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이

이상한 사람들

by 아라온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또 어떤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까 싶어서다. 대한항공 일가의 폭언과 폭행에 놀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비슷한 일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돈과 힘이 있는 자들의 만행이 이제라도 하나 둘 드러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질 지경이다. 사람은 돈과 힘을 가지면 정녕 무서운 것이 없나 보다. 그들을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 그들에게는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재벌이 아닌 '보통 사람'도 아파트 경비원을 '집 지키는 개'라고 생각해 주먹을 휘둘렀다니 말 다했다.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으로 많은 돈과 힘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타인에게 잔인해질 수 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있는 곳에서 대개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다. 고용인이 아닐지라도 계급이나 서열이 확실한 군대나 회사에서 쉽게 돌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오죽하면 돌아이를 피해 이직을 해도 다른 돌아이가 거기에도 있다는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는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었다. 외국에서 공부했다는 그는 본인이 유학파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듯 선진국의 매너를 몸에 입은 듯 나긋나긋하게 행동했다. 같은 층,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해 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영원히 신사처럼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한 공간에서 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 그의 고함을 들었다. 키보드 소리만 가득한 조용한 사무실의 적막을 그가 깬 것이다. 그는 사무실 내 최고 권력자, 이사이자 사장의 동생이었다. 일하고 있는 다른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 십분 이상을 고레 고레 호통을 치고 책상을 내려치기를 반복했다. 후에도 꽤 자주 타 부서와 전화를 하면서 혹은 직접 직원들을 그의 앞에 불러서 본인의 화가 다 풀릴 때까지 소리를 질러 댔다. 그때마다 나머지 직원들은 이사가 화를 내는 대상이 본인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직원들 사이에서 그를 그의 직함이나 이름 대신 돌아이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그가 화를 내는 방식은 성별에 따라 달랐다. 남자 직원들에게는 더 물리적이었다. 고함을 치다가 서류를 집어던지기도 하고 육두문자를 섞기도 했다.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나온 남자 직원들의 벌게진 얼굴을 보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업무상 무얼 그리 그들이 잘 못했다고 저리도 난리인가 싶었다. 반면 여자 직원들에게는 고함의 데시벨은 낮았지만 교묘하게 괴롭혔다. 알 수 없는 말들로 업무 지시를 내리고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트집을 잡았다. 그렇게 업무상 충돌이 생긴 여자 직원의 험담을 다른 상급자들과 하며 어떻게 해고시킬지를 고심하는 것이다. 면전에서 욕보이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더러운 것은 매한가지다.


돌아이 이사의 형인 사장은 더 유명했다. 불같은 성질은 닮는 것인지 돌아이는 유전인 것인지 사장 역시도 화를 내면 안하무인이었다. 사장실에서 행여 소음이 새어 나올까 눈치껏 음악의 볼륨을 한껏 높여야 하는 직원이 있었다. 사장 직속으로 하는 일이 있던 터라 종종 그를 마주해야 했다. 그 역시도 여자 직원들에게는 그다지 큰 데시벨을 올리며 화를 내지 않았지만 어느 날은 그의 기분이 아주 안 좋았던지 나를 앞에 세우고 있는 힘껏 소리를 쳐 댔다. 업무를 타박하는 것이야 받아들일만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인격을 모독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가고 '다시 취업을 해야 하고 당장 월급을 받아야 하는 데.'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서서 그의 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화풀이가 끝나고 조용히 사장실을 나와 도망치듯 화장실로 직행해 눈물을 쏟아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왜?'

'저 사람은 뭔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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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이는 어디에나 있다지만 그 이사와 그 사장은 내가 만난 최악의 돌아이 상사였다. 그간 다른 회사에서 겪은 상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돌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직원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돌아이들, 상대는 마치 감정이 없는 사물인 것처럼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돌아이들이었다. 배려는 둘째치고 공감능력이 없는 리더라니 끔찍하다. 뉴스에 나오는 회사에서처럼 폭력이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는 회사라면 싹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돈과 힘을 앞세워 돌아이 짓을 하는 그들이 돈이나 힘 둘 중 하나라도 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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