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람

지하철 안 노인들

by 아라온

지하철은 지옥철이다. 수도권 지하철은 나날이 노선을 확대하는데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여전히 지옥철이라 불릴 만큼 복잡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 위는 지나다니기 어려울 만큼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긴 줄의 틈을 찾아 지나간다. 비교적 짧은 줄에 선다.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온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오른다. 공간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지하철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밀리며 들어간다. 꾸깃꾸깃 사람들이 구겨진다. 얼굴도 따라 구겨진다. 무표정한 얼굴들, 불쾌한 얼굴들, 화난 얼굴들. 서로의 그런 얼굴을 피하려 시선을 돌린다. 휴대폰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창밖으로. 넋을 놓고 멍하니 어서 이 지옥철에서 내릴 순간만을 기다린다.


지하철 안은 대부분 돈을 벌러 나가는 사람들이다. 대개는 회사원일 그들은 역시나 회사가 많이 있을 법한 역에서 우르르 내린다. 적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학교의 이름이 쓰여 있는 과 점퍼를 입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학생들과 휴대폰으로 인터넷 강의를 보는 취업준비생들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보다 더 많은 수의 노인들이 지하철에 있다. 인구의 고령화를 실감한다.

'이 바쁜 시간에 꼭 지하철을 타야만 하나'

'시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 늦게 가거나 더 일찍 타지 그러시나',

'나이 듦이 무기라도 되는 건가, 자리 양보를 하라는 듯 임산부 앞에 서 있는 저 뻔뻔함은 무엇인가'

노약자석 근처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노인의 압박을 버티던 임산부는 몇 정거장을 가지 못해 일그러진 얼굴로 일어나 자리를 내어준다.


순간 임산부와 눈이 마주친다. 배 부른 임산부를 배려할만한 여유가 이 지하철에는 없다. 그 사실이 안타까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손잡이를 꽉 잡고 일어선 그녀는 손잡이를 놓지 않고 서 있다.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 곳에 서 있던 나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리며 균형을 잡는다. 휴대폰을 보는 것도 여의치 않아 눈을 감고 존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오늘의 추천 음악'에 집중한다. 피곤함이 나른함이 되어 잠에 빠질 것도 같다. 그때 지하철이 급정거를 한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있던 나는 앞으로 쏠리고 옆으로 쏠려 임산부 가까이로 간다. 용하게도 그 임산부는 나를 피해 안정적으로 서 있다. 임산부를 지나쳐 노약자석으로까지 기울어진다. 앉아 있던 노인들 가까이로 상체가, 들고 있던 쇼핑백이 쏟아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노인들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싶어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다행히도 부딪치지는 않은 듯 노인들은 말이 없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옅은 미소까지 보인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이번에는 손잡이를 꼭 잡고 노약자석 앞에 선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관찰한다. 허름한 옷차림, 세탁이 되지 않은 겨울 외투가 슬프다. 노인들이 꼭 이 시간에 나가야만 하나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야 하는,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이들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집에서도 반겨주지 않는 늙은 사람은 아침부터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어둑해져야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무료한 기나긴 하루를 보내기 위해 서둘러 아침부터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생각에 잠긴 듯 슬며시 눈을 감고 가는 것은 지하철에 오른 젊은이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니 이들이 측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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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잠깐이라도 원망해서.'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외친다.


부모님은 어느새 노인이 되었고 나도 늙고 있으니. 그들과 내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새삼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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