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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r 03. 2022

결혼 후 아이 낳지 않고 버티기

달아달아 밝은달아

우리 부부는 결혼 전 가치관이 잘 맞았다.

우리는 같이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고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함께 살기로 했다. 우리 인생 계획에는 아이가 없었다.


그런데 양가 부모님이 문제였다. 분명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리라 기대할 것이며 아이를 바랄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의논 끝에 일단 부모님을 벌써부터 걱정하게 해 드리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일단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다.


명절이나 생신에 만날 때마다 때때로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양가 부모님은 아이 소식이 없는지 물으셨다. 내 대답의 90프로는 하하 웃으며 "그러게요. 아직 안 생기네요?" 였다. 처음 1-2년은 이렇게 대답해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으셨다. 3-4년이 지나가 슬슬 걱정과 의심을 하시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가 하는 걱정과 의도적으로 피임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일단 우리는 의심을 거두고자 했다. "아유 무슨 소리세요? 생기면 낳을 거에요."


3-4년이 경과하자, 시가보다 나의 본가 부모님들이 더 몸이 달았다. 급기야 용한 한의원을 찾아 나섰고 아이를 갖게 해 준다는 한약을 지어 보내기에 이르렀다. 아이도 갖게 한다는 한약이니 보나마나 비싼 한약일 거고 몸에도 엄청 좋은 한약이겠지, 싶었다. 나는 한약을 받아서 정성껏 챙겨 먹었다. 아이를 가지려면 스트레스가 가장 안 좋다 하는데 효도를 위해 스트레스는 받지 않기로 했다. 몸에 좋은 보약, 비싼 보약 이번 기회에 한 번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다. 몸에 좋은 한약이니 열심히 먹으면 되었고 그러고도 아이가 안 생기면 욕 먹는 건 내가 아니고 한의사였다. 내가 걱정할 일은 생길 것이 없었다.

가끔 부모님이 아이가 안 생기느냐 물으실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내 대답은 "그러게요. 아직 안 생기네요. 이게 사람 힘으로 되는 건가요? 때가 되면 생기겠죠." 였다. 때로는 "욕심 부리고 조바심 내면 더 안 생긴다는 얘기가 있으니 내려 놓고 있으려고요." 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모님께는 최대한 네네, 하고 의견을 들었다. 부모님이니 걱정하실 수도 있고 걱정하실 만도 했다. 아이를 바랄 수도 있고 기대하실 수도 있다. 그럴 수 있음을 알기에 걱정하는 얘기들은 그냥 들어드렸다. 하지만 그게 우리 인생을 부모님 뜻대로 맞추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가끔 욱하는 마음이 들어 반박하고 싶은 얘기들도 있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애썼다. 이 때 터득한 나의 능력 중 하나는 '달아달아 밝은달아' 능력이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어야 할 때 마음 속으로 '달아달아 밝은달아'를 무심하게 노래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의 뜻에 따라서는 아니지만 우리 삶과 생활에 변화를 맞이한 후 영 허무하고 심심한 마음이 들었던 어떤 해에 우리의 결정으로 1년만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워낙 오래 피임을 해 와서인지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마음을 내려 놓고 그래, 둘이 재밌게 살아보자, 결심을 굳혔다. 노력하기로 한 기한이었던 1년이 지나기 딱 4일 전, 12월 27일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도 놀라서 날짜도 잊히지 않는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아이에 너무 깜짝 놀라서 나는 엉엉 울었다. "나 어떡해."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있건 없건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결혼 6년차에 아이를 낳았다.


우리가 결혼  5  부모님에게 약간의 걱정을 안겨 드렸음은 부정할  없다. 하지만 부모님과 어떤 갈등도 하지 않고 우리가 낳고 싶을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남이 권한다고 결정할 일이 아니다. 부부가 결정하고 부부가 알아서  일이다. 부모의 뜻에 따라야 하는 종류의 일이 결코 아니었다.



최근 우연히 법륜스님이 힐링캠프에 나온 영상 클립을 보게 되었다. 고부 갈등에 대해 해결책을 구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어요. 그게 부모라 하더라도... 결혼을 해라, 뭘 하라 그러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는 해야 돼요. (중략) 그런데 그건 그 분 인생의 요구고 내 인생은 내 인생대로 살아야 해요. 그게 자꾸 뒤섞이게 되면 자기 인생의 진로가 안 생기죠. 부처님이 출가하실 때 엄마가 울고 불고 반대했다고 하면 부처가 못 됐을 거에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하러 갈 때 엄마한테 얘기했으면 반대했을 거 아니에요? 스무 살 넘어 부모님 말 너무 듣는 사람 중에 인생 제대로 피는 사람 없어요.  (중략)"


"부모가 늘 자식을 염려하는데 그건 그거대로 고맙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러나 내 갈 길은 내 갈 길대로 가야 해요."


그렇다. 스무 살 넘은 성인이라면 부모의 걱정과 기대는 그거대로 이해하되, 자기의 길은 자기가 찾아가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지만 부모라 하더라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이 시기를 보낸 이후 생긴 딱 하나 부작용이 있다.

아이가 10대 초반쯤이었나? 어느 날 내 잔소리에 반박이나 화를 내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는 거였다. 다다다다 잔소리 하다 어느 새 화가 가라 앉은 나는 문득 아이에게 물었다.

"왠일이야? 엄마가 이렇게 잔소릴 하는데 화를 안 내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 엄마도 oo 할머니가 얘기하실 때 그런다며? 나도 달아달아 밝은달아 노래 불렀는데, 왜?"

"풋." 당시 나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터졌다. 아이에게 얘기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이웃집 엄마에게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나는 아이가 이걸 배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빠가, 또 주위의 누군가가 아이의 선택과 인생에 대해 감 나와라, 대추 나와라 할 때 아이는 '달아달아 밝은달아' 노래하면서 자기 갈 길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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