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을까
'행복하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쓸 데 없는 생각을 많이 할 만큼 시간이 많다는 게 문제다. 결국 한가함이 불러온 고뇌인 셈이다.
다이어리에 빈칸이 가득하다. 시간 강사의 스케줄표가 텅텅 비어있다. 더 확정적인 수업을 받겠다고 정리한 출강 수업들이 새삼스레 아쉽다. 정리하게끔 만든 학원의 결정이 야속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수업은 수강생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이번 달은 백수나 다름없게 되었다. 타의에 의한 한가함이다.
늦잠을 잔다. TV를 본다. 빈둥거린다. 그저 쉰다. 몇 달 전 연이은 수업으로 체력이 방전되었던 때, 그토록 원하던 것은 바로 이런 휴식이었다. 며칠씩 집에서 나가지 않고 뒹굴거릴 수 있음에 '그래, 내가 이러려고 프리랜서가 되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휴식이 무료함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무료해지지 않으려 책을 읽는다. 영화를 본다. 전시회장을 찾는다. 교양이 쌓인다.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프리랜서가 되어 시간의 여유로움을 누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회사를 관두면 행복할 텐데.'
'결혼을 하면 행복할 텐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 텐데.'
'문화생활이나 하면서 살면 행복할 텐데.'
오래전 생각했던 행복의 조건이었다. 모두 이루었다. 위의 필요충분 명제에 따르면 마땅히 행복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만족을 모르고 현실에서 또 다른 불충분 조건을 찾아 새로운 가정을 세운다. 이대로라면 행복은 파랑새처럼 영원히 찾지 못할 것만 같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다. 하고 싶었던 것들 중 많은 것을 지금 하고 있다는 데에 만족한다. 모두 내 선택의 결과였음을 받아들인다. 타의에 의한 한가함마저도 자처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 또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분명 나는 '이러려고 프리랜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