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행복

by 아라온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의 행복을 시기하는 사람, 혹은 남의 인생과 내 인생을 비교하는 사람 같은 부류는 아니라고. 나는 나, 너는 너. 저마다의 인생이 있고 비교는 고통만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은 남의 행복에 내 불행을 다시금 떠올리며 눈물을 쏟아낸다. 지인의 SNS에 올라온 아이와 함께 보낸 주말, 곧 출산을 앞두고 찍은 기념사진이 내가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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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성 유산. 1년 만에 다시 시도한 시험관 시술에서 또 맞닥뜨린 결과다. 이번이 몇 번째 인지도 모르겠다. 슬픔보다는 좌절감이 크다. 임신에 성공해도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앞서는 일이 반복됐다.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초조한 시기를 보냈다. 초조해지지 않으려 몸을 바삐 움직이다가도 혹시 잘 못될까 싶어 누워 있기를 반복하는 2주였다. 출혈도 없고 느낌도 좋고 해서 이번에는 왠지 '나도 엄마가 되는 것일까' 했다. '잘 안 됐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허탈하다. 믿고 싶지 않다. 신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종교도 없는 내가 신을 탓한다. 내 자궁은 왜 튼튼하지 못한 것일까. 나를 탓한다. 내가 너무 많이 움직이고 돌아다녔나. 또 나를 탓한다. 계속해서 아이를 잃는 내 몸을 탓한다. 의사도 뚜렷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난임인 내 몸이 싫어진다.


남편이 내 낯빛을 살핀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심난해진 내게 '괜찮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것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남편에게도 미안하다. 남편을 생각해 웃어 본다. 나도 '괜찮다' 말해 본다. '뭐 이렇게 된 거 술이나 마시고 여행이나 가지 뭐' 말한다. 마치 결과를 듣지 못한 것처럼, 시험관 시술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통의 주말을 보낸다.


하지만 잠시라도 혼자일 때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습관성 유산'을 검색하고 있다. 한방 치료로 어혈을 빼야 한다는 한의원의 광고성 글과 습관성 유산으로 고생하고 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약을 지어먹어 볼까?' '안 먹어 본 것도 아닌데... 또?' '이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SNS를 본 것이다. 아이들과 행복한 주말을 보낸 주변 지인들과 친척들의 사진을. 유산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도 누렸을 그 알 수 없는 행복을 부러워하다가 펑펑 울고야 만다. 때마침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깊은 좌절감과 눈물은 날씨 탓이라고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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