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친구가 자신감이 낮다면..
딸아, 엄마가 제일 못하는 일이 뭔지 아니? 사람들에게 엄마가 원하는 거 말하기였어. 지금은 연습 많이 해서 조금씩 하고 있지만, 중요하다는 생각도 못하고 살아왔더구나. 예를 들면 함께 음식을 먹으러 가도, “아무거나, 너 먹고 싶은 걸로” 하면서 상대에게 맞춰왔지. 가고 싶은 장소도 별로 없고. 아니겠지. 엄마도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상대에 맞추느라 말하지 못했던 거야.
엄마는 딸 셋의 첫째잖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엄마와 이모들을 키우셨을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우셨어. 그 당시는 대부분 어려우셨지. 그래도 딸 셋을 키운다는 게 보통 월급으로 안 되잖아. 외할머니께서는 집에서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하면서, 부업까지 하셔야 했단다. 엄마가 되고 보기, 외할머니께서 얼마나 고단하고, 짐이 무거우셨을지,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이 지겨우셨을지 겨우 짐작하게 됐어. 빨리 외할머니 마음 헤아렸다면 첫째로서 책임감을 갖고 도와 드렸을 텐데, 엄마는 그 생각을 그때는 못했단다. 오히려 외할머니가 엄마 마음을 몰라준다고 삐지고, 마음 상해할 때가 많았지. 누가 잘못했다 판단할 필요가 없어. 서로의 상황에서 입장을 이해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되지.
엄마는 첫째로서 동생들 잘 돌보고, 부모님을 살뜰히 돕는 기질이 아니었어. 오히려 둘째 이모가 그런 역할을 잘해 줬지. 그러다 보니, 엄마는 ‘이기적인 아이,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라는 말을 듣게 됐단다. 지금의 엄마 모습 보면 이런 말과는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들을 상황들이 있었지. 외할머니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랬을 것 같아. 외할머니께서 힘들게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제일 언니인 엄마가 그 맘도 몰라주고 자기감정만 내세우고 있으니 좋은 말이 나오지 않겠지. 외할머니도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을 거야.
하지만, 가슴 아픈 건, 엄마의 삶에서 봤을 때 ‘이기적인 아이,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콕 박히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단다. ‘이기적이고 못됐으니까 사랑받으려면 잘해야 한다, 맞춰야 한다, 내 생각대로 하면 안 된다’라는 공식들이 성립되었어. 특히, 고등학교 때부터는 이런 기준을 갖고 사람을 만나왔던 것 같아. 그러니,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거 말하기도 어려웠고, 자기표현을 한다는 게 두려웠어. 버림받을 거 같고, 미움받을 것 같았거든.
‘왜 그 말도 못 하지?’ 의아할 수도 있겠다. 너는 자기표현을 잘하는 아이이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니까. 얼마 전에 네가 그런 말을 했어. 유명한 학습만화 시리즈 중에 ‘심리학’ 책을 읽었다고 하면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이가 있는데, 답답했다고 하더라. 자신감 없고, 자기 말도 잘 못하고 그래서 이해가 잘 안 됐다고 말이야. 그 말 들을 때 우리 딸은 참 자신감이 있구나 하며 대견하면서도 엄마는 좀 찔렸지. 엄마가 그 주인공과 비슷했거든. 지금은 달라져서 괜찮지만 엄마도 어렸을 때는 자신감이 낮아서 무척 고생을 많이 했어.
자신감이 낮아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엄마가 설명한 것처럼 어린 시절의 경험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단다. 그 시절에 부모님, 주변 사람들, 친구들이 자기에게 해 준 말들로 자기를 판단하거든. 어릴 때는 자기가 스스로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우니까 듣고, 본 대로 결정을 내리는 거야.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을 그렇게 판단하게 된단다. 머릿속 뇌의 생존본능 때문에 그렇단다. 환경에 적응해서 잘 살려면 그동안 접수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나를 인식해서 못하는 건 대비하고, 노력하라는 이유가 있더라. 그런데 이런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대다수가 몰라. 그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고, 맞춰가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 어린 시절의 경험들에 기반해서 자기를 규격화해 놓은 줄 모르고, 태생부터 자존감이 낮다며, 자신감이 낮다며 우울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되지. 안타까운 일이야. 그래서, 엄마는 열심히 알려주고 있단다. 당신은 이미 소중한 사람이라고, 언제나 그랬다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렇다고 말이야.
딸아, 너도 겉으로 이야기할 때는 “내가 역시 최고지~~”라고 말하지만 자존감이 낮고,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니?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 때문에 느껴질 수도 있어. 그 순간을 잘 떠올려 보고, 그때를 객관적으로 바라봐봐. 너만의 잘못이 아닐 테니 말이야. 그래도 해결이 안 될 때는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겠니? 엄마랑 같이 찾아보자.
혹시 주변에 자신감이 낮은 친구들이 있다면 우리 딸은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인정과 칭찬, 지지의 말들을 해 줄 수 있겠니? 그 친구에게 그런 표현들이 부족해서 자신감이 낮았던 거니까 너의 보석 같은 마음이 분명 힘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