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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지

너에게 배운 것들 1

by 아라 Mar 05. 2025

아이야.

엄마는 너에게 배운 것이 참 많아.

아마 학교에서보다도 너에게 배운 것이 더 많을 거야.

직장 생활하며 배운 것보다도 너와 생활하면서 배운 것이 더 많을 거야.

이제 그 이야기를 하나씩 해 보려고 해.      


아이야.

네가 한글도 다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거 기억나니?      


너도 알겠지만 네가 다녔던 어린이집은 7세 전의 아이들에게 인지 교육을 시키지 않는 곳이었어. 덕분에(?) 너는 7세가 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한글을 못 떼고 있었지. 어린이집의 다른 친구들 중에는 한글을 읽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고.

     

엄마는 겉으로는, 머리로는, 네가 네 속도대로 배워갈 것이라고 믿었지만 마음 속으로 사실은 조바심이 났었나 봐. 네가 며칠 후면 8세가 되는 어느 날, 너에게 묻고 말았지.  

    

- 너는 한글 못 읽어도 안 답답해?

- 어. 안 답답해. OO한테 물어보면 다 읽어 줘!

      

너는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어. 크. 정말 안 답답해 보이더라구. ‘그래, 넌 안 답답해서 좋겠다.’ 헛웃음이 나오는데 네가 조금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어.


- 근데 엄마! 시계는 친구들이 다 나한테 물어 봐!     


너의 대답과 너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

그 순간을 엄마는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엄마가 너무 부끄러웠거든. 그리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거든.      


4년의 공동육아어린이집 생활이 끝나가는 즈음이었어. 엄마는 그 곳에서 교육이사 임기를 마친 뒤였어.

      

말로는,

아이마다 다 타고난 것이 다르다고, 아이마다 재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고 그것을 알아봐 주고 키워 주는 것이 부모이고 교육이라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으면서 정작 엄마는...

엄마는 그렇지 못했던 거야. 그저 곧 학교 가는데 한글도 못 떼서 어쩌나, 싶었던 거야.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으로 너희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 다시 보니까 그제야 너희들이 한 명 한 명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너에게 종종 한글을 읽어 주었던 그 친구는 글을 가장 빨리 읽었지. 또 OO이 기억나니? 그 아이는 정말 보기 드문 ‘태릉인’이었어. 6세였던가? 너희들은 줄넘기를 앞으로도 한 개를 못 하는데 그 친구는 뒤로도 줄넘기를 해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했어.

      

그리고 너.

엄마는 그날, 7세 아이들이 대부분 바늘이 달린 시계를 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게 너의 고유한 특성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생각해 보니 너는 훨씬 어릴 때부터 숫자를 좋아했다는 것도 떠오르더라. 차만 타면 하나, 둘, 셋, 넷... 4살 때부터 100까지 세는 게 취미였어.

     

아이들 각자가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것처럼 관심사도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 그리고 보니 너에게는 열등감도 위축감도 전혀 보이질 않았어. 친구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전혀 보이질 않았어. OO이는 글씨를 잘 읽고, OO이는 줄넘기를 잘 하고, 나는 시계는 잘 본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 

     

엄마는 곧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큰 고마움을 느꼈어. 선생님들이 ‘곧 학교 가야 하는데 OO이는 글씨를 잘 읽네?’ 그것만을 칭찬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너는 한글을 못 읽는 것에 주눅 들거나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몰라. 너희들도 서로를 투명하게 본 것이겠지만 선생님들이 분명히 얘기해 주셨을 거야. 각자의 아름다운 고유성을 알아보고 너희들에게 얘기해 주셨을 거야. 그리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했어.

     

너에게는 비교하는 마음이 없었어. 한글 모른다고 위축되지도 않았고 시계 볼 수 있다고 잘난 척하지도 않았지. 한글은 한글을 잘 아는 친구에게 물어보고, 또 시간을 묻는 친구에게는 네가 시간을 알려주고. 각자 잘 하는 것으로 친구를 도와주면서 서로 비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던 너희들의 모습이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결국 한글을 다 읽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했어.

네가 한글 모른다고 주눅 들지 않으니 엄마도 주눅 들지 않기로 했어. 그래야 너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거든.


초등학교 입학 후 1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첫 상담 때, 아이에게 아직 글도 숫자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 아이가 모르는 것을 학교에서 하나씩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배우는 즐거움을 알아갔으면 한다고 진심으로 부탁드렸어.

      

다행히 선생님은 학교에 와서 즐겁게 배우는 아이가 적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잘 가르쳐 보겠다고 해 주셨지. 퇴임을 앞둔 신경질적인 선생님이라는 소문에, 귀찮아하거나 노여워할 수도 있겠다, 각오를 했었는데, 다 소문일 뿐이었고 다 엄마 선입견일 뿐이었어. 너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한글과 숫자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재미있게 배웠지. 그제야 억지로 가르치지 않길 잘했다, 안도가 찾아왔어.

      

아이야. 정말 고맙다.

엄마는 네 덕분에 사람 한 명 한 명이 가진 고유성을 알아보기 시작했어. 사람 하나하나가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빛이 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어. 너는 엄마가 몰랐던 세상을 가르쳐 주었단다.


‘아이에게 무엇이 결여됐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 대럴드 트래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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