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어린이집과 공동육아방과후. 우리는 공동육아로 아이를 10년간 키웠고, 아이는 공동육아에서 꼭 10년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때 하교 후 아이가 생활하는 공동육아방과후로 퇴근해 가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에게 자주 오늘은 학교에서, 터전에서 무슨 재밌는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 엄마! 오늘은 급식 먹으러 갈 때 OO 언니 만났다!
- 엄마! 오늘 운동장 나가다가 OO 오빠 만났다!
아이가 학교에서 재밌었던 일로 종종 꼽았던 건, 학교에서 터전의 언니, 오빠를 만난 일이었습니다. ㅎㅎㅎ 저는 속으로 '그게 재밌는 일인가?'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터전의 언니, 오빠를 만난 일이 아주 특별하고 반가운 일이었나 봅니다. 알고 보니 다른 아이들도 종종 그런 얘기를 한다 했습니다. 아이들이 대부분 터전의 언니, 오빠와 친구, 들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집 대신 공동육아방과후로 가서 엄마가 퇴근해 데리러 가는 시간까지 긴 시간을 터전의 선생님과 터전의 아이들과 보냅니다. 이 곳에는 언니, 오빠도 있고 같은 학년 친구도 있고, 동생들도 있습니다. 이 곳은 학교가 아니고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방 구성에 따라(보통 두, 세 학년이 같은 방으로 구성됨) 어떤 해에는 동생들과, 어떤 해에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보냅니다. 학교가 끝나면 이 곳에서 함께 손씻고 양치하고 함께 청소도 합니다. 함께 숙제하고 내내 함께 어울려 놉니다.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생활은 형제자매와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터전 아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신나게 어울려 놀고 때로는 싸우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ㅎㅎ
1학년 때는 2학년 형, 언니들이 숙제도 챙겨 주었습니다. 일부러 아이 숙제를 봐 줬다는 뜻은 아닙니다. 터전 선생님들이 알림장을 확인하고 스스로 숙제를 하도록 지도합니다. 그리고 놀이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학교 놀이도 하더라고요. 학교 놀이하면서 '진짜로' 내일 시험 보는 받아쓰기를 불러주었고 언니, 오빠들이 채점까지 '진짜로' 해 주었습니다. 놀면서 공부 하는 게 이런 거였습니다. 모든 숙제를 형, 언니들이 봐 준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학교 놀이를 좋아한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ㅎㅎㅎ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 숙제를 챙기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요.
터전에서 언니, 형들에게 자전거도 배울 수 있습니다. 제 아이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배우고 싶어해서 저희 부부가 운동장에서 잡아 주면서 가르쳐 주었지만, 입학해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아이는 터전의 언니, 형들에게 자전거도 배웠습니다.
터전 근처의 운동장으로 함께 나갑니다. 1학년 아이들이 자전거에 오르면 아이마다 두어 명의 언니, 형들이 따라붙습니다. 뒤에서 방법도 가르쳐 주고 번갈아 잡아 줍니다. 한 아이가 잡아주는 동안 다른 아이는 옆에서 자전거와 함께 뜁니다. 잘 한다, 잘 한다 칭찬도 해 줍니다. 넘어져 울면 다친 곳도 봐 줍니다. 여러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우는 장면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얘기만 들어도 진풍경이었습니다.
쎈 언니들에게는 아이돌 춤을 사사(?)받았습니다. 언니들에게 이끌려 언니, 동생 할 것 없이 같이 춤을 추고 같이 공연도 했습니다. 30가정쯤 함께 하기 때문에 작은 공연 무대가 아닙니다. 다른 부모와 아이들까지 하면 100명쯤 되는 인원이니, 100명이 지켜보는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원하는 아이들끼리 원하는 종목으로 공연할 수 있는 무대도 매년 마련되었습니다. 여름에는 '한여름밤의 음악회', 겨울에는 '해보내기 잔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면서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언니, 오빠가 생겼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되고 배우게 됩니다.
예를 들면, '미션 나들이'라는 활동이 있습니다. '미션 나들이'는 선생님 없이 아이들끼리 조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나들이 장소까지 이동해 가는 나들이를 말합니다.
이 날은 OO 공원의 OO 나무가 모두가 만나는 장소라고 했습니다. 이 날은 조장인 고학년들만 특별히 핸드폰을 지급받습니다(공동육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핸드폰이 없습니다. 특히 저학년 때는 아무도 핸드폰이 없습니다). 가방에는 선생님들의 전화번호, 터전의 주소도 메모해 넣습니다. 미리 동선을 체크하고 지도를 챙깁니다. 미리 교통비도 지급받습니다. 터전에서 전철역까지 이동해 목적지를 확인하고 전철표를 인원수에 맞추어 사서 동생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줍니다. 동생들 잃어버리면 큰일나니까 인원도 잘 챙깁니다. 동생들과 함께 전철을 탑니다. 동생들에게 내려야 하는 목적지를 다시 한 번 일러둡니다. 목적지에서 내려서는 모두가 잘 내렸는지 인원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이번엔 걸어서 이동합니다. 지도를 보면서 목적지까지 찾아갑니다. 이 길을 따라 쭈욱 가다가 길을 한 번 건너면 OO 공원입니다. 드넓은 공원이기 때문에 공원에 들어가면 지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공원 입구의 큰 지도 앞에서 동생들과 목적지와 가는 길을 한 번 더 확인합니다. 여기에서 좌회전, 여기에서 우회전... 지도를 보면서 걷고 걷습니다. 힘들어하는 동생들이 있으면 손도 잡아줍니다. 아이들이 조별로 이동하는 동안 선생님들도 역할을 나눕니다. 한 팀은 아이들을 '암행'합니다. 다른 팀은 미리 약속 장소에 가서 대기했다가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동생들을 데리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은 환호합니다. 동생들을 얼싸안고 기뻐합니다. 미션 완료입니다!
이렇게 지내면서 아이에게는 동생들도 생겼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퇴근이 늦을 때마다 서로의 집으로 아이들을 마실 보내면서 아이를 함께 키웠습니다. 이 시간 동안에도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되어 갔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이제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러 가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하지 않습니다. 아이 혼자 또는 아이들끼리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때로는 혼자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집 방향이 같은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귀가하기도 합니다. 같은 단지에 거주하는 아이들과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주로 마실도 같은 단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은 때로는 부모들보다 먼저 집으로 귀가합니다. 마실을 가는 날은 아이들이 우루루 함께 귀가합니다. 어느 날은 퇴근 중인데 아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형, 언니, 동생들과 함께 귀가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어 자기들끼리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는 겁니다. 하루쯤 그래도 되지요.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립니다. ㅎㅎㅎ '그렇게 좋으냐?'
집에 오니 아이들끼리 야무지게 계란까지 넣어 라면을 끓여 먹었고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넷이 하나의 훌라후프 안에 들어가 있던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ㅎㅎㅎ
고학년이 되면서는 아이들끼리 일정을 정해 오가는 마실이 늘었습니다. 더 이상 부모가 퇴근이 늦어 보내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 마실이 아니라 아이들끼리 연락해 마실을 오가는 시간이 늘더라고요. 그렇게 나가면 아이들은 때로는 온종일 밖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점심은 A 집에서 먹고, 목마르면 가장 가까운 B 집에서 물을 마시고, 간식은 우리 집에 와서 먹는 식이었습니다.
아이 5학년 때쯤이던가요?
하루는 터전에서 총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출근을 해야 했고 아빠는 총회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아이는 고학년이 되니 마실보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 날도 혼자 집에 있겠다고 해 그러기로 했습니다. 총회 마시고 단체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어 터전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퇴근할 때쯤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 집에 누가 마실 왔어?
- 응 엄마! 지금 집에 9명 있어!
- 뭐?
- 내가 혼자 집에 있었는데 OO이가 전화왔더라고. 총회가는 엄마 따라 터전 갔는데 내가 없어서 심심했대. 놀러온다고 해서 오라고 했어. 근데 쪼끔 있다가 ㅁㅁ도 전화 와서 온다고 하고.... (중략) 근데 마지막에 ㅅㅅ이가 애기 동생도 데리고 와가지고 지금 9명이 됐어!
부모가 외출한 사이, 대가족 집안처럼 아이들이 집에 와글와글 모여 있었습니다. 애기 동생은 자그마치 2살입니다. 집에 2살부터 12살까지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많은 형제자매들 속에서 어울려 자랐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경험들이 새겨졌는지 엄마인 저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부모와만 지내는 것보다, 같은 나이의 학교 친구와만 어울리는 것보다, 언니도 있고 오빠도 있고 동생들도 있고,,, 이렇게 자란 게 괜찮았겠지요? 더 안정감 있고 더 풍요로운 세계를 경험했겠지요? ㅎㅎㅎ 그랬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에 들러 주시는 글친구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새로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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