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 문학동네
01.
모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엄마, 그 버지스 씨네 애들 있잖아. 걔들 얘기 한 번 써볼까 봐."
딸이 작가인가 보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이 압권이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없어."
소설 <버지스 형제> 프롤로그의 내용이다. 이 문장을 읽고 책 뒤에 숨어있는 작가의 존재를 얼핏 커튼 사이로 본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의 말이 맞다. 이 말이 사실임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소설을 쓰고,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며 한계에 도전하는 창작자들.
02.
<올리브 키터리지> 이후로 두 번째로 읽은 작가의 책이다. 두 책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공통점을 찾았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세밀하다. '세밀한 심리묘사'는 누구나 기쁠만한 상황에서 기쁘다고, 누구나 슬플만한 상황에서 슬프다고 그때그때 구구절절 설명한다는 말이 아니다. 덩어리진 감정은 짚어주지 않아도 두루뭉술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인간은 공감의 동물이니까.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뉴스를 보면서 TV 드라마의 줄거리를 따라가고, 동시에 주방에 있는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듯이,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쓸 때마다 해리포터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사람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한 번에 느낄 수 있거든!' 대충 이런 내용으로 헤르미온느의 대사였는데, 론에게(어쩌면 해리에게?) 당차게 면박 주는 이 장면을 꽤 좋아했다.
감정의 층이 다단할수록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우선 우리 마음의 다양한 결을 인식하는 게 쉽지 않다. 무엇인지 알아야 쓸 텐데, 보통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표면적인 감정이다. 감정은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속인다. 사실 기쁜데도 기쁜 줄 모르고, 슬픈데도 슬픈 줄 모르고, 화가 났는데도 화가 난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웃는 남자'처럼 슬픈 눈을 하고 웃는다. 나도 가끔 그렇다, 그럴 것이다. 정말 모를 수도 있고, 모른 척할 때도 있다. 어쨌든 매일 그 모든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애쓰다 보면 탈진해버릴 것이다.
적확한 언어를 찾아 순간의 감정을 글자로 직조하는 작업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감정을 이성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때만이라도 작가의 시선을 찬찬히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내 감정과 언어의 세계는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을까, 작가의 언어로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내 것인 줄 알았던 내 감정도 온전히 느끼기 어렵겠구나, 생각하면서. 저자는 연못 가장자리에 쭈그리고 앉은 아이처럼 인물들의 내면을 빤히 쳐다보고, 성숙한 언어로 풀어낸다. 식생을 관찰하는 생태학자 같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배양 접시를 들여다보는 연구원이나 집중해서 얇은 단무지를 젓가락으로 떼어내는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작가가 탐구하는 대상은 당연히 '인간'이다.
아이의 호기심과 어른의 문장이 만들어낸 이 작품을 한 줄로 거칠게 요약한다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현대인의 내면 보고서'가 아닐까. 작가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지. 그리고 이런 삶도 이렇게만 머무르지는 않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늘 이동하고 있고, 과정이 낳을 결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도착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제자리걸음인 듯한 삶도 사실 한 곳에 머무르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03.
작품의 주인공은 버지스 집안의 남매인 첫째인 짐, 둘째 밥, 그리고 막내 수전이다. (짐은 지미로, 밥은 바비로, 수전은 수지로 불리곤 한다.) 어릴 때 밥이 자동차를 조작하다가 실수로 사고를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매는 평소 아픈 과거를 묻어둔 채 사건에 대해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던 짐과 밥은 메인을 떠나 뉴욕에 정착한다. 짐은 부유한 코네티컷 출신의 헬런과 결혼해 뉴욕의 거대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변호사를 그만두고 팸과 이혼한 밥은 법률구조협회 항소부에서 사건기록을 검토한다. 수전은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메인 주에서 아들 잭을 키우며 살아간다. 어느 날 그 잭이, 짐과 밥의 조카가, 소말리 난민의 정신적 버팀목인 이슬람 사원에 냉동 돼지머리를 던져 넣는다. 잭이 혐오범죄로 기소당할 위기에 처하면서 남매는 다시 메인 주에 모이게 된다.
소설의 두 중심축은 남매가 어린 시절에 겪은 끔찍한 사고와 조카 잭이 벌인 일탈이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는 밥은 소심하고 가끔 자신감 없는, 대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유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밥은 가족의 우상인 짐에게 시시때때로 빈정거림을 들어도, 동생인 수전에게 무시당해도 익숙한 듯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는 착하면서 무기력하다. 소설 초반에는 형제들끼리의 흔한 옥신각신으로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공격의 방향이 밥만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두 번째, 잭이 이슬람 사원에 돼지머리를 던진 일. 가족 내 갈등을 예고하는 첫 번째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의 행동은 생존을 위해 미국에 정착한 소말리족과의 갈등을 촉발한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사건과 첫 번째 사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잭의 일로 과거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첫 번째 사건이 재점화되기도 한다. (소설 속 말처럼, 아버지의 사망이 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밥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사건의 여파가 현재에 이어지는 한, 과거의 자장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은 짐에게도, 수전에게도 마찬가지다.
***
평소에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래도 가족이니까'가 조금 다른 의미로 와 닿는다.
너도, 나도, 그도 모두 인간이니까. 부족하지만 서로 지지해주려고 노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