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라 Mar 07. 2022

시동생 이름을 부를지라도

콩가루 집안은 아니랍니다

우리 부부는 캠퍼스 커플이다. 남편은 다른 지역 출신이라 대학 때부터 자취 생활을 했다. 남편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 역시 형(=나의 남편)을 따라 같은 대학으로 진학했고 자취 생활을 했다. 우리 부부가 결혼을 한 뒤, 혼자 살고 있던 남편의 동생과 식사를 함께 하거나 만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 동생도 연애를 하게 되면서는 두 커플이 함께 만나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역시나 형을 따라 동생도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ㅎㅎ 우리 부부와 남편의 동생(=시동생) 커플이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인데, 서로 학번만 모두 다른 것. 그 중 학번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나다.

남편은 10년 동안 나를 ‘누나’라고 부르다가 결혼했고 형의 뒤를 이어(?) 남편의 동생도 나에게 ‘누나’라고 불렀다. 남편 동생의 여자 친구는 나를 ‘언니’라고 불렀고 나의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다. 우리는 동생 커플 각각을 이름으로 불렀다. 우리는 아주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만나면 꽤 서로 편안해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ㅎㅎ) 가끔 만나면 함께 밥을 사 먹기도 하고 요리를 함께 지어 먹기도 하고 결혼을 먼저 한 우리 집에도 드나들고 지냈다. 그러면서 모두 형, 누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지내다가 시동생도 역시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두 커플 모두 결혼을 하고 나니 당연하게도 시가에서 이렇게 넷이 만나는 일이 최소한 생신이나 명절마다 생기게 되었다.


문제는 이놈의 호칭이었다. 우리는 결혼 이후에 만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결혼 전에 부르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우리끼리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시부모님이 보실 때는 격식에 맞지 않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명절에 만나서 내가 시동생에게 이름을 부르면 어머님은 “도련님한테 OO이가 뭐냐?” 라고 하셨다. 시동생의 배우자가 나의 남편에게 ‘OO 오빠라고 부르면 “오빠는 무슨 오빠야? 아주버님이지!” 버럭 하셨다.   아무도 호칭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던지 곧잘 이런 잔소리를 들었던  같다. 우리는 서로 웃음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러게요.” 했고 그래도 어머님, 아버님 앞에서는 신경 써서 도련님, 아주버님, 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도련님이라고 부르면 시동생이  그러냐며 오글거려 했고 시동생의 배우자가 나의 남편에게 ‘아주버님이라고 하면 남편이 오글거려 했다. 시부모님이 못마땅해 하셨지만 사단이 나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인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부모님과 3형제 부부를 합하면 모두 8명의 어른이 모이는 셈인데   콩가루의 후예들이 4명이나 되었고 형님 부부는 호칭으로 시비를 거는 류의 고리타분한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2 구도가 되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어쩌지 못하셨던  같다. 호칭 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언니, 오빠 하면서 “우리, 정말 콩가루 집안이야.” 하며 킥킥거렸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가 콩가루 집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콩가루여도 아무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2018년경부터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서 ‘성평등 생활사전’을 만들어 발표하기 시작했다. 2020년 여성신문에 나온 자료에 보니, 세상에, ‘도련님’, ‘아가씨’ 대신 ‘~씨’라고 부르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 우리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도련님, 아가씨 안 쓰고 있는데? 이제 보니 우리는 콩가루 집안이 아니라 세상을 10년 이상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결혼 당시부터 이미 장모님, 장인어른 대신 어머님, 아버님을 사용하고 있고, 나도 시댁, 처가 대신 시가, 처가라는 명칭을 동등하게 사용하고 있다. 아이는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를 때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아니라 지명을 붙여 부른다. 광주 할머니, 대전 할머니 등으로 말이다. (실제로 광주, 대전은 아니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바꿨다 ㅎㅎㅎ)


시동생 부부는 결혼 몇 년 차쯤 직장을 따라 해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호칭 습관은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더 들었어야 고칠 수 있었을 텐데 시동생 부부가 해외 생활을 하게 되면서 눈치 보며 서로의 호칭을 부를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아이가 10 무렵 아이만 데리고 14시간을 비행해 해외에 사는 시동생네 다녀온 적이 있다. 여전히 시동생 부부의 나에 대한 호칭은 언니, 누나였고 나는 둘의 이름을 불렀다. 남편 없이 멀리 있는 시동생네 부부를 방문하는  하나도 꺼려지지 않았다. 시동생 부부도  없이 내가 아이와 방문하는 것임에도 방문을 환영하고 편안하게 맞이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직장 일정도 조정해 함께 시간을 보내 주었고 매일 밤늦도록 추억도 되새기고 대화도 나누었다. 최근 명절을 맞아 정말 오랜만에 시동생 부부와 한꺼번에 넷이 영상 통화를 했는데 우리 호칭은 여전히 오빠, 언니, 그리고 이름.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밀하게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친해서 도련님, 아주버님 대신 언니, 오빠를 사용하는 건지, 언니, 오빠 호칭을 사용해서 친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이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한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 호칭이 한 몫 하는 것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후 아이 낳지 않고 버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