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완화 의료
만 82세였던 아버지에게 시련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초기 파킨슨 치매, 편도암 3기, 대장암 1기. 평생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사셨던 아버지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편도암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자, 독한 약물은 아버지를 종일 깊은 피로 속에 가두었다. 방사선 치료로 입안이 헐어 식사조차 못하셨고, 그토록 정정하시던 기력과 근육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버지는 순식간에 앙상한 환자가 되셨다.
그 와중에도 검사는 왜 그리 많은지, 대형 병원 진료실과 대기실을 오가며 환자와 보호자는 함께 시들어갔다. 그즈음, 병을 앓던 엄마가 돌아가셨다. 최고 전문가를 수소문해 가며 최상 의료 서비스를 받던 엄마는 허무할 정도로 갑자기 떠나셨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것은 기술적, 이론적으로만 최선이었을 뿐, 엄마라는 한 사람의 삶과 상황을 고려한 선택은 아니었음을.
엄마 장례를 치른 후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몸과 마음이 쪼그라든 아버지는 더는 수술도, 항암도, 방사선 치료도 싫다고 하셨다. 1기라 뒷전으로 밀렸던 대장암도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주치의는 초기이니 간단한 수술로 떼어내자고 권했지만, 우리는 그마저도 거부했다.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그 어떤 치료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일종의 작용과 반작용이었을까. 엄마를 최고 전문가들에게 맡겼으나, 엄마 운은 짧았다. 그 후회 탓에 아버지의 남은 시간은 오직 아버지가 가장 편안해하는 방식에 맡기기로 했다. 약을 줄이고 치료를 중단하는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마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의사 말 들을 걸 그랬나...'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3주쯤 지나자,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기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유동식이 아닌 일반 식사가 가능해졌고, 홀로 짧은 산책도 다녀오셨다. 단기 기억을 잃어 방금 식사를 하셨는지조차 잊으셨지만, 외출할 때면 위치 추적용 휴대폰만큼은 꼬박꼬박 챙기셨다. 한 주먹이나 되던 약을 대부분 끊고, 통증 조절을 위한 최소한의 약과 치매 패치만 남겼다.
우리는 밥 먹듯 드나들던 서울 대형 병원행을 멈추고, 집 근처 가톨릭 성모병원 완화 의료 센터에 등록했다. 통상적으로 생애 말기 환자가 대상이지만, 고령에 두 가지 암과 치매를 앓고 계신 점을 적극 어필해 예외적으로 재택 완화 의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아빠는 올해 두 번 응급실에 입원하셨다. 수술하지 않은 대장암 세포가 커져 직장을 막기 때문이다. 스탠스 삽입 후 식단 조절로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산책 시간이 짧아지고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식단이 바뀌고 있을 뿐, 여전히 자립적 생활을 이어가신다.
파킨슨병 환자라 밖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지만, 좋아하시는 '나 홀로 산책'을 막지 않는다. 불안함은 가족 몫, 아버지는 해맑게 하루 여러 번 짧은 산책을 즐기신다. 단풍잎이나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뭔가를 주워 오신다. 위생상 께름칙하지만, 막지 않는다. 만 85세 치매 환자치고는 선방하는 셈이라며 나를 위로한다. 대장암에 좋지 않을 게 뻔하지만, 좋아하시는 땅콩 캐러멜 과자와 목캔디도 마음껏 드시게 한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막아가며 몇 개월 더 사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지방 소도시 아파트 한 채 값이 들어갔던 임플란트가 다 망가지고 이젠 성인용 기저귀를 차셔야 하지만,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기억은 또렷하시다. 컨디션 좋으신 날이면 나는 부러 옛날이야기를 여쭙는다. 아버지는 신이 나서 기억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나는 그 말들을 놓칠세라 메모장에 부지런히 받아 적는다. 선명한 아버지의 기억들이 고마워서,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깝기 때문이다.
완화 의료 주치의가 바뀌었다. 젊은 의사는 검사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아버지 상태가 놀랍다고 본인 일처럼 기뻐한다. 암 치료를 중단한 고령 치매 환자가 3년이나 평온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건 드문 일일 테다. 이제는 치매 패치조차 끊은 지 오래다. 응급실 환자가 되실 때면 여전히 가슴을 졸이지만 말이다.
엄마가 그리 일찍 떠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불안을 이기지 못해 전문가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버지는 지금쯤 고통과 산더미 약봉지에 파묻혀 계셨겠지. 가슴에 주사 포트를 심고, 온갖 검사와 병원의 방어적 진료에 시달리며 침상 환자로 남은 생을 보내셨을지 모른다.
먼 훗날, 나 역시 아버지처럼 완화 의료를 조금 더 일찍, 파격적으로 선택하고 싶다. 막상 그때가 닥치면 변덕이 생길지 모르지만, 지금 마음은 그렇다.
(공백 포함 2,237자)
사진: Unsplash의Leo_Vi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