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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난 그렇게 미운 사람 아니거든!

너에게 배운 것 2

by 아라

아이야.

엄마에게는 잊혀지지 않고 기억나는 너와의 한 장면이 있어.

너도 이걸 기억하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엄마 이야기 들어볼래?


어느 날, 네가 양치할 시간에 늑장을 부리고 있었고, 엄마는 빨리 하루일과를 마치고 싶어 너에게 말했지.

“밤이 됐는데 양치도 안 하고, 그러면 미운 사람이야!”


너는 칫솔을 들고 엄마에게 ‘메롱’을 날리며 말했어.

“엄마! 나는 그렇게 미운 사람 아니거든!”


엄마는 이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네가 너에 대해서 갖고 있는 믿음. 너 스스로 '미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믿음이 소중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일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에 대해서 너만큼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 아이야. 맞다. 네 말이 맞다. 누가 너에게 뭐라든, 누가 너를 미운 사람이라 생각하든 말든, 네가 너를 미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네가 너를 미워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 다른 사람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아도 되지.


그 날 엄마는, 앞으로도 네가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너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아이야. 네가 너부터 사랑하여 너 자신으로 충만한 사랑을 품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나는 나 외의 누구도 아닙니다.

할머니는 모든 사람이 나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무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나옵니다.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키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자신을 꾸밀 수도 있습니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무가 마음에 드는지 여부입니다! (주1)


아이야.

우리 애니메이션 보는 거 좋아해서, 얼마 전에 우리 가족들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았잖아. 'Inside Out 2'.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가 함께 있는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본부'에 낯설고도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하지. '불안이’, ‘당황이’, ‘따분이’, ‘부럽이’, 그리고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제멋대로인 '불안이‘까지. 새 감정들은 어릴 때부터 있던 기존 감정들과 계속 충돌하게 되지.


주인공 라일리는 풋볼 선수인데, 절친 두 친구와 다른 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껴. 그러면서 두 친구를 배신(?)하고 새로 학교에서 만나게 될 선수들과 어울리고 그들에게 맞추어 가. 결국 경기에서도 그들과 한 편이 되어 버리고 감독님 눈에 들어 새 학교의 풋볼팀에 들어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 들지. 이 과정은 모두 라일리 감정본부의 '불안이'가 주도해.


라일리는 어릴 때 만들어졌던 긍정적 자아상을 갖고 있었어. 그런데 사춘기에 찾아온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감정들로 인해 큰 혼란에 빠지지. 라일리 감정본부에서는 불안이가 모든 감정을 제치고 라일리의 감정을 조종하고 있어. 라일리는 불안이에게 사로 잡혀 폭주하지.

'불안아, 라일리를 놓아 줘. 제발...'


불안이가 폭주하고 있을 때 라일리 감정본부의 대장인 기쁨이는 불안이에게 다가가서 마지막으로 조용히 부탁해. 다행히도 결국 불안이를 잠재우는 데 성공하고.


엄마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기쁨이가 불안이를 진정시킨 후였어. 기쁨이가 뭘 했는지 기억나니?

'기쁨이'는 라일리가 어릴 때부터 형성해 온 '긍정적 자아상'을 뽑아 버려.


그 긍정적 자아상은 늘 라일리에게 좋은 말을 속삭여 주었었지.

"I'm a good person." (난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사춘기에 나타난 부정적 자아상이 최근에 자꾸만 등장해 라일리에게 말했지.

"I'm not good enough." (난 부족해.)


원래 기쁨이는 좋은 경험만을 기억에 남겨 두고 나쁜 기억은 날려 버리려고 애썼어. 기쁨이는 불안이가 들고 오는 부정적 자아상을 뽑아 버리고 긍정적 자아상을 다시 심으려고 불안이와 끝없이 갈등했어. 그런데 불안이를 잠재운 후 기쁨이 스스로 긍정적 자아상을 뽑아 버린 거야.

다른 감정들이 깜짝 놀라서 묻지. "기쁨아, 지금 뭐 하는 거야?"


기쁨이는 그렇게 되찾고 싶었던 긍정적 자아상을 스스로 뽑아 버렸으니까.

그러자 거기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 긍정적 자아상이 뽑혀 나간 그 자리에서 곧, 긍정적 자아상도 아니고 부정적 자아상도 아닌, 양극이 통합된 새로운 자아(self)가 돋아나는 거야.

엄마에겐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

새롭게 돋아난 자아상은 둘을 함께 속삭여.


난 이기적이야. 그렇지만 난 친절해.

난 부족해. 하지만 난 좋은 사람이야.

잘 적응해야 돼. 하지만 나답고 싶어.

난 용감해. 하지만 겁도 나.

꼭 성공해야 해. 하지만 난 실수를 해.

난 강해. 하지만 난 약해. (주2)


결국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형성해왔던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나쁜 생각도 하고, 잘못된 행동도 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이분법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긍정적 자아상과 부정적 자아상을 모두 통합해 나가야 하는 거겠지. 인식을 위해서는 양극성을 통합해 나가야 하는 거겠지.


뤼디거 달케는 말해.

하나의 정체성을 선택해 자기 정체성에 포함시키고, 다른 쪽 정체성을 배제하는 것은 너무 주관적인 것이라고.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가능성일 뿐이라고. 그리고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의식의 그림자' 개념으로 설명해.


어떤 결정을 기반으로 생겨난 모든 정체성은 한쪽 극을 제외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되고 싶지 않은 모든 것, 우리가 자기 내면에서 발견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 우리가 겪고 싶지 않은 모든 것,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의식의 그림자'가 된다.

어떤 것을 '거부'하는 것은 비록 한쪽 극을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놓았지만, 그것의 존재마저 없애버린 것은 아니다. 거부당한 극은 이제부터는 우리의 의식성의 그림자 속에서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의 그림자를 항상 외면으로 인식한다. 우리가 그 그림자를 우리의 내면과 우리 몸에서 발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닐 것이다. (중략) 그림자와의 만남은 건강을 회복시켜 준다! (주3)


아이야.

우리, 부정하고 싶은 우리 모습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보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해 보자. 라일리처럼, '못 말리는 생각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행동도 하는' 나, 그런 나를 사랑하자.

그 모든 모습들이 모여 진짜 '내'가는 되는 것이니까.


갑자기 노래가 하나 떠오른다. “This is me.”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 ‘위대한 쇼맨’(주4)에 나오는 노래. 그 장면 기억나니?

수염 난 여자, 꺽다리, 난쟁이... 세상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멸시하는 자들이 함께 손 맞잡고 당당하게 무대 앞으로 등장하는 장면. 그들의 노래와 몸짓, 그들의 특별한 외침! 그들은 함께 노래해.


난 용감해, 당당해.

난 내가 되어야 할 사람, 이게 나야.

잘 봐. 내가 갈 테니

나만의 발걸음으로 나아가리.

남의 시선은 두렵지 않아.

나는 사과하지 않아. 이게 나니까.


어떤 모습이라도 너의 존재와 고유함, 그것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지. 세상의 그 누구도 너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지. 누구도 너만의 고유함을 훼손시켜선 안 되지.


그러니 아이야. 우리 사과하지 말자. 실수나 잘못된 행동은 가능한 한 빨리 사과하는 게 좋지만, 우리의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말자.

그게 너니까. 너는 너라는 유일한 존재이고, 너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으니까.


너는 엄마에게 순수한 영혼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

넌 너 자신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어떤 모습이든 엄마를 사랑해 주었지.


그런 네 덕분에,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어. 너는 엄마가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긍정적인 모습들뿐만 아니라 엄마가 부정하고만 싶어하는 모습들도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어. 엄마의 그림자마저도 받아들이고 통합해 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바로 너란다. 그리하여 그 모든 모습을 포함한 '나'를 사랑하기를 갈망하게 해 준 것이 바로 너란다.


아이야.

네가, 엄마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 주었듯이, 엄마도 너의 그 모든 모습을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엄마도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거, 알지?



주1> 요시타케 신스케(Shinsuke Yoshitake), 『Can I build another me?』, 2016, Thames & Hudson Ltd. 영문본 직접 번역.

주2> 인사이드 아웃 2(Inside Out 2) 대사 중에서.

주3> 뤼디거 달케, 토르발트 데트레프센,『몸은 알고 있다』, 2006, 이지앤.

주4>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 2017.

표지 이미지> Image by Jan Vaše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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