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보이지 않아도 있다

by 아라온

기사를 읽었다. 청춘이 푸르르다고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하다는 내용의 르포 기사다. 기자는 가난한 청춘들의 삶으로 직접 들어가 체험해 보고 취재해 기사를 써 내려갔다. 대학문을 넘지 못한 청춘들, 다수가 아닌 소수인 그들의 삶은 외면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4년제 대학교와 2년제 전문대는 물론이고 사이버 대학교와 학점은행제 등등 교육의 기회는 더 많아졌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무려 70.9%에 이른다. 한국에 사는 20대는 열에 일곱은 대학 졸업장이 있는 사람들이다.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청년층의 실업률도 대학을 나온 이들의 고민이다. 결혼과 출산 등을 포기하는 N포 세대도 모두 주류의 이야기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을 진학하지 않는 30%의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학창 시절에는 소위 문제아라고 일컬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출을 하고 학교에 나가는 대신 거리로 나가기 때문이다.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이들이 사회로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유소, 식당, 술집 등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20대가 되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돈을 벌 욕심에 유흥업소에 나가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일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하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가난해서 학업을 중단한 것인지, 학업을 중단해 가난해지는 것인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인과 결과가 돌고 돈다.


'그녀'도 그랬다. 10대 때 가난한 집을 나와 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가족들에게도 외면을 받고 고립된 채 살아갔다.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 하기 싫은 날, 아픈 날, 놀고 싶은 날에는 무단결근을 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는 여전히 많았고 관두고 다른 일을 해도 시급은 비슷했다. "한심하다, 실망이다" 이야기했지만 듣지 않았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똑같았다. 희망없이 버티기만 하는 날들이었으니 말이다.


몸을 뉘이면 꽉 차는 고시원 방에 그녀가 살았다. 보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고시원은 그녀처럼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방을 나누는 것은 얇디얇은 나무판이다. 방과 방 사이는 가깝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멀기만 하다. 그곳의 사람들은 가난한 자신의 삶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소리 나지 않게 들고나간다. 공동으로 쓰는 주방에서도 홀로 앉아 밥을 먹는다. 행여 마주치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며 가난한 밥상을 혼자 마주한다.


다수의 눈에는 소수의 삶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보지 않으려 했기에 안 보였을지도 모른다. 기사를 읽다가 문득 한 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살만한 사회라고 여기며 살아갔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게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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