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께 죄송한 마음을 담아
자식들은 결국 아버님을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점점 굳어가는 아버님의 몸은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하루 종일 필요한 처지가 된 것이다. 그동안 노구를 이끌고 아버님을 곁에서 보살핀 사람은 어머님이었다. 그런 어머님마저 힘에 부친다며 호소를 해 왔다. 심지어 아버님까지도 가족들을 힘들게 하기 싫다고, 본인을 요양원에 보내달라고 하셨다. 슬프지만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데에 가족 모두가 합의한다. 파킨슨은 정말이지 무서운 병이다.
예상보다 일찍 요양원에 자리가 났다. 요양원으로 갈 준비와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짐을 싸기 시작한다. 부축을 받은 아버님은 오랜만에 침대가 아닌 소파에 앉는다. 여느 때와 같이 별다른 표정이 없으시다. 아버님과 달리 다른 가족들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옷가지를 챙기는 어머님의 눈은 퉁퉁 부어 있다. 아버님의 거친 발을 잡고 발톱을 깎아 드리던 형님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떨어지는 눈물이 아버님의 발등에 가 닿는다. 애써 아무렇지 않아 하던 시누이도 아버님의 속옷을 박스에 넣으며 눈물을 떨군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나는 무엇 하나 적극적으로 하지도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리고 훔친다.
요양원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다. 산자락 아래에 있어 휴양림 같다. 시설도 깔끔하다. 전용 식당이 있고 식단도 괜찮아 보인다. 원장님과 실장님, 요양 보호사 선생님들도 모두 웃으며 아버님과 우리를 맞는다. '불편함 없이 돌봐 드리겠다' '식사 잘하시면 더 좋아지실 거다' 말한다. 자식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 진다. 그리고는 아버님에게 '어머님 생각해서 못했던 요구사항 다 말씀드리세요.' '더 편하실 거예요.' '더 좋아지실 거예요'라고 말씀을 드린다. 어쩐지 더 편하고 좋아지실 거라는 그 말이 거짓말인 것 같은 나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걱정이 되기는 아버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요양원 간병인과 간호사 선생님 등을 붙잡고 본인 상태를, 원하는 바를 느리지만 확실하게 전하신다. 하지만 귀 기울이는 자식들과는 달리 간병인과 간호사는 아버님의 말을 자른다. 일이 밀려 바쁘다는 듯 큰 목소리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과하게 또박또박 전하고 아버님의 방을 떠난다. 아버님은 귀가 먹지 않았으며 치매도 아닌데 그들은 아버님을 그렇게 대했다. 아픈 어르신들이 많으니 그럴 수 있다 이해는 하면서도 야속하기는 하다. 그래도 부모를 맡기는 심정에 따져 물을 수도 없다. 자식들은 아마 그때 알았을 것이다. 아버님이 결코 이곳에서 나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애써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척하며 아버님을 그곳에 맡기고 돌아 나온다. 아버님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아버님은 점점 말라갔다. 볼 때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져 있었다. 통통하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뼈에 가죽만 겨우 붙어 있는 지경이 되었다. 파킨슨 병이 악화되면서 식도의 근육이나 신경도 굳어 버린 것이다. 삼키고 싶은데 삼킬 수 없는 까닭에 무엇을 가져다 드려도 한 두 숟가락 겨우 잡술 따름이었다. 식사를 못하시게 되면서부터는 영양제로 버티셨다. 수액을 맞으면 좀 기운이 나셨고 그런 날은 컨디션이 좋으셨다. 누워만 계시는 아버님을 위해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해 드렸다. TV를 켜 놓고도 눈이 아파 못 보실 지경이니 세상 소식은 이렇게 자식들이 와야 듣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정신이 온전하셨기에 아버님은 자식들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귀를 기울여 주셨다. 그리고 전혀 당신이 아프지 않으신 것처럼 사돈들의 안부를 챙겨 물으시기도 했다. 마지막이 되어 버린 아버님을 찾아뵌 날, 그 날은 그랬다.
이후로 아버님의 건강에 관한 소식은 하루하루가 달랐다. 어떤 날은 밥도 잘 드시고 컨디션도 아주 좋으셨다고 했고 또 다른 날은 너무 안 좋으시다고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도 했다. 좋고 나쁜 것이 반복되면서 가족들이 느끼는 희비의 간격은 점차 줄어들었다. 서서히 평정심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늘 그러시지, 뭐 내일은 좋아지시겠지.'
아버님이 오랫동안 가족들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버님의 영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님을 볼 때면 제 의지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고 싶은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 삶을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지, 가장 단순한 일이면서도 기쁨이 될 수 있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조차 힘들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있다는 것을 유지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게 마비되어 가는 몸에 비해 너무도 또렷한 정신은 오히려 고통을 배가 시킬 것만 같다. 서서히 그 고통을 느낀 아버님의 심정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 고통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신 아버님이 존경스럽다.
결국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요양원 입소 4개월 만이다.
입소할 때 가족들이 내뱉은 '건강해져서 집으로 오실 것 같다'는 말은 그저 단체 최면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