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앵커의 멘트가 울린다.
앵커(E)
대한민국 국민의 촛불이 뽑은 새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유자가 몹시 피곤한 듯 어깨를 두드리면서 등장한다.
유자(Na)
세상이 또 바뀌나 보네요. 모든 것이 다 바뀌어요. 내 처지만 빼고.
유자 등 뒤로 네온사인이 들어오면서, 비트코인의 가격이 반짝거린다.
2017년 12월. $13062(약 1560만 원)를 찍는 비트코인의 가격.
유자(Na)
(보지 못한 채) 포미가 걱정이에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휴대폰을 쥐여줬었죠. 그거라도 들고 있으면 떼를 안 쓰니까. 지금 포미는 나하고는 대화도 잘 안 해요. 휴대폰만 본다고요. 휴대폰이 엄마요 가족이니까요. (한숨 쉬고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통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모르겠어요. 누가 날 좀, 바로잡아 주면 좋겠네요. 아니면 이게 정답이라고, 뭔가 명확한 설루션을 알아서 제시해 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마이클럽 익게, 다음 미즈넷, 네이버 레몬테라스, 네이트 판 같은 데 질문을 올리곤 했는데, 그런 것도 다 부질없더라구요. 다들 정답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내게는 알려주기 싫은 건지 누구도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2018년’이 무심히 흐르고,
유자(Na)
그렇게 나는 이 사회의 무지랭이가 되어서 넋 놓고 죽음을 향해 달려……. 아니, 앉아서 기다리겠죠. 이러다가 50, 60이 되어 있겠죠. 무일푼에, 무주택자에, 나쁜 엄마로. 에휴, 속 시끄럽네요. 잠이나 잡시다!
유자, 힘없이 옆으로 피식 쓰러진다.
유자는 계속 널브러져 있는데, 스크린에서 유튜브 화면이 나온다.
어린아이의 언박싱이나 한창 인기몰이를 하는 보람튜브 등이 보인다.
유자, 힘겹게 몸을 돌려서 화면을 잠시 본다.
유자
저런 걸 올려서 수십억을 번다고? 저 정도는 나도 하겠다. 잠깐만. (뭔가 떠오른다.) 포미야. 우리도 동영상 찍자! 너 좋아하는 휴대폰으로 놀이를 하는 거야. 재밌겠지? 포미야?
유자, 일어나 사방을 돌면서 딸을 찾는다. 안 보인다.
유자,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낸다. 기다린다. 답이 없다.
잠시 뒤, 유자, 놀란 눈으로 휴대폰을 터치하고는 뚫어져라 바라본다.
암전.
유자(Na)
(어둠 속에서) 살다 보면 불행한 일을 겪기도 해요. 누구나요. 하지만, 우리 포미는, 너무 심한 불행을 겪게 됐어요. 죽었냐고요? 비슷해요.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어린 포미에게 누군가 접근해서 양말을 팔라고 했어요. 용돈이 궁한 포미가 응했고, 다음에는 스타킹, 그리고 속옷을 팔라고 했어요. 포미가 보낸다고 했어요. 그러자 더러운 인간이 아이를 위협해서는 더럽고 몹쓸 짓을 시켰어요. 포미는 공포 속에 울면서, 그 더러운 인간들의 희생양이 됐어요. 야, 이, 씨발 새끼들아!
불이 들어오면, 유자가 처연하게 서서 간절하게 먼 곳을 응시한다.
유자
포미야. 너는 실수를 한 거야. 아주 작은 실수. 엄마도, 다른 사람들도 자라면서 살면서 누구나 흔들릴 수 있는 그런 실수였어. 그런 실수를 악으로 만들고 고문한 인간들이 잘못된 거야. 그러니까 너는, 더 이상 울지 마. 잘못했다고 하지 마.
유자가 보이지 않는 포미를 끌어안고 어루만진다.
유자의 등 뒤로 수도권 부동산 가격 그래프가 뜬다.
유자, 포옹을 풀면서 한숨을 내쉰다.
유자(Na)
이렇게 속이 무너진 와중에도 우리는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전세가 너무 올랐으니까요. 나는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간 다음 알바를 더 많이 하면서 돈을 벌어 보려고 했습니다.
유자(Na)
그랬습니다만, 세상은 또다시 뒤집혔습니다.
화면에 ‘코로나19’를 알리는 자료들이 보인다.
유자(Na)
인터넷의 시대에 역병이라니! 이 질병의 파워는 상상을 초월했죠. 세상을 공포에 얼어붙게 했습니다. (리모컨을 꺼내 쭉 뻗으며) 반면에 수혜를 본 업종들도 있죠. 이른바 비대면 산업들. 지금 나랑 포미가 보는 넷플릭스가 선두주자겠고요.
유자, 잠시, 멍하니 뭔가를 보다가, 실없이 웃는다.
유자
추천작이 좀비라고? 인공지능이 바둑이나 잘 두지, 인간의 취향은 모르네? 난 좀비물 극혐이거든! 포미야, 넷플릭스가 엄마 취향이 좀비래, 우습다 그지? (기다렸다가) 응, 그래. 대답 안 해도 돼. 엄마는 혼잣말도 좋아해. 원래 엄마는, 독백의 여신이야. (잠시 보다가) 넷플릭스를 하루 종일 봤으니까, 이번엔 유튜브 볼까? 어디 보자. 유튜브를, 일단 사이트에 접속하고…….
유튜브 화면이 보이는데, 여러 동영상 중 ‘비트코인’이 뜬다.
유자, 물끄러미 보다가, 비트코인 동영상을 클릭한다.
동영상이 나오는 동안, 무대는 암전.
앵커(E)
비트코인 가격이 쭉쭉 올라갑니다. 예전에는 비트코인으로 피자 한 판 시켜 먹은 게 뉴스였다는데, 지금은 얼마일까요? 오, 7천 9백……. 아니, 8천! 네에! 비트코인이 8천만 원을 찍었습니다! 만약 비트코인이 10개쯤 있다면, 8억쯤 되는 건가요?!
이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