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 또는..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몇 달 만에 J는 딴 사람이 되었다. 다정한 로맨티시스트 그 자체였던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냥, 그저, 남편이다. 그래도 병원에 갈 때에는 출근을 미루고 옆에 있어준다.
J는 나를 만나 살이 5킬로 찌고, 나도 그를 만나 그만큼 살이 쪘다. 짱구였던 J는 곰돌이 푸가 되었다. 주말이면 우리는 하루종일 함께 있고 하루종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종종 싸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달콤함과 잔인함을 오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중에 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줘야 해.”
“뭔데?”
“나중에 말할게. 그때 꼭 들어줘.”
뻔했다. 그 소원이라는 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언젠가 J가 말했었다. 내가 가을이를 닮았다고. 아니 가을이가 날 닮았었다고. 결혼 10년 만에 갖게 된 아가 가을, 그가 잃은 가을, 나를 닮은 가을이를 잃고 J는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어갔고 결국 아내를 잃었다고 했다. 다정을 잃은 자기를 떠나 더 다정한 사람에게로 간 그녀에게 살던 집을 내어주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온다고 했던가. (정현종 '방문객')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한, 그 사람을 둘러싼 전부를 잃어버린 것.
그의 소원은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
상처가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사람, 웃으며 말하는 J 때문에 나는 울었다.
우리 맞은 편 케이블카에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아이들을 만난 지 참 오래되었다. 너무 반가워 손을 흔들었다. 다음 칸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먼저 흔들어 주었다. 내가 응답하자 선생님 옆에 앉은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너무 고운 사람인데 나를 다시 만나 그때처럼 마음 다치진 않을까. 귀한 사람인데 내 욕심부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 마음이 쓰여. 미안해.’
그랬던 J는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