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다
드라마를 찍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당황스러운 얼굴 표정은 클로즈업을 해야 할 것만 같고 배경음악으로는 무겁고 우울한 노래가 흘러야만 어울리는 찰나의 순간인 것이다.
"아이가 구순구개열이란다"
엄마의 목소리는 꺼질듯하다. 별 것 아닐 거라고 수술만 하면 되는 걸 거라고 위로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에게 무슨 일 있니?"
"언청이래..."
힘없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한다.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나다.
집안 분위기는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온 가족은 제 방에 조용히 틀어박혀 '구순구개열'을 검색하느라 바쁘다. 주변에 아는 의료진들과 지인들에게도 묻는다. '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아닌지'. '당신이라면 나을 것인지'. 묻고 확인한다. 모두 그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남과 다른 외형의 아기를 한국 사회에서 키우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데에 뜻을 같이 한다. 놀림받고 자랄 아이도 상처일 거라고 동생과 올케를 설득한다.
동생 부부는 완강하다. 장애가 있을지언정 낳겠다고 말한다. 그로 인한 시련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아들이 고생길을 자처하는 것만 같아 속이 타던 엄마와 아빠는 눈물과 한숨이 늘었다. 몇 날 며칠을 폐인처럼 지내던 부모님은 동생의 간곡한 문자에 마음을 풀었다.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 뱃속 아이를 부모로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적어 보낸 듯하다. 아들의 문자에 부모님은 동생의 선택을 응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기로 한다. 부모님도 동생도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얄궂게도 엄마의 환갑을 기념하는 가족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한바탕 난리를 겪은 후에 온 가족이 다시 모인다. 서로에게 듣기 싫은 말과 모진 말을 쏟아낸 기억에 조금은 머쓱하다. 금기처럼 아이에 관한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한 채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지에서 쇼핑을 할 때면 엄마는 아기 옷에만 눈을 돌린다. 이것저것 보다가 하나를 골라 사더니 다른 가게에 가서도 또 아기 옷을 고른다. 영락없는 손주바보 할머니다. 동생 부부도 작정한 듯 아기용품을 쓸어 담아왔다. 자연스레 저녁 식사 시간에는 아이 이야기를 한다.
"2차 기형아 검사 결과를 받았니?"
"네, 다 괜찮대요."
올케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동생이 말을 잇는다.
"그날 아침부터 병원 가는 거 알고 아기가 엄청 움직였어, 엄마. 병원에 가서는 입을 벌리고 잇몸도 보여주고. 어필하는 거지. 나 입술만 좀 그래.."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담아낸 듯한 동생의 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부디 심각하지 않은 상태로 조카가 태어나길 순간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