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앞에서

6월이다

by 아라온

시간은 흐른다. 온 세계가 바이러스로 멈춰서도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잠해 지기는커녕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으며 질긴 생명력을 퍼뜨리고 있다. 오히려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사람들이 서서히 답답함을 못 이기고 밖으로 나간다. 바이러스 때문에 못 살거나 굶어서 못 살거나 매한가지라며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예전과 같은 일상이 아닌 새로운 일상일지라도.



마치 신인류를 보는 듯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나갈 수가 없다.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부터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를 마주한다. 아파트 단지 문을 나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볼 수 없다. 마스크를 안 쓰면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모두가 휴대폰을 들고 다니듯 모두가 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답답함을 견디며 타인의 침방울을 막아낸다.


다수의 타인이 모이는 장소를 피한다. 손쉽게 즐기던 극장 나들이는 1월 '남산의 부장들'에서 멈췄다. 2020년에 극장에 가본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싶다. 무슨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지 무슨 영화가 상영이 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사라졌다. 어두운 곳에서 남모르는 사람과 바짝 붙어 앉아 한 시간 이상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이 영 께름칙하다.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가 여름에 개봉을 한다는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좋아하던 헬스장을 끊었다. 습관처럼 퇴근 후 운동을 해온 지 10년째다. 그런 운동을 멈췄다. 헬스장은 영업을 하고 있지만 가지 않는다. 호흡이 중요한 요가나 격렬한 유산소 운동인 줌바를 마스크를 쓴 채로 할 자신이 없어서다. 운동을 하지 못해 좀이 쑤신 몸은 공원을 걷는 것으로 갈음한다. 성에 차지 않는 격렬함이지만 바깥공기를 쐬며 할 수 있어 좋다.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꽃과 나무를 보는 것도 의외의 재미다. 운동이라기보다는 명상 같은 산책을 즐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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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꽃이 천변에 만발할 즈음부터 산책을 시작했다. 겨우내 답답했던 마음과 몸을 봄기운에 씻고 싶었다. 쌀쌀한 공기였지만 시원했다. 마스크 틈 사이로 들어오는 봄바람이 얼굴에 와 닿았다. 바이러스가 곧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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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에는 조팝나무가 무리 지어 피었다. 하얗고 작은 꽃이 군락을 이뤄 아름다움을 뽐낸다. 벚꽃이 떨어져 아쉬운 마음은 이팝나무가 채워준다. 쌀처럼 생긴 꽃이 초록 나뭇잎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맑은 하늘에 눈이 내린 것처럼 눈부시다. 달콤한 향기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아파트 단지에는 라일락 향이 가득하다. 눈과 코가 즐거운 화창한 날씨가 그렇게 지나갔다. 코로나도 이렇게 잠잠해지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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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천변은 온통 녹색이다. 새순은 어느새 자라 진한 녹색을 띠기 시작했다. 최근 자주 내린 비로 나무는 풍성한 잎을 갖게 됐고 풀들은 무성히 자라났다. 공공근로가 멈춘 탓인지 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자라난 풀 때문에 늪처럼 변한 구간도 보인다. 끝난 것처럼 보이던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집단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긴급재난 문자가 울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마음이 더 지쳐만 간다. 하루빨리 치료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답답한 마음을 초록의 기운으로 달래며 걷는다. 붉은 장미가 초록잎 틈 사이에서 강렬하게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 시기를 잘 버텨내란 응원처럼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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