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원 대화에서 보이는 것들

관계는 계속 흔들려야 한다

by 정아라
가르치지 않는 교육에 참여자로, 진행자로 함께 하며, '몸으로 배운' 것들을 하나씩 기록합니다.

말로 가르친 것은 금방 잊혀집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내내 느꼈습니다. 관객이 되어 쳐다 보았다고 자기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수영하는 것을 보았다고 수영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수영하려면 몸을 물에 담궈야 합니다. 수영하려면 물에 담긴 채, 팔을 돌리고 다리를 움직이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 몸으로 직접 배운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래 기억됩니다. 때로는 잊을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이다.

이 즈음 새 학년 새 학기 오리엔테이션 자리를 활용해 중고등학교로 평화교육을 종종 나갔었다.


학생들이 새 학기에 처음 만나는 날이다.

학생들은 모두 매우 긴장된 상태로 학교에 와서 교실로 들어온 것이다.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까, 친구를 사귈 수는 있을까, 학폭이나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겠지, 등등의 크고 작은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갖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긴장으로 시작되는 시간, 마치고 나면 가장 많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시간으로 남는 시간이 바로 '동심원 대화' 시간이다.


동심원 대화를 하려면 먼저 의자를 동심원 대형으로 놓아야 한다. 의자로 두 개의 원을 만들어 안쪽 의자는 바깥 쪽을 보게 하고 바깥쪽 의자는 안쪽을 보게 한다. 그리고 교실의 모든 구성원들이 두 개의 원에 들어가서 앉는다.


안쪽 의자와 바깥쪽 의자의 개수는 같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상태로 동심원 대화가 시작된다. 안쪽 의자에 앉은 그룹을 '구름팀'이라고 하자. 바깥쪽 의자에 앉은 그룹을 '바람팀'이라고 하자. 진행자가 이야기한다.


"이제 모든 분들은 마주 앉은 분들과 50초 동안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먼저 구름팀 손 들어 주시겠어요? 네 먼저 구름팀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때 바람팀은 이야기를 들으시면 됩니다. 50초가 경과하면 제가 종을 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구름팀은 이야기를 멈추고 들으시면 되고 바람팀은 이야기를 하시면 됩니다."


"그럼 낯설어서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어려우실 수 있으므로 대화 주제를 드립니다.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 먼저 자기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주 앉은 짝꿍과 눈을 한 번 마주쳐 주시기 바랍니다. 새 학년, 새 교실에서 처음 만난 짝꿍. 보통 인연은 아닐 거에요. 운명의 짝꿍입니다. 운명의 짝궁에게 내 이름과 별명을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내 이름이 무슨 뜻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 무엇인지 등등을 자유롭게 얘기하시면 됩니다. 그럼 구름팀 먼저 얘기해 주세요. 50초 시작합니다."


조심스럽게 모두들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50초가 짧습니다. ㅎㅎㅎ


"네 이제 50초가 지났습니다. 이제 구름팀은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바람팀 같은 주제로 이야기 나누어 주세요."


목소리가 조금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또 50초가 지나갑니다.


"이 활동이 동심원 대화라고 말씀드렸지요? 이제 자리를 바꾸겠습니다. 구름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칸 이동해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네. 이 활동의 핵심은 자리를 바꾸는 데 있습니다!


구름팀이 자리에서 한 칸씩 이동하여 바람팀의 다음 사람을 만납니다.

"이제 새롭게 만난 짝꿍과 자기 소개를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름을 소개하고 별명을 소개해 주세요. 이름의 의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 등등 자유롭게 소개해 주시면 됩니다."


자리를 바꾸어 새로 만난 친구와 또 이야기를 나눕니다. 바람팀이 먼저 이야기하면 구름팀이 뒤이어 이야기 나누면 됩니다.


"50초가 두 번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바람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바람팀도 한 칸 오른쪽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짝꿍 만나셨나요? 짝꿍 눈 한 번 마주쳐 주세요. 서로 이름표 한 번 보시고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이제 다른 주제로 이야기 나누어 볼께요. 이번 주에 나를 가장 웃게 한 일은 무엇인가요?"


또 50초 동안 이야기를 나눕니다. 짝을 바꾸어 또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소한 주제들을 계속 바꾸어 가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렇게 짝을 계속 바꾸어 이야기를 나눕니다.


와글와글 와글와글.

참여자들의 에너지를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교실의 소리가 점점 커져 갑니다.


짝 바꾸기를 통해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교실 안 친구들과의 관계가 고착되고 나면 이야기하는 사람과만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도 합니다.


관계는 흘러가는 것이 건강합니다. 그러려면 자리를 계속 바꾸면 됩니다.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관계가 흘러갑니다. 관계가 흘러가면 여러 선으로 연결됩니다. 여러 선으로 거미줄처럼 그물망처럼 연결된 관계가 전체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일부의 사람들만 굵은 선으로 연결된 그물망 위에는 안정적으로 물체를 올려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한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붙어 있습니다. 어릴 때의 관계가 지속되었습니다. 한 번 따돌림을 당한 아이는 다음 학년이 되어도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고착된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려고 먼 곳으로 이사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아이는 오래된 동네에 살지만 인근에 새로 만들어진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보통 10개 내외의 중학교에서 하나의 고등학교로 모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파트가 지어져 곳곳에서 이사오다 보니 동네도 새롭게 조성되었고 학교도 새로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28개 내외의 중학교에서 하나의 고등학교로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졸업하고 보니 학교에 학폭 사건이 현저하게 적었다고 합니다.


관계를 선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착된 관계는 선의 굵기가 아주 굵은 것입니다. 그러나 선의 개수가 적습니다. 늘 만나는 사람과 만나고 늘 만나는 친분있는 사람과 주로 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처음 만난 교실에서 동심원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 만나서 모두가 낯설어 선의 굵기는 아주 가느다랍니다. 얇습니다. 동심원이 한 바퀴 돌면 모두가 교실 인원의 절반의 인원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니 선의 개수가 많습니다.


관계를 그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관계의 그물 위에 무언가를 올린다고 상상합니다.


굵지만 헐거운 그물로는 무거운 물건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가늘지만 촘촘하게 연결된 그물 위에는 무거운 물건도 올릴 수 있습니다.

오늘 한 친구가 나와 대화 나누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모든 관계망이 망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과 연결된 연결망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동심원 대화를 하는 이유입니다.

가늘지만 많은 이들이 연결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느슨한 공동체가 힘이 없나요? 느슨하지만 가늘지만 많은 이들이 촘촘하게 연결된 공동체도 힘이 있지 않을까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