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지 말아야지
시어머님이 칠순을 맞았다. 어머님의 칠순을 준비하던 자식들은 어머님이 원하시는 바를 해 드리자 합의하였다. 어머님은 당신의 형제자매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당신이 일구신 직계가족들과는 여행을 가고 싶다 하셨다. 자식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딸은 근사한 한정식집을 예약하고 친지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큰 며느리는 떡케이크를 맞추고 꽃바구니를 준비하고 모든 회계를 도맡았다. 작은 아들은 펜션을 예약했고 작은 며느리인 나는 미루고 미루다 여행 일정을 짰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여행이 될 것임을 직감한 까닭이었다. 역시나 불쾌한 순간은 찾아왔다.
저녁식사를 마쳐가는 즈음 어머니가 다가오셨다.
"조카딸이 지금 셋째를 임신 중인데 너를 안아 줄 거야."
"네? 왜요?"
"좋은 기운 받으라고"
어머니의 조카딸은 시이모님과 함께 그 자리에 왔다. 서너 살 배기 아들 둘을 데리고 임신한 상태로 말이다. 분명 무슨 말을 하겠구나 싶었는데 이건 예상 밖이었다. 처음 본 시사촌 여동생과의 포옹이라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다산의 기운을 받으라는 의미는 매우 불쾌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난임의 원인이 모두 내 탓인 듯 들렸기 때문이다. 씁쓸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난 채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포옹은 차마 그녀도 나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총 12명이 숙박할 펜션에는 방이 3개가 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펜션의 위치와 구조에 시댁 식구들은 "좋다"를 연발하며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펜션을 예약한 남편은 그 순간 행복했음이 분명하다. 자신이 알아본 숙소를 모두가 좋아해 주니 기분이 한층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1층 가장 큰 방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쓰시고, 2층에 두 방은 형 네하고 누나네가 각각 쓰고 우리는 여기 1층에서 잘게."
1층은 거실 겸 부엌이었다. 식탁과 탁자 옆 사이에 좁은 통로에서 자라는 남편을 나는 쏘아보았다. '너나 여기서 자세요' 하는 마음으로. 그제야 남편이 내게 물었다.
"괜찮지?"
"아니, 사람들 다니는 데에서 어떻게 자? 차라리 어머님 아버님 방에서 같이 잘래"
결국 형님과 한 방에서 잤다. 아주버님은 아버님과 수 십 년 만에 한 방에서 주무셨다고 한다. 며느리 사정은 역시 며느리가 알아준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기들이 아닌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은 어려운 존재다. 가장 말을 안 듣고 천방지축인 까닭이다. 머리가 좀 커졌다고 반항하기 일쑤이면서도 불리한 순간에는 연약한 아이인척 하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학교 선생님이 되기 싫었던 까닭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시댁 조카들은 모두 10대 초반이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있으며 사춘기를 겪고 있다. 제 부모들에게 반항기 가득한 말을 늘어놓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아이다. 아프다고 밥 먹기 싫다고 더 놀고 싶다고 제 부모 앞에서 징징거린다. 자기들끼리 한바탕 신나게 시끄럽게 떠들며 사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싸우고 나서는 부모에게 와서 징징거린다. 듣기 싫다. 너무 듣기 싫다. 자리를 뜬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불쾌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여행이 아닌 고행이었다. '불쾌지수가 높으니 야외활동을 자제해 달라'는데 나돌아다닌 탓인지도 모른다. 평소와 달리 예민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환하게 웃지는 못했지만 화가난 얼굴을 보이진 않았다. 잘 참았다. 잘 마쳤다.
잠 들기 전 휴대폰을 들었다. 시댁 식구들과의 단톡 방에 메시지가 오간다.
"이번 여행 ... 좋았어요."
"다들 수고많았어요."
"고생했어요."
불쾌해했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 진다.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진심이 나를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