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과 자가발전
아이야.
엄마는 너를 10년이나 공동육아로 키웠어. 그 중 공동육아방과후에 다녔던 시간, 6년. 학교 끝나고 늘 그곳에서 친구 뿐 아니라 언니, 오빠, 동생들과 실컷 뛰어놀고 어울리는 시간을 보냈지. 엄마와 아빠가 모두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누군가가 널 돌봐 주길 원했고 공동육아를 선택해 이사까지 감행했지.
널 공동육아방과후에 보내고 좋았던것 중 하나는 다양한 생활 능력을 키운다는 것이었어.
저학년 때부터 자기가 사용할 사물함을 직접 만들고, 자기가 쓸 필통을 만들고, 자기가 안고 잘 인형을 만들고, 추울 때 목에 두를 목도리를 떴어.
고학년이 되어서는 합심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부모들에게 팔기도 했지. 돈까스도 팔고 주물럭도 팔고 카레도 팔고... 엄마는 저녁 한 끼를 해결할 따뜻한 메인 반찬이 생겨 좋았어. 너희들은 모든 공정을 직접 해 보고 함께 만든 음식을 팔면서 뿌듯하고 흐뭇했을 거야. 그 돈을 함께 모아 졸업할 때쯤엔 직접 여행지를 골라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가게 될 거라 더욱 기뻤을 거야.
고학년이 되자 공동육아방과후에 가지 않는 날이 생겼어. 엄마의 최대 고민은 너의 저녁 식사. 어릴 땐 엄마, 아빠가 모두 퇴근이 늦으면 다른 집으로 ‘마실’을 보냈는데 언젠가부터 네가 그냥 혼자 있기를 선택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었거든. 엄마는 네게 밥 한 끼 정도는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고 싶었어.
예습은 충분했어.
유아기 때부터 주말이면 너와 요리를 함께 했고 그때부터 플라스틱 칼을 잡게 했었으니까. 공동육아방과후에서 이미 빵 굽기, 라면 끓이기, 계란 부치기 등 기본을 뗐으니까. 공동육아는 요리를 ‘이벤트’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활 능력’으로서 습득하게 하는 곳이었어. 열 살 무렵부터는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과일도 깎고 야채도 썰어 보면서 날카로운 칼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야근을 하게 된 어떤 날, 기회가 생겼어. 너에게 부여한 첫 미션은 엄마가 준비해 놓은 요리를 멋지게 차려 사진을 보내 달라는 것. 엄마와의 재미난 놀이를 하듯 너는 첫 미션을 아주 즐겁고 뿌듯하게 해냈지. 사진을 보니 식탁 매트까지 꺼내서 차렸더라. 엄마에게도 너의 뿌듯함이 한껏 느껴졌어.
아이가 처음으로 자기만을 위해 차린 밥상
사실 요리를 한 건 아니었어. 엄마가 만들어 놓았던 볶음밥에, 냉장고에 있던 돈가스를 데우고 반찬을 꺼낸 것뿐이었지.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너의 사진을 받고 폭풍 칭찬을 해 주었어. 언제나 대단한 요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 자기 자신만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경험 자체가 너무나 소중한 거거든. 엄마가 집에 오니 너는 맛있게 혼자 저녁밥을 먹고 식탁도 싹 치워 놓고는 소감을 말했지.
- 엄마, 내가 차린 밥도 너무 맛있었어. ㅎㅎㅎ 근데 밥 차리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겠어. 내가 쫌 귀차니스트잖아.
- (ㅎㅎ) 그랬어? 혹시 10여 년을 매일 밥 차려 준 엄마 생각은 안 났고?
- 헐 그렇다고 할게요. (영혼 없이) 녜~ 녜. 근데 엄마, 내가 생각해도 오늘 나 쫌 괜찮았어.
너의 자화자찬의 말을 듣고 엄마는 생각했지. 스스로를 위해 밥상을 차려 먹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되었구나!
나 자신을 위해 밥상을 차려 보는 것. 네가 그 날 경험한 것은 그것이란다. 그래서 너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걸 거야. 스스로를 위해 밥상을 차린 나라서 뿌듯했을 거야. 스스로 차려 나 자신에게 귀하게 대접했기에 뿌듯했을 거야. 너는 스스로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 거야. 그날, 엄마의 눈에는 네가 너무나 반짝였단다. 엄마의 마음속 목소리가 너에게 닿았을까. ‘아이야. 너는 네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의 경험으로 느낀 거란다.’
그 이후 2년 간의 코로나를 거치며 너는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어. 그날을 시작으로 너의 밥 차려 먹는 능력과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하기 시작했지.
어느 날부터인가 미리 준비해 놓고 나온 엄마의 요리를 먹지 않고 메뉴도 스스로 정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어. 유튜브가 선생님이었나 봐. 마늘을 편으로 썰고(응? 마늘을 편으로 썰었다고?!!!) 소금을 뿌려 마늘새우버터구이를 해 먹었다고 사진을 보낸 날도 있었지. 깜짝 놀란 엄마에게 너는 쿨하게 말했지. “엄마, 이건 어려운 요리는 아니야.” 엄마는 마늘을 편으로 썬 것에 놀랐는데 너는 어려운 요리는 아니라고 했어. (마늘을 편으로 썰어 요리해 먹는 중학생이 흔치는 않거든. ㅎㅎ)
어느 날은 된장찌개 레시피를 묻길래 가르쳐 주고 나갔더니 혼자 된장찌개를 끓여 먹은 날도 있었지. 너는 상하지 않게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 날 아침, 엄마, 아빠 맛보라고 네가 손수 끓인 된장찌개를 꺼내 상을 차렸어.
- 엄마, 아빠! 내가 어제 된장찌개 끓여 놓은 거 아침으로 먹자. 맛있게 잘 됐어. 근데 엄마, 나 이거 만드는 데 두 시간 걸린 거 알아? ㅋㅋㅋㅋㅋ
그렇게 오래 걸린 게 네가 생각해도 웃긴 지 냉장고의 된장찌개 냄비를 꺼내며 너는 키득키득 웃었어. 감자, 호박, 양파, 버섯... 야채마다 씻고 껍질 벗기고 썰어야 하니 처음 하자면 오래 걸렸을 테지. 너의 소소한 경험담과 너의 작은 웃음이 엄마는 참 좋았어. 처음 네가 끓여 대접해 준 된장찌개. 맛도 좋았어. 어느새 엄마가 준비해 놓은 저녁을 차려 먹는 거에 그치지 않고 너는 스스로 계속 나아갔어. 이런 게 자가발전이고 자기발화구나. 언제부터 먹고 싶은 메뉴까지 스스로 선택해 스스로 요리해 먹는 레벨이 된 거지? 엄마는 너에게 감탄하고 놀라고 있었어. 넌 엄마의 기대 이상이었어.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너는 그 흔한 배달 음식 한 번을 시켜 먹은 적이 없어. (사 먹는 음식은 엄마가 좋아하지. ㅎㅎㅎ)
사실 너의 외할머니는 네가 1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엄마가 늦게 올 때마다 저녁을 혼자 차려 먹는 널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실 때가 많았어. 할머니는 아이들 앞의 돌부리를 모두 치워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시거든. 엄마는 네가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지 않기를 바랐어. 할머니께는 속으로 그런 생각 하시더라도 너에게는 말하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어.
맞벌이로 바쁜 부모를 둔 네가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들. 엄마는 네가 그 시간들을 스스로 즐겁게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너의 시간을 가꾸어 나가는 기쁨을 알았으면 했어. 왜 우리집에는 엄마, 아빠가 없지, 혹은 왜 나는 매일 저녁마다 혼자이지, 그런 것에 집중하며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어. 사실 매일 엄마나 아빠가 집에 있는 아이들 중 집이 답답하고 간섭이 싫어 부모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많은 걸. 사실 엄마도 그랬고.ㅎㅎㅎ 다행히 너는 그 시간을 너무나 즐겁고 알차게 채워간 듯했어. 너에게 참 눈물나게 고맙다.
아이야.
엄마의 바람은 네가 혼자 있어도 밥 한 끼 잘 챙겨 먹기를 바란 아주 작은 것이었어.
그런데 넌 그 시간 동안 너는 정말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한 끼 차려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요리 실력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요리 실력보다 더 귀한 것을 배웠다는 것을 엄마는 네가 훨씬 더 커서야 깨닫게 되었단다. 넌 요리하는 능력을 장착했을 뿐만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요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 있더라.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대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 있더라. 어느 날 보니, 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엄마, 아빠를 비롯한 타인에게도 요리를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네.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말이 맞나 봐. 엄마는 요즘 널 보면서 그런 것마저 느낀단다.
아이야.
이렇게 잘 자라 주어 정말 고맙다.
요리 능력을, 생활 능력을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아이로 자라 주어 고맙다. 엄마는 너를 보면서 많이 배웠는데도 네가 없는 지금 엄마 자신을 위해 요리 하나 해내기가 쉽지 않구나. 엄마도 스스로 엄마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 볼게. 너에게서 더 힘껏 배워볼게. 조금씩 나아지는 엄마를 지켜 보아 주렴.
진정한 삶은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곳에 존재한다.
-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