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읽는 신형철 평론집
몇 년 전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읽기 시작했어요. 인터넷에서 본 서문에 심쿵해서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동시대 한국 시와 소설을 촘촘하고 현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입니다. 인용과 주석이 난무하는 책을 읽어가며 헉헉대다 나는 5분의 1도 채 못 보고 반납해 버렸습니다.
한국 문학을 온갖 이론으로 미세 분석하는 신형철 글은 가독성이 떨어졌어요.
유시민은 독서를 등산에 비유합니다. 같은 산을 타도 어떤 이는 체력이 후달려 코 앞만 바라보며 겨우 쫓아가고, 어떤 이는 수월하게 오르며 경치, 새소리, 신기한 동식물도 감상하며 전방위적으로 즐긴다고요. 같은 책을 읽어도 첫 시도엔 이해 못 하는 문장투성이에 허둥대며 줄거리만 따라가지만, N차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행간 의미까지 추르릅~ 이해하며 즐기는 경지에 오르는 게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그 차이는 지력이나 체력이 아닌 반복과 습관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몰락의 에티카"를 얼추 반절 읽었으니 1차 시도보단 훨 낫네요! 엉큼하게도 신형철은 진짜 주인공인 시 분석에 앞서 소설과 영화라는 당의정(糖衣錠)을 입혀뒀습니다. '2000년대 한국 시여, 내 초행길이라도 일단 걸어는 보리다.'
신형철 평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술술 잘 읽혀요. 확실히 대중서죠. "몰락의 에티카"는 페이지마다 인용이 빼곡하고, 정 안 가는 죽은 프랑스인들(라캉, 푸코, 들뢰즈), 요란스럽고 현학적인 지젝도 자꾸 등장합니다. 이 책은 난해한 텍스트 과제를 못 읽어가서 교수님 눈길 피하던 대학원생 시절로 나를 데려갑니다. 이 텁텁한 기시감! 학회에서나 돌려볼 논문을 대중서로 충분히 다듬지 않고 턱 찍어낸 거죠. 내 1차 시도 실패 제1 이유입니다!
도전 의식일까요? 예, 조금은요. 살짝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 냈을 때 성취감을 얻는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닙니다.
까다로운 책에 미련이 남아 다시 대출해 온 이유는 성장기 몸에 밴 습관과 관련 있어요. 중학교 3학년 학기 말, 모든 시험이 끝나고 며칠간 학생들을 마구 풀어주는 기간이었어요. 수업 대신 교실 앞 TV에서는 프랑스, 홍콩 영화들이 내리 상영됐고, 우리는 영화를 보거나 딴짓을 했죠. 그 시기 번잡한 교실에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붙잡고 기계적으로 미션 클리어하듯 읽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지막 장을 덮을 테야. 포기하지 않을 테야.'
내 중3 항마력으로 "달과 6펜스"를 오롯이 즐겼을 리 없습니다. 조악한 중역이 틀림없을 전집의 구색 갖추기 문고판 말입니다. 주인공 기행이 충격적이기도 해서 호기심은 자극했지만, 당시 나는 우연히 뽑아 든 그 책을 다 끝내겠다는 허튼 의무감에 읽었습니다. 의무라니, 무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마찬가지죠. 흔한 청소년 권장 문학이라도, 나한텐 어려웠어요. 꾸역꾸역 숙제하듯 읽어낸 기억이 또렷합니다.
누가 상 주는 것도, 숙제도 아니었어요. '세계문학'이라고 하니 도장 깨듯 미련스레 읽은 거죠. 그런 '고전'을 갑갑해하며 읽은 건 작가의 아우라 때문이죠. 신형철은 헤세도 몸도 아니지만, 그의 밀도 높은 문장들은 분명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문은 강력하죠!
내가 읽다 만 책은 세고 셌지만, 성인이 된 후 시차를 두고 재도전한 책은 드뭅니다. 몇 년 전 내 첫 시도와 이번 두 번째 시도 중간에는 영화 "헤어질 결심"이 있습니다. 영화가 내 몸 어딘가 웅크려있던 서문의 문장들을 트리거해 확 불이 붙었어요.
영화 말미, 서래를 삼킨 거친 바다에서 헤매는 해준 이미지가 불러내온 서문입니다.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나를 뒤흔드는 작품들은 절정의 순간에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들은 왜 중요한가.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몰락을 '선택'한 서래는 나를 마구 흔들었고 그 후유증은 오래갔습니다.
방학을 맞아 하루 10-15장씩 느릿느릿 읽습니다. 오기로 책을 붙들고 있는 나를 부러 기록으로 남깁니다. 2번째 시도는 과연? '마침내(서래)' 성공하길! 첫 산행보다는 덜 자빠지고, 덜 삐끗하기를. 민폐 끼치지 않고 잘 내려와 뿌듯하게 반납하기를. 그리고 통독한 후 독후감 쓸 수 있길!! '이 책 절대 읽지 마라'류 험담일지라도.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2008
커버 이미지: Nathan Dumla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