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시간

장례식장에서

by 아라온

방바닥이 뜨겁다. 쏟아지는 잠을 떨쳐내지 않고 뜨거운 방바닥을 견뎌낸다. 빈소 한 편의 작은 방에 형님과 내가 누워있다. 상복을 입은 채로 이불도 베개도 없이 쓰러져 잠이 든 것이다. 창문도 없는 좁은 방은 어둠과 열기가 가득하다. 타는 듯한 목마름에 잠이 깨 방문을 연다. 향 냄새가 가득하다. 정신이 번쩍 든다. 눈을 반쯤은 감고 반쯤은 뜬 채로 아버님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가 그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을 발견한다.

"안 자고 뭐해?"

"향을 꺼뜨릴까 봐."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지나고 있다. 한 숨도 자지 못한 남편에게 잠을 청하고 대신 영정 앞을 지킨다. 향이 꺼지지 않도록 틈틈이 쳐다보며 새벽녘 고요함에 빠진다.


장례식장에서 내 이름을 보는 게 낯설다. 고인의 이름 아래 상주로 들어가 있는 내 이름 세 글자가 어색하기만 하다. 처음 하는 상주의 역할이 낯선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상주가 처음이었고 경험이 있는 사람도 황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의 운명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은 상조회사의 팀장이었다. 빈소가 차려지기도 전에 도착한 그 사람은 마치 가족의 한 사람이 된 듯 장례식을 지휘했다. 빈소를 어떻게 차릴 것인지, 조문객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제례 의식을 상중에 하게 되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알려주고 가족들을 준비시켰다. '빈소의 향을 꺼뜨려서는 안 된다'라고 주의시킨 것도 그다. '향은 영혼이 깃드는 것이므로 꺼지면 아버님의 영혼이 이곳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편이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까지 빈소를 지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염'을 지켜보는 것은 장례식의 절정이다. 돌아가셨지만 육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기에 그렇다. 상조회사 팀장은 아버님의 시신을 닦고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감겼다. 울컥한 감정에 눈물로 흐느끼는 가족들도 있고 지난한 과정에 멍해진 가족들도 있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팀장은 가족들에게 애도의 시간을 주었다. 시신 가까이 다가와 손을 잡고 말하라 했다. 조심스레 아버님의 손 위로 손을 내려놓는다. 딱딱하게 굳었다. 뼈만 남은 몸을 종이로 감싸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또 한 번 아버님의 죽음을 실감한 채 눈물을 흘린다. 추도의 말을 남기던 친척들 중 몇몇은 노자돈이라며 꽃으로 뒤덮인 관에 돈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아버님을 관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그 순간 상조회사 팀장이 관에서 돈을 빼내며 말한다.

"아버님 가시는 길, 애써 주신 여기 실장님에게 감사의 의미로 드리겠습니다."

가족들은 당황하지만 어찌할 수도 없다. 아버님 가시는 길에 애써 주신 것은 고마운 일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팀장의 마지막 말은 안 하는 게 나았다.

"어차피 돈은 이승을 건너지 못합니다."


장례식장에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화환이며 조기가 복도를 가득 매웠다. 장성한 자식들이 제 밥벌이를 잘 해내고 있다는 방증이 되었다. 자기 손님을 맞느라 바쁜 상주들과 달리 한가한 이는 오로지 나뿐이다. 손님이라고는 친정 가족들이 전부였다. 친구들에게는 민폐가 될까 알리지 않았고 직장에는 알렸으나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프리랜서 학원 강사라는 직업에 환멸이 생긴다. '조문은 둘째치고 화환 하나 못 보내주는 직장이라니. 화환은 됐고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이들도 없다니. 이 학원에 계속 적을 둬야 하나. 회사라 불릴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가야 하나. 직업을 잘 못 고른 것인가' 하릴없이 아버님 영정 앞에 홀로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만약 우리 엄마나 아빠가 돌아가신다면 어떨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동생과 나는 모두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화환도 조기도 손님마저도 별로 없는 초라한 장례식이 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머리가 무거워진다. 생각에 잠겨 빈소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향냄새를 맡았다. 밖으로 나가 깊은숨을 쉰다. 겨울밤 공기가 차다. 한결 머리가 가벼워진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기로 한다.


빈소는 여전히 북적인다. 마침 머리가 희끗한 아버님 지인들이 오셨다. 옛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이 알음알음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오신 것이다. 헌화를 하고 향을 피우고 애도를 한다.

"제게 정말 잘 대해 주셨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였습니다."

망자를 그리는 선한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위로가 된다. 정말 좋은 사람이 틀림없었던 아버님이 오래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억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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