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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가족이 함께 하는 김장날

by 아라

공동육아어린이집과 공동육아방과후에서는 해마다 함께 김장을 합니다. 아이들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함께 담그는 큰 연례 행사 중 하나입니다. 이 날은 각종 행사를 담당하는 운영이사와 운영소위가 준비를 하느라 바쁜 날입니다. 아마도 미리 배추를 주문하고 역할 분담을 짜느라 바빴을 거예요.


미리 한 달 전쯤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지가 올라옵니다.

"하반기 최고의 이벤트! 김장이 왔습니다! 두둥"


오전 조, 오후 조, 뒷풀이 조가 편성되어 있습니다. ㅎㅎ

김장을 위해 하루 일정을 뺀 놓은 가구들도 있지만 각 가족에게 발생한 다른 일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다양한 시간대로 배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아이를 키우는 가구들이기 때문에 가구당 1명 참여하면 됩니다. 부부가 있는 가정이라면 나머지 한 명은 집에 남아서 아이를 돌보면 됩니다. 한부모 가정이라면 마실 보내고 오면 됩니다. 모든 업무는 30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찹쌀풀 2명, 버무리기 10명, 뒷풀이조 5명 등등, 30개로 나뉘어진 역할과 임무가 배정되어 있습니다. 각자 가구마다 선택한 시간에 선택한 업무에 손을 듭니다. 인원이 다 찬 업무가 있으면 다른 업무를 지원하면 됩니다.


절인 배추를 사지 않고 텃밭에서 아이들이 키운 배추로 김장을 담글 땐 절임조도 있었습니다. 소금물에 담궜다가 일정 시간마다 뒤집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올빼미형 아빠들이 맡았습니다. 담궈 놓고 몇 시간 함께 음주가무를 합법적으로(?) 즐기다가 다시 터전으로 들어가 배추를 뒤집고 귀가하기도 했습니다. ㅎㅎㅎ


앞치마와 고무장갑은 개인 준비물입니다. 김장용 채반이나 다라이(?)가 있는 가풍이 살아있는(?) 집들은 이런 김장 전문 기자재도 들고 출동합니다.


오전 조는 완성된 김치를 담을 김치통을 싹 씻어서 말려 두고, 절임 배추는 헹궈서 채반에 널어 놓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일이 많습니다. 무, 양파, 생강, 사과, 배 등은 껍질을 벗겨 두고, 쪽파, 갓 등은 다듬는 작업을 해 둡니다. 찹쌀풀도 쑤어 둡니다. 작업을 마치면 뒷정리를 합니다.


오후 조는 오자마자 김치 양념을 만듭니다. 배추를 버무립니다. 차례로 사람들이 들어와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착착 자리에 앉습니다. 요즘은 방수 김장매트가 잘 나와서 전보다 훨씬 편해졌습니다. 배추 버무릴 때는 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지루한 작업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수다 떨어 가면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김치통에 담아 착착 줄 세워 놓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뒷정리도 합니다. 아참! 당일에 먹을 김치는 미리 일부를 떼어 굴과 함께 버무려 놓습니다. 서로 김치 쭉 찢어 맛도 보여 줍니다. "올해도 김장 너무 잘 된 것 같아!!!"


오후 조가 작업을 하고 있으면 뒷풀이 준비조가 나타납니다. 한 명은 쌀을 불려 밥을 합니다. 일부는 고기를 삶습니다. 해마다 맡는 이들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수육을 맛볼 수 있습니다 어묵탕도 끓입니다.


하루 종일 터전은 오전 조, 오후 조, 뒷풀이조가 들락날락 하면서 북적북적합니다. 6시가 되면 모든 가족들이 모여듭니다. 김장 날 저녁은 모든 터전의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함께 먹는 날입니다. 오전 업무를 맡았던 가구들은 오후에 집에 돌아가 쉬거나 오후 일정을 마무리하고 온 가족을 데리고 터전으로 돌아옵니다. 오후 조는 쭈욱 터전에 남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집에 있다가 오는 아이와 배우자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뒷풀이조는 모든 가족들이 나타나기 직전에 상을 차립니다. 일찍 도착한 이들은 뒷풀이조가 상차리는 것을 척척 돕습니다.


이렇게 김장에는 모든 양육자들(=조합원들)의 노력이 한 숟가락씩 들어갑니다. 모두가 함께 겨울 내내 아이들이 먹을 김치를 담근 것입니다.


어느 새 터전이 북적북적 왁자지껄 사람의 소리로 가득찹니다. 30가족이 모이면 몇 명 빠진 90명이 됩니다. 김치와 수육과 어묵탕 상차려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사람이 많으니까요. 상차림이 끝나면 모두 자리에 앉습니다. 매달 방모임, 소위 모임에서 만나는 분들도 있지만, 다른 방, 다른 소위라면 오랜만에 만나기 때문에 무진장 반갑습니다. 매달 만나 소소한 소식들을 알고 있는 가구들은 이후 소식들을 주고 받습니다.


어느 새 아이들이 생활하는 터전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의 에너지로 가득찹니다. 신선한 굴이 들어간 김치를 맛보며 올해 김장 너무 잘 됐다고 함께 웃습니다.


김장으로 보내는 하루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완성품인 김치를 만들어내는 경험 속에서, 함께 하는 기쁨을 맛보는 순간입니다. 김장이라는 의례를 통해 우리가 한 해 또 잘 살아왔음을 격려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일 김치를 함께 힘을 모아 담궜다는 것이 작은 즐거움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느끼는 기쁨의 순간, 커뮤니타스의 순간입니다! 기쁨의 순간은 한껏 누립니다.


초등기까지 오면 주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학원에 보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원에서보다 조금 더 소중한 것들을 먼저 배우기를 희망하면서 이상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각자 떨어져 있는 시간, 우리들은 조금은 외롭습니다. 모두 각자가 가진 불안과 두려움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흔들릴 때마다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서로 손을 잡아 주기도 합니다. 흔들릴 때면 각자 책을 읽기도 하고 공부도 합니다. 흔들리지만 함께 걷는 이들이 소중합니다. 흔들리기에 함께 걷는 이들이 더욱 소중합니다.


여읜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어느 한 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1)


주1> 신영복, 《담론》, 2015, 돌베개.

표지 이미지> pixabay.




오늘도 함께 해 주시는 글동무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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