때 저의 가슴쯤 오던 아이가 어느새 제 키만큼 훌쩍 자랐네요. 딸도 6년이나 다녀서 이제는 지겹다며 빨리 졸업하고 싶대요. 초등학교 바로 옆  중학교 가면서도 빨리 가고 싶다고 설레는 아이예요. 초등학교 졸업식, 특히나 첫째는 늘 첫 번째 경험이다 보니, 아이도 설레겠지만, 저도 내심 기다려지고, 눈물 좀 흘리고 싶은 날입니다. '내가 엄마로 산 보람이 있구나. 언제 저렇게 커서...' 부모로 사는 매일이 매일 같은 일상에 찐한 이벤트로, 감성에 젖고 싶은 날이었죠.


 그러나.. 아.. 천재지변도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대로 발목을 잡네요. 딸의 졸업식에 부모님 출입금지. 학생들 마저도 각자의 교실에서 TV로 지켜보는 약식 졸업식. 딸은 졸업식 전날 교실에 남아서 칠판에 반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글도 적고, 예쁘게 꾸미고 왔다는데 못내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런 날을 대비해서였는지, 6학년 시작하면서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물질적으로 비싸고 거창한 것 말고, 의미가 깊은 선물요. 제 팔의 반 만하던 아기가 제 키만큼 컸잖아요. 그 13년의 시간, 잘 살아왔고, 장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진짜 자기로 살아갈 때 힘이 될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어요. 언제나 제 옆에서 쫑알쫑알 대던 그 아이가 이제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아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거든요. 자연스러운 순리지만, 진정한 자기 탐색 시간 동안 엄마와의 강력한 연결을 전하고 싶었어요.

 유태인 부모님은 자녀의 13세 생일에 성년식을 치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20세에나 하는 성년식을 13세, 너무 빠른 거 거 아닌가 싶지만 인생에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의식으로 보였어요. 전통적으로 성경책, 손목시계, 축의금을 선물해요. 성경은 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책임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이고, 시계는 약속을 잘 지키고, 소중히 아끼라는 뜻입니다. 하객들의 축의금은 부모님이 예금통장에 넣어두어 자녀가 독립하는 날 받는 종잣돈이 됩니다. 그만큼 유태인들에게도 성인으로 가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준비를 돕고, 힘을 모아주는 거겠죠.


 어떤 선물이 좋을까 몇 달을 고민했어요.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의문이 계속 따라다니더라고요. 드디어 작년 10월 말, 두 번째 책을 출판사에 투고한 후,  갑자기 한 문장이 떠올랐어요.


 '딸에게도 책을 써주고 싶다.'


 세상에 하나뿐인 책. 딸의 빛난 순간을 담아주고 싶었어요. 이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질풍노도의 시간을 겪잖아요. 아이에게  진실을 전해주는 거예요. 옆에서 가장 오랜 시간 보아온 엄마잖아요. 공부를 잘해서 1등 하고, 대회 나가서 상 받고, 이런 빛남만 말고요. 아이가 스스로 반짝이는 빛을 낸 순간들이요. 그것들을 기억해내고, 알려주는 거예요. 아이도, 저도 까먹지 않도록요. 기록하지 않으면 수많은 보물들을 챙기지 못할 것 같았어요. 책 퇴고도 미룬 채,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미친 듯이 써 내려갔어요. 지금이 아니면 다신 없을 듯이요.


 딸을 포함,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저만의 비밀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매일매일 1 꼭지씩 써서 11월 한 달 동안 35 꼭지를 모았어요.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분량이죠. 운전을 하다가도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핸드폰에 녹음해서 기록하고, 노트에 밑줄 쫙쫙 그어가며 불쑥불쑥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잡았습니다. 한 달의 비밀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2월 초까지 고이 모셔두었어요. 꽉 채운 후에는 들여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뒤로 미뤄두게 되더라고요. 내용은 풍성하게 만들고, 졸업식에 맞춰 책은 간단히 만들었어요. 어떤 디자인도 넣지 않고, 저의 마음만 편집했습니다. 제 스타일대로^^


편집도 없고, 화려한 겉표지도 아니에요. 소박한 책이지만 이 안에 담긴 보물을 딸이 보아주리라 믿습니다.

 진짜 제목은 <너의 13년간 빛나는 순간들의 기록>입니다. 빛나는 순간들.. 여러분은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세요? 


 집단상담을 할 때 저는 이 주제를 후반에 넣어요. 퍼즐 거울과 큰 도화지, 색연필을 앞에 놓고, 인생의 퍼즐 조각을 맞춰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다들 생각이 안 나신 대요. 자기는 그런 순간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상 받고, 1등 하고, 대단한 성공들만이 빛나는 순간이 아니죠. 사회에서 정한 잣대와 기준 따위는 버려두세요.  내가 나로서 보여주고, 인정받고, 가슴 뛰는 순간들이 있어요. 당신으로 빛나는 순간입니다.


 저는 30대까지도 자존감이 낮은 엄마였어요. 그래서 육아가 힘들었고, 무서웠어요. 특히, 27살에 첫째를 임신했을 때, 제 맘에 두려움이 컸어요.

'자존감 낮은 내가 아이를 어떻게 행복하게 키울 수 있어? 나처럼 인생이 우울해지면 어떡해...'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실수만 하는 것 같고, 부족한 것 같았어요.  요리도 늘 새로운 사람이고, 살림도 똑 부러지게 해 내지 못하고, 경제관념 투철한 남편 앞에서 작 아만지고요. 10개 중에 7~8개를 잘해도 1개를 망치면 저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실수에 예민하고, 완벽에 목매고, 살얼음판 같은 삶이었죠.


 어릴 적부터 칭찬도 못 받고, 제가 무얼 잘하는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저도요, 꼭 칭찬만 받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요. 진짜 저에 대한 피드백이 필요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어떨 때 빛이 나고, 약한 면은 어떻게 보완하고 노력해야 하는지요. 이 퍼즐 조각들이 알려주지 않으면 있는지도 몰라요. 10대까지는 자기 모습을 인지하기 어려운데, 더 고약한 건 어른이 되서도 자기를 볼 줄 모르고 간다는 거예요.  밑도 끝도 없이 사람들의 반응으로만 저를 보려 했어요. 눈치를 보고, 한 마디에 상처 받고, 반응에 목을 매었죠.


퍼즐 조각을 열심히 뒤지다 보니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어요. 그 당시에도 파격적인 숏컷트 머리의 여자 선생님으로, 선망의 대상이었죠. 하루는 출석번호에 불려 국어책을 읽었는데, 선생님께서 "목소리 정말 좋다~ 아나운서 해도 되겠는데!!!" 말씀해 주셨어요. 부끄럽고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진 채로 앉았어요.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죠. '내가? 내 목소리가 좋다고?' 이 순간이 저는 지금도 생생해요.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준 순간을요..


 차츰 빛나는 순간을 찾으며 이제는 7~8개를 볼 수 있어요. 제가 잘하고 있는 모습에 조명을 비추는 거예요. 사람을 대하는 따듯함과 진정성, 울고 웃으며 감정에 솔직하고 아픔에 공감해주는 저의 모습을요. 실수와 잘못을 받아들이고, 개선해가려는 의지도 강한 저를요. 마음먹은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내려는 인내와 끈기를 알아요.


나의 빛나는 순간을, 내가 기억하고 있어야 해요. 그것이 자존감이고, 나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


 세상에 단 한 권인 책이라도 형식은 다 갖췄어요. 들어가는 글부터 시작해요. ' 우리 딸,... 이제 훌쩍 커버린 너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차례도 빼먹을 수 없죠. 어릴 적 빛난 순간, 저 때문에 힘들었지만 고난을 이겨낸 순간, 초등학교 동안 성장해 간 이야기, 그리고, 나이 먹어가는 엄마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까지.







 6학년 반대항 이어달리기에서 이기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해냈어요. 1학기 시합에서 2등 했는데, 2학기 시작하자마자 내내 이 날만 기다렸대요. 머리 모양과 신발, 옷을 달리기 최적화로 선택하고 가더라고요. 마지막 주자로 달려, 1등 했다고 며칠 흥분상태였답니다.



 4살, 딸은 1년 내내 치마 한벌을 걸쳤. 내복에도, 외출복에도, 실수로 젖었을 때도 드라이로 말려 바로 입을 정도로 사랑한 치마였죠. 발레리나가 되겠다며 그 치마를 입었어요. 결의와 목적의식이 짱인 아이였어요.



책 읽기 열풍에 휘말려 한글 빨리 떼라는 엄마의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속도로 배워냈어요. 울고 속상하고 무서웠을 텐데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꺾였죠. 절대 강압적으로 해서 듣는 사람이 아님을 각인시켰습니다.



점수와 기록에 상관없이 마음에 우러나는 봉사시간을 즐겼어요. 세월호 콘서트와 도서관 행사 등에서 점수받기 위함이 아닌 누군가를 돕는 즐거움으로 시간을 선택합니다. 사랑과 도움, 화합이 반짝반짝 빛나죠.



매일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다니던 딸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머리도 예쁘게 꾸미고, 입술도 틴트로 생기 있게 연출한대요. 상황에 맞게 꾸밀 줄도 아는 멋쟁이가 되어가요.




딱 27년을 더 산 엄마가  알게 된 삶의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어차피, 그때 되서야 엄마 얘기 들을 걸 하겠지만요. 훗날 제가 없을 때라도 딸이 언제든 꺼내어 읽을 수 있도록 적어봤어요.





 13년을 살아오는 동안 이 아이를 가장 많은 시간 보아 온 엄마잖아요. 엄마로서, 우리 딸이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잘 몰라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주변에서 말해주는 대로 기억하거든요. 평소에 자주 혼나고, 핀잔 듣고, 잔소리 듣고, 욕만 먹었다면 그런 사람으로 자기를 인식해요. 잘못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필요한 거니까 도와줘야죠.


 아이들의 소소하게 빛나고, 멋있는 모습들을 더 알려주세요. 그 아이가 노력하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모습들을 인정해 주세요. 그 힘들이 뿌리를 깊이 내려야 자기가 가진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의 편견과 잣대로 우리 아이들을 재단하기에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에요.

  

책 선물을 받은 딸이요, 이 책을 한동안 어디든 들고 다녔어요. 그걸로 엄마는 충분합니다.


당신의 빛났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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