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ㅇㅇ씨

그날에 대한 반성

by 아라온

낯선 동네다. 휴대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길을 찾고 있다. 휴대폰과 주위를 번갈아 보며 걷는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한 아주머니가 내게로 다가와 말한다.

"여기 인터넷으로 좀 들어가 줘요"

아주머니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내게는 먼저 가야 할 곳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길에서 무언가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대개 '도를 아십니까?'와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미안한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진이 다 빠진다. 유독 수업이 많은 달이다. 그동안의 한가로움에 몸이 익숙해졌는지 바빠진 스케줄을 따라가지 못한다. 회사원보다 이른 퇴근이지만 지하철에는 자리가 없다.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무너져 내릴 것 같다. 환승역 몇 정거장을 지나쳐 드디어 자리가 난다. 안도하며 자리에 앉는다. 구두를 살짝 벗어 발을 꺼내본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눈 좀 붙여야겠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눈을 뜬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 올랐다. 비어 있던 통로가 사람들로 빽빽하다. 대각선에 서 있는 여성의 다리가 보인다. 낮은 운동화와 검은 레깅스 그 위에 입은 긴 니트. 왠지 그녀는 임산부일 것 같다. 확인하고 싶지 않아 눈을 다시 감는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뜨고 시선을 올려 본다. 그녀의 허리 즈음에 가방이 있고 거기에 매달린 핑크색 임산부 배지. 역시나 그녀는 임산부였다.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고 싶으면서도 일어나고 싶지 않다. 그녀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정말이지 피곤하다. '그녀 앞사람이 먼저 비켜줘야지, 나보다는 그 사람이 먼저지'라는 변명을 만들고 눈을 감는다. 마치 임산부를 보지 못한 것처럼. 마음속에 이는 찝찝함을 외면하면서.


1년째 ㅇ역 지하철 출구 앞에는 쇼핑백을 든 아주머니들이 서 있다. 근처 분양사무실로 손님을 데리고 가려는 이들이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너 명씩 서서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비닐 쇼핑백을 들이민다.

"저기 분양사무실 구경만 하고 가"

분양사무실로 호객을 하는 아주머니들은 차츰 더 적극적이 되었다. 지하철 출구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거절하기 어렵게 눈을 마주치고 '분양사무실 구경 좀 하고 가라고, 5분도 안 걸린다고, 집 지금 사라는 거 아니라고'부탁했다. 퇴근길에 매번 마주치는 그 아주머니들에게 '죄송한데 바빠요, 아파요' 말하기도 했고 미소만 짓기도 일쑤였다.


어느날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팔을 잡으며 쫓아와 이야기한다.

"나 좀 도와줘, 나 알반데 오늘 한 개도 못했어, 나 잘려!"

팔을 잡는 것도 싫고 동정에 호소하는 것도 마뜩지 않다. 그즈음 계약 연장이 되지 않아 일하던 한 곳을 잃었다. 누가 누구를 도와야 한다는 것인지, '도와 달라는 말'과 '잘려'에 순간 화가 난다.

아주머니가 잡은 팔을 뿌리치며 말한다.

"아 진짜, 왜 그러세요, 됐어요"

머쓱한 아주머니가 그제야 다른 곳으로 간다.


버스는 이내 도착한다. 버스에 오르고 자리에 앉아 이리저리 시선을 움직인다. 창밖을 보기도 했다가 버스 TV를 봤다가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눈을 감는다. 근래 며칠 사이의 일이 한꺼번에 다 떠오른다.

'인터넷 좀 찾아봐 드릴걸, 바쁜 일도 아니었는데. 데이터도 많은데'

'임산부한테 자리 좀 비켜 줄걸'

'호객 아주머니한테 짜증 내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말해도 될걸'


선하지 않은 세상과 사람들에 탄식하면서도 선하지 못한 행동을 한 데 대해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최근에 좋은 일이라고는 생가지 않는 이유가 다 그 때문인 것만 같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소파에 드러눕겠다 작정하며 왔지만 그러지 못한다. 괘념하며 브런치에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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