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지음 / 난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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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있을 때에도 만져지지 않았다. 피스타치오인지 피스타키오인지, 그런 알 수 없는 초록색 맛이 나던 여자애. 여전히 그렇게 혼란스럽게 곤란한 인간일까? 어딘가 나사가 빠졌던 건지, 도무지 똑바로 직선적으로 말하는 법이 한 번도 없었다. 표정도 늘 떨떠름한 초록색이었다.(p.27)
옛날 사람들처럼 편심, 촌심, 단심 같은 단어들을 쓸 때마다 지잉, 하고 뭔가 명치께에서 진동하고 만다. 수천 년 동안 쓰여온, 어쩌면 이미 바래버린 말들일지도 모르는데, 마음을 '조각' 혹은 '마디'로 표현하고 나면 어쩐지 초콜릿 바를 꺾어주듯이 마음도 뚝 꺾어줄 수 있을 듯해서. 그렇게 일생일대의 마음을 건네면서도 무심한 듯 건넬 수 있을 듯해서.(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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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는 직장에 다니며 장르문학을 쓰는 작가다. 남자는 사설 보안업체에서 일한다. 둘은 헤어졌다.
남자에게 여자는 파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엇이었다. 떠올려봐도 여전히 난감하고 애매한 맛이다.
여자는 난감하고 애매한 것이 세상의 맛이라는 사실을 안다. 여자에게 남자는 알지 못하는 것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다.
여자는 마음의 무게를 알기에 쉬이 말을 흘리지 못한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건네주고 싶다. 초콜릿 덩어리를 동강 내듯 마음을 뚝 떼어내어 보여준다. 꺾인 자리에서, 여자의 마음에서 잔 가루가 날린다. 남자는 이를 보지 못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위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상대방을 완전히 알 수는 없는 거라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받을 자격이나 사랑받아야 할 마땅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람에게 난 것은 흠결이 아니라 저마다의 옹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음을 전달하는 일의 수고스러움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바란다면 내가 속한 주파수의 자장 안에 같이 잠길 수 있는 사람.
초콜릿 바를 조각내 주듯이 마음도 꺾어줄 수 있을 듯하다, 라는 말을 입안에 넣고 녹인다. 끝 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