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촘촘히 연결된 중독 행동
애나 렘키의 얇은 워크북 "도파민 디톡스"를 후루룩 읽고 중독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딸이 쓰다 만 A5 공책이 내 일지가 됐다. 표지에 '중독 치료 일지'라고 크게 쓰고 날짜를 박았다. 11월 19일 시작, 12월 18일 끝. 애나 렘키의 그 유명한 "도파민네이션"은 읽지 않았다. 이미 중독 관련 책은 꽤 읽은 데다, '도파민'이란 단어가 흔해진 탓에 피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짧고 가벼운 워크북이라니, 재미삼아 훑어보다 일지까지 쓰게 됐다.
우선 끊고 싶은 중독을 나열했다. 설탕, 카페인, 한국 뉴스, 주식 앱... 끝도 없는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던 중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 심각한 중독을 빠뜨린 것이다! 밤마다 이어폰 꽂고 팟캐스트나 유튜브 들으며 잠드는 습관! 세상에, 이걸 빼놓다니. 갑자기 다른 행동들은 사소해 보였고, 이번에야말로 '이어폰 취침'을 고쳐보겠다는 전의에 불탔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 않다. 대략 7~8년 전, 남편 코골이를 피하려다 시작된 것만은 확실한데, 이젠 혼자 여행을 가서도 못 끊는 징한 습관이 되었다. 숙면 방해, 청력 저하, 밤사이 뇌 세척 효과 저하로 인한 치매 위험까지... 끊어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하지만 밤마다 실패했다. 내 중독은 수면과 촥 달라붙어 강력한 보상 경로를 만들어버렸다. 사람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뇌가 잠들기를 거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가장 힘겨울 첫 며칠은 멜라토닌 젤리의 힘을 빌려볼까 했다. 하지만 애나 렘키는 내 생각에 철퇴를 내렸다. 한 가지 중독을 다른 중독(약물)으로 대체하는 '교차 중독'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담배 대신 군것질을 하다 살 찌는 것과 같다. 해결은 정공법뿐이다. 욕구가 들면 일단 '인식'하고 잠시 멈추는 것. 창밖을 보거나 기지개를 켜며 욕구와 행동 사이 틈을 벌리는 것이다. 지름길은 없다. 지루함과 심심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길뿐이다.
습관이 잡히는 데는 4주가 걸린다고 한다. 오늘까지 4일 밤을 이어폰 없이 잤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까지 멀뚱멀뚱 누워 지루해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 이어폰은 아래층 현관문 조깅복 주머니에, 휴대폰은 침대에서 멀찍이, 아침 알람이 겨우 들릴 정도 거리에 뒀다. 수면에 연계된 강력한 중독이려니 했지만, 하루 딱 한 번만 참으면 되니 의외로 할 만하다. 그렇다고 수면 질이 확 높아진 것도 아니다. 알람 소리에 피곤하게 몸을 일으키는 건 똑같다.
이 책은 단순한 행동 교정을 넘어 삶의 태도까지 곱씹게 만든다. 내 나쁜 습관은 삶의 다양한 부분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 시사 방송에 과몰입하는 이유, 지루함(여백)을 못 이기고 수다(뉴스)로 채우려는 강박, 그리고 '솔직함 부족'까지! 중독 치료 책에서 웬 솔직함 타령인가 싶겠지만, 읽다 보니 확 와닿는다.
사람은 거짓말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적극적인 거짓말부터 내게 이롭게 살짝 비틀거나 편집해 얘기하는 버릇까지, 아이와 어른은 하루 1~2개 거짓말은 한다고 한다. 솔직하지 못하면 실망감, 자기 비하, 우울감에 빠지기 쉽고, 사소한 거짓말이 불러오는 뒷감당은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중독을 부른다. 즉, 중독을 끊으려면 스트레스 원인 '거짓말'을 끊어야 한단다.
중독은 고통을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데, 거짓말 역시 불편한 상황(고통)을 피하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이 '솔직함' 챕터가 내 맘에 쏙 든다. 예전에는 일감을 거절할 때, 돈이 적어서라고 말 못 하고 "시간이 없다"라고 돌려 말하곤 했다. 그러면 회사는 마감을 늘려주겠다며 다시 제안해 오고, 난 더 난처해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몇 년 전부터는 예의를 갖춰 "비용이 맞지 않는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솔직함 실천이 업무와 삶의 만족도를 높여줬다.
물론 일상에서 실천은 여전히 어렵다. 그제만 해도 시어머니가 전화하셔서 딸(손녀) 성탄 선물을 대신 사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쇼핑을 질색하는 미니멀리스트이고, 대리 구매는 더더욱 싫다. 하지만 차마 "제가 대신 사는 건 힘들어요. 남편에게 부탁할게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뜨뜻미지근하게 전화를 끊고 그날 저녁 남편에게 내가 받은 짐을 공식적으로 떠넘겼다.
만약 그때 정중하게 거절했더라면 어땠을까? 시어머니가 잠시 서운해하셨을지 몰라도, 뒤끝 없는 분이니 아들에게 부탁하거나 직접 사셨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매년 돌아오는 선물 시즌마다 겪을 불편한 상황을 원천 봉쇄했을 것이다. 막상 진실을 말했을 때 돌아올 불이익은 걱정보다 미약하다는데, 나는 그 작은 용기를 내지 못해 스트레스를 사서 받았다.
중독 치료는 결국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과정 같다. 왜 내가 불안한지, 왜 이 욕구에 매달리는지 직시하는 것. 타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진솔해진다면 후회와 자책으로 기분이 가라앉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12월 중순, 일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기쁘고 떳떳한 마음으로 채우고 싶다.
(공백 제외 1862자)
*애나 렘키(Anna Lembke), 도파민 디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