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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핫 이슈

정신차려 보니 주인이 되어 있다

by 아라

공동육아하면서 가장 길었던 토론 주제 중 하나는 공간의 청소를 둘러싼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부모가 해야 하는 가장 고달픈(?) 일 중 하나라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가 다녔던 공동육아에는 총 3종의 청소가 있었습니다.


첫째, 하원아마 청소. 이것은 일일 청소입니다. 우리는 평일에 매일 돌아가면서 하원아마를 했고 임무 중 하나가 청소였습니다. 하원아마는, 교사가 퇴근하는 시간 직전에 도착해서 마지막 아이가 하원할 때까지 터전을 지키는 역할입니다. 대부분이 맞벌이였기 때문에 늘 교사의 퇴근 시간보다 늦는 부모들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아예 이 시간에 아마(=엄마아빠)를 배치하여 선생님들이 제 시간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하고 마지막 하원하는 아이를 보살피면서 간단한 청소를 하는 역할입니다. 이 때의 청소는 간단한 정리와 청소기 돌리기입니다.

둘째, 주말 청소. 한 가구씩 배치하여 매 주말마다 청소를 합니다. 청소기 돌리고 정리만 하는 정도보다는 조금 더 해야 합니다. 장난감이나 물품들 걸레질도 하고 수저 소독도 하고, 창틀도 쓸고 닦습니다. 책장도 정리하고요. 단독 가구가 주말에 나와서 해야 하므로 시간이 꽤 걸려서 3-4시간은 소요해야 했습니다.

셋째, 대청소. 분기별로 모든 조합가구들을 4분할하여(28가구라면 7가구 정도가 함께 하겠죠) 연간 한 번씩 대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이 때는 창문도 모두 떼서 닦고, 가구도 모두 들어내 구석구석 묵은 먼지들을 제거하고 책장의 책도 모두 뽑아서 쓸고 닦고 탈탈 턴 후에 다시 책꽂이에 꽂습니다. 창고에 있는 물건들도 모두 꺼내서 처분할 것은 처분하고 정리정돈 합니다. 7가구가 반나절 정도 청소합니다. 대청소를 끝내고 나면 모여 앉아 짜장면을 시켜 먹거나 술을 한 잔 하기도 합니다.


청소에 대해서 가장 핫했던 토론 주제는 청소를 외주를 줄 것인가, 직접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를 외주 주자고 주장하는 의견은 청소가 너무 고달픈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28가구가 매일 돌아가면서 일일청소를 하려면 채 2개월을 넘기기 전에 다시 순서가 돌아옵니다. 선생님 퇴근 시간 전에 도착하려면 직장이 먼 경우에는 퇴근도 서둘러야 합니다. 그게 1.5개월마다 돌아오면 사실 맞벌이 직장인이 대부분인 부모들 입장에서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남편은 그 시간에 늘 일하고 있어 저 혼자 해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일단 시간 맞춰 오는 것부터가 미션이었지요. 하원 아마만 담당하고 매일 하는 청소는 외주를 주자는 의견이 일견 타당했습니다.


청소를 외주주지 말고 직접 하자는 의견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활 공간을 직접 정성과 애정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마음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터전은 아이와 교사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매일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공동육아는 선생님에게, 혹은 돌봄 기관에 아이를 위탁(=이 개념이 탁아죠) 맡겨 두고 나 몰라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 곳은 단순히 돈을 내고 비용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는 곳이 아니며, 부모는 서비스를 받는 자가 아니고 서비스를 직접 주는 운영 주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간단한 청소만 하면 되는데 굳이 외주를 줄 이유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이 의견 역시 일견 타당했습니다.


여기에 조합원 규모의 문제와 경제적인 부분이 끼어 듭니다. 외주를 주려면 조합비를 올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 곳을 찾는 부모들에게 문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가구수가 줄어 10여 가구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외주를 주자니 조합비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되고 새로운 조합원들에게는 문턱이 높아집니다. 직접 하자니 월 2회쯤을 일찍 퇴근해 하원아마와 일일청소를 담당해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됩니다. 그 어느 쪽도 다 부담스러운 겁니다. 이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이 논쟁으로 비화되기 일쑤입니다.


제가 소속된 터전에서는 일정 기간 외주를 주기도 해 보았고 어떤 기간에는 직접 청소를 했습니다.

공동육아, 참 징글징글하다, 이런 얘기들 많이 했어요. 청소라는 주제는 예시일 뿐, 어떤 이슈들이 등장할 때마다 조합원들이 모여서 소위 모임에서 토론하고 다 같이 모여 토론하고 투표하고 참 징글징글했습니다. ㅎㅎㅎ 청소요? 한두 달에 한 번은 헐레벌떡 뛰어와 청소하고 마지막으로 귀가하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주말에도 연 간 몇 번씩은 주말청소며 대청소며 하느라 주말마다 참 바빴습니다. 할 일 너무 많고 토론 너무 많고 징글징글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러면서 너무나 애정이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헐레벌떡 뛰어와 청소하고, 주말에 온 가족 나가서 연간 몇 번씩 구석구석 쓸고 닦으며 주말 청소하고 대청소하면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구석구석 알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숟가락이 어디 있는지,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도 다 알고 내 아이가 이 공간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노는지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숨어 있기 좋아하는 공간도 알게 됩니다. 어떤 창문으로 어떤 풍경이 보이는지도 알게 됩니다. 공간을 안다는 게 그런 거더라고요.


토론도 징글징글하게 했습니다.

청소를 어떻게 할 건지를 둘러싸고도 이렇게 징글징글하게 토론을 했으니 다른 것도 상상이 가시죠? 누가 누구를 때린 사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이들의 성놀이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이들 썬크림은 각자 사서 보낼지, 공동구매할지, 방사능 버섯이 이슈인데 아이들 반찬에서 버섯은 계속 먹어도 될지, 빼아 할지... 토론하고 결정할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하고, 모든 일에 머리를 맞대면서 사람들에 대해서도 애정이 깊어졌습니다. 시간을 쓰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진짜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소비자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비효율이었어요. 그냥 조합비 좀 더 내고 청소를 안 하는 선택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걸 이렇게 회의를 하느니 그냥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다 잘못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청소 하나에 왜 이러느냐고 서로 묻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그 모든 게 달랐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대하는 마음이 달랐습니다.

무얼 하나 하려고 하면 그게 정말 네 진심이 맞냐고 계속 물어왔어요.

무얼 하나 결정하려고 하면 그게 정말 네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느냐고 계속 물어왔어요.

피할 수가 없었어요.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에 답을 하려고 해도 답을 찾는 것은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답은 몰랐어도 우리는 함께 길을 찾아간 것 같아요.

그렇게 더듬더듬 길을 찾다 보니, 여기 와 있네요. ㅎㅎㅎ


그러다 보니 진짜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공동육아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소비하고 우리가 생산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운영하고 우리가 혜택 본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와는 반대입니다. 자본주의는 공급자가 따로 있고 수혜자가 따로 있습니다. 둘 사이에 계약이 있고 비용이 오갑니다.


근데 여기는,

내 돈 내고 내가 운영합니다.

내 돈 내고 내가 청소합니다.

내 돈 내고 내가 결정합니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해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간에,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소비자로 찾아왔다가 주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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