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일까?
가벼운 마음으로 설문지를 들었다. 벽면 한쪽에는 다른 이들이 이미 작성한 설문지가 작품이 되어 걸려 있다. 그 벽면 한 귀퉁이에 내 설문지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 초입에서 설문지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설문지를 꺼내 볼펜을 든 이유다.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
설문지 제목을 보고 당황한다.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들어간 일상의 말을 재빨리 떠올려 본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집, 우리 남편, 우리나라, 우리 동네.
상황에 따라 '우리'는 다르지'라는 대답을 머릿속에서 마치고 설문지 문항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1번 우리의 범위.
'우리'를 국민, 주변인, 가족으로 나누고 각각의 범주에 해당하는 작은 개념들 중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고르게 한다. 말처럼 쉽게 우리나라 사람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국적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부모가 한국인이면 우리나라 사람으로 봐야 하는지, 부모 중 한 사람만 토종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민족의 개념으로 구분해야 하는 것인지 복잡하다. 국민 카테고리를 지나쳐 주변인부터 하기로 한다. 앞서 나온 국민이 다시 덩어리로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은, 나와 같은 부류인 우리인지 묻는다. 앞선 질문에 더 혼돈이 온다. 친구는 모두 우리가 될 수 있나, 같은 회사 사람이라고 모두 우리인가, 같은 동네 사람이라고 우리인가, 같은 고향이라면 우리 인가. 역시나 선택하지 못하고 다음 그룹인 가족으로 넘어간다. 가족은 직계와 친척과 인척의 옵션이 주어졌다. 부모와 자식에 체크하고 배우자를 체크하고 형제자매를 체크한다. 조부모가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쉽게 체크하지 못하고 손자 손녀도 체크하지 않는다. 조부모를 체크하지 않았는데 3촌과 4촌에 체크할 수 없고 인척은 법적 가족일 뿐 '우리'는 아니라며 남겨 둔다.
2번 당신의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회사(학교), 우리 가족, 우리나라, 우리 민족. 4개 항에 친밀도를 원 그래프로 표현해 수치로 표시하라고 한다. 영점에서 5점까지 친밀도가 높아진다. 가족을 5점에 체크하고 회사는 3점, 나라는 4점, 민족과 회사는 3점에 표시한다.
3번 우리의 속성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주관식과 객관식으로 이어진다.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우리'는 어느 집단인지, '우리'에 대한 불만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설문지를 들 때의 가벼운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설문지를 붙잡고 설문지 책상 앞에 서서 오래 고민했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다. 답하기를 포기하고 설문지를 접어 가방에 넣으며 '우리'를 생각해 본다.
나와 타인이 있다. 타인은 결코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타인이 될 수 없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뭉쳐진다. 관계와 제도 속에서 한 집단이 된다. 어딘가에 속한 것이라는 의미로 '우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에 동질감, 친밀감을 더해 질문하면 단순한 개념이 철학적으로 바뀐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 사이도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자녀가 장성하면서는 부모와 자식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기 힘든 것이다.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선택한 가족 구성원이지만 선택을 후회하게 만드는 때가 종종 찾아오는 것도 사실이다. 남편과 아내가 제일 가깝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한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회사나 학교는 추상적이다. 회사나 학교에 속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회사 사람들은 말 그대로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일 뿐이다. 개개인으로서는 친분을 쌓고 친밀하다 느낄 수 있겠지만 기타 많은 대다수의 회사 사람들과 나는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친밀감이라고는 없는 사무적 관계일 뿐이다. 학교도 다르지 않다. 선생님과 학생들 각각이 모두 서로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집단 내 소수의 개인과 우리는 관계 맺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이해받고 친밀하다 생각하는 것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과 내가 '우리'가 되는 순간은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에서다. 같은 팀을 응원할 때 하나의 목표에 같이 집중하는 그 순간에만 막연한 '우리나라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여행을 하다 우연히 한국 식당을 발견하거나 오지에서 한국 사람을 마주칠 때 반갑다는 느낌 정도만이 '우리나라 사람'에 갖는 친밀감이다. 그들이 나를 알고 이해한다거나 추상적 개념인 '우리나라'가 나와 친밀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가져본 적이 없다.
"남의 일에 뭘 그렇게 신경을 써?"
"내가 남이니? 너는 어쩜 말을 그렇게 하니?"
언젠가 엄마와 나눈 대화다. 모녀 지간을 남이라 칭한데 대해 엄마는 매우 언짢아했다. 서운해하는 엄마에게 '내가 아닌 사람은 다 남이지'라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갔다.
타인과 나를 철저히 구분하는 태도는 현재의 삶에 기인한다. 프리랜서 강사 생활 5년 차. 특별히 속한 곳이 없으니 '우리 회사'라 부를만한 곳이 없다. 적을 두고 있는 곳을 '우리'라는 말을 뗀 채 그저 '학원'이라고만 부르고 있다. 회사 동료는 모두 프리랜서로 각각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지속적으로 만나지 못하니 갚은 유대감을 쌓기도 어렵다.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저마다의 수업을 준비하다 보니 함께 일한다는 느낌도 적다. 여럿이지만 원자화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 외롭다.
친밀한 '우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의 일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 엄마에게 내 일상을 공유한다. 남편의 하루를 궁금해한다. 참석하지 않던 학원 송년회에 나간다. 동료들과 공통의 화젯거리를 찾는다. 이야기한다. 들어준다. 맞장구를 친다. 오프라인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잊고 지낸 과거를 떠올려 추억을 나눈다. 각자의 현재를 공유한다. 다음을 기약한다. 시민단체에 가입한다. 개인들이 어우러진다. 그렇게 타인이 아닌 '우리'가 된다. ‘우리’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