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평함과 앙갚음 사이

by 아라

"도화지 좀 빌려 줘!"

"싫어! 언니도 어제 색연필 안 빌려 주었잖아. 나도 안 빌려 줄 거야. 그래야 공평한 거야." (주1)


어릴 때 저도 많이 겪었던 장면입니다. 두 살 차이 나는 남동생과 오지게도 싸웠습니다. 남동생에게 많이 내뱉었던 말입니다.


커서도 내내 겪었던 장면입니다. 저와 남편은 결혼하고 지금까지 저의 출산휴가나 휴직, 일부 기간을 제외하면 모든 결혼 생활 기간 동안 맞벌이로 지내왔습니다. 육아와 가사를 철저하게 분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에게도 많이 내뱉었던 말입니다. "이거 안 했으니까 저거 해!"


공동육아하면서도 공평함은 중요한 규칙이었습니다.

부모이자 조합원인 우리 모두가 함께 출자해야만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는 모두 동등한, 즉 공평한 출자자였습니다. 예를 들어, 돌봄 공간 보증금이 2천만원이라면, 20명이 100만원씩 출자하는 방식입니다(졸업하면 되돌려받습니다).

우리의 가장 상위 의사결정단위는 조합원 전원이 참여하는 총회였습니다. 우리는 '공평하게' 1인 1표를 행사하여 모든 결정을 함께 내렸습니다.

우리는 매달 조합비를 공평하게 나누어 냈습니다. 이렇게 모은 비용으로 선생님 급여도 드리고, 월세와 관리비도 내고, 아이들 간식도 먹입니다.


일도 공평하게 나누어 했습니다.

누구나 재원 기간 중 아이 1명당 한 번, 1년씩 돌아가면서 임원이자 운영진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말 청소, 대청소 모두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맡아 했습니다.

선생님 퇴근 시간 직전에 터전으로 출근해 선생님의 칼퇴근을 보장하고, 마지막 남은 아이를 돌보고 간단한 청소를 하고 나서, 터전문을 닫는 '하원아마'도 매일 매일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맡아 했습니다.

선생님 휴가 날, 일일 교사 업무도 돌아가면서 맡아 했습니다.


협동조합은 그런 정신으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정한 협동조합의 7원칙이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운영 원칙입니다. 그 중 두 번째 원칙은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입니다. 조합원 1인 1표의 동등한 투표권, 정책·의사결정 참여, 선출 임원의 봉사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협동조합의 원리에 맞지 않는 규칙, 그러니까 일종의 '벌'을 내리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일일 교사를 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는 조항이었습니다. 협동조합법이 만들어지고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국가 주무부처에 등록하려고 했더니 이 조항을 빼라고 권고받아 결국 삭제하게 됩니다.

내부에서는 꽤 논란이 되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벌금 규정을 없애는 것이 과연 공평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벌금을 내응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모두가 함께 일을 나누어 맡아야 하는데, 그 일을 못 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심지어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공평함은 무엇일까,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읽어주던 아이 책에서, 공평과 함께 '앙갚음'이 등장했습니다.


"도화지 좀 빌려 줘!"

"싫어! 언니도 어제 색연필 안 빌려 주었잖아. 나도 안 빌려 줄 거야. 그래야 공평한 거야."

"얘야, 그건 공평이 아니라 앙갚음이란다."


"앙갚음이 뭔데요?"

"앙갚음은 상대방이 나에게 나쁘게 한 것을 기억했다가 그대로 돌려주는 거야. 그러고 나면 서로 기분만 상하게 되지"

"그럼 공평은요?"

"공평은 좋은 것을 주고받는 거야. 좋은 것을 주고받으니까 기분도 좋아지지." (주1)


이 책에서는 공평(fairness)을 이렇게 말합니다.


공평이란, 교실에서 눈이 나쁜 아이가 앞에 앉고 눈이 좋은 아이가 뒤에 앉는 것.

공평이란, 책을 옮겨 놓을 때, 형은 책을 다섯 권씩 나르고, 나는 세 권씩 나르는 것.

공평이란,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것. (주1)


아이와 책을 읽다가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이 동화책, 아이가 아니라 제가 읽어야겠더라고요.

누구나 멀리 있는 어떤 취약함을 가진 이에게 조금 더 필요한 것다면 기꺼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쉽게 인정합니다. 부모가 없다거나 몸이 아프다거나 할 때, 공동체 안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쉽게 인정합니다. 국가에는 각종 사회복지법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취약함을 가진 이에게는, 불공평하다고, 너도 나랑 똑같이 해야 한다고 쉽게 말합니다. 남편에게 맨날 했던 말입니다 ㅠ


가깝든 멀든, 같은 기준을 가져와 봅니다. 내 이익과 관련이 있든 없든, 같은 기준을 가져와 봅니다.

사실 크게 보면, 그것이 곧 저를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지금 더 간절히 필요한 어떤 이에게 더 많이 주거나 어떤 벌을 면해 주는 것은, 나중에 제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저에게도 그 필요가 채워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타라고 생각한 것이 이기가 됩니다. 결국은 남이 받은 것, 남에게 준 것은 저에게도 이익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고 보니 공동육아공동체 안에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늦은 퇴근길 마실 받아준 아마들이 고마워서 우리 집에도 초대하게 되고, 그렇게 뭔가를 주고 받으며 가까워졌습니다. 안 주고 안 받는 게 깔끔한 관계가 아니었어요. 주고받는 일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관계가 한층 깊어지고 삶도 훨씬 나아졌습니다. 준 것은 결국 돌아왔어요. 선배 아마들에게 받은 것이 고마워 후배 아마들에게 먼저 손내밀면서 순환이 일어났습니다.


꼭 내어준 사람에게 돌려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다른 이를 통해 받게 되기도 하고, 내 아이가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내가 계산하지 않아도 결국 다 계산되어 돌아오는 것도 같습니다. 좁은 시야로, 작은 내 이익을 중심으로 계산하는 공평과 공정 말고, 더 큰 계산법, 조금 다른 계산법을 가져 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자주 말씀하셨던 “손해보는 게 결국 이기는 거야.”도 같은 말씀이겠지요.


한 번 더 생각하면,,, 남에게 줬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나의 오만 같습니다. 그저 내가 할 일을 다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큰 공동체 안에서는 무언가가 돌고 돌겠지요. 돌고 도는 것이 앙갚음의 순환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좋은 것들이 순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이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선행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칸트)



주1>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아름다운 가치사전》, 2005, 한울림어린이.

표지 이미지> Image by Mediamodifier from Pixabay.




오늘도 함께 해 주시는 글벗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라 작가 연재글]

월, 금: 나의 삶, 나의 일 https://brunch.co.kr/brunchbook/workislife

수, 일: 스무 살이 된 아이에게 1 https://brunch.co.kr/brunchbook/rewrite-being20

목: 어른이 다녀보았습니다. 공동육아 https://brunch.co.kr/brunchbook/communitas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