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와 재회
"별 건 아냐. 폐암이래"
한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지금은 건강해.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는 다시 만났고 다시 천천히 가까워졌다. 그는 우리가 헤어져있던 2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
"아픈 니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짐작은 했었지만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상처를 많이 받은 듯했다. 예전에는 다정하고 자상하기만 했던 그가 세상에 치이고 치여 상처도, 흉터도, 굳은 살도 많이 생겼다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들어 알고 있었다. 바람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내게 일러주었다.
스무 살 그때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슬쩍올려다보니 그때랑 똑같은, 지천명을 코앞에 둔 그가 있었다. 큰 키, 못생긴.. 어린 내가 좋아했던 동글동글한 얼굴. 춤을 추고 글을 쓰던 사람, 그리고 너무도 다정하여, 다정 앞에 도망치고 싶게 만들던 사람, 늘 나를 두고 기차를 타고 떠났던 사람, I can't cry 노래하게 하며 울게했던 사람.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웃기게도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90년대 파란 화면 속에서 다시 만났다. 한글로 아이디를 만들 수 있게 된 날, J는 내게 '영원'을 권했다.
"영원한 사랑을 꿈꾼댔잖아. 이뤄지길 바란다."
"넌?"
"난 가을비로 정했어."
왜 가을비로 했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모임에서 노래방엘 갈 때마다 친구들은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을 '가을비처럼 기쁜 노래를~'로 바꿔 불렀다. 생각해보면 추적추적 가을비가 더 스산한데...그땐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항암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가는 날, 피검사를 하고 지혈을 하는데 그가 팔을 꾹 눌러주었다. 반창고를 통해 전해지는 온기에 찌릿, 마음이 따뜻해졌다. 최근에는 몸이 많이 좋아져서 혼자 병원을 다니며 지혈도 항암도 모두 혼자 했었다. 병원은 원래 혼자 다니는 거였는데 온기를 나눠주니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었다.
"나 학회 핑계로 병원 휴가 내기로 했어. 다섯 중 나 하나 없어도 뭐.. 우리 여행가서 스냅도 찍을까? 꿈이었다면서. 나도 하와이는 처음이라..."
결혼이 꿈이었지만 오래 전에 포기했다고, 그래도 웨딩 사진은 한번 찍어보고 싶었다고 말했었다. 먼저 제안해 줘서 고마웠다. J는 다정한, 상처 입은 짐승같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내가 아닌 그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