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그 10. <푸드로드>

문정훈 그리고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랩 지음 / 플루토

by 몬순



자주 듣는 외국 팟캐스트에서 들은 농담조의 말이 생각난다. 진행자는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청소년 중에서 미래의 유명 셰프가 수도 없이 배출될 거라고 했다. 처음 듣고는 무슨 말인가 했다.


말인즉슨 누구나 집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한 도시 전체가 엄격한 격리에 들어갔다. 스페인 마드리드는 격리가 해제되나 했는데 5월말로 연장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집에서 뭘하지'라는 질문은 세계인의 화두가 됐고,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도전과제로 발전 중이다. 사람들은 집에서도 제대로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처박아 뒀던 먼지 앉은 그림 도구와 각종 취미생활 소품을 꺼내게 됐다. 그중 요리는 가장 인기 있는 도전 과제다. 칼 한번 쥐어보지 않았던 사람도 가족들을 위한 한끼 식사를 만들고, 먹을 줄만 알았던 빵을 느닷없이 굽는다.


우리에게는 유튜브와 시간이 있다.


오븐을 조리 도구 대신 ‘빈 공간’으로 인식했던 나 또한 요즘 빵 굽는 재미에 빠졌다. 만든 것을 먹을 수 있어서 좋고, 함께 먹은 이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재밌다. 그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런 기대가 있었다해도 하루이틀 만에 반죽의 가스가 빠져나가듯 금방 사라졌을 것이다. 단지 적나라한 반응을 관찰하며, 함께 결과물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데서 재미를 찾는다. (지금까지는 유튜브를 보고 따라만든 감자빵이 가장 반응이 좋았다. 감동의 레시피, 감사합니다.)


초조와 의구심이 들어간 반죽 덩어리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느낀 처음의 감격. 이제는 그 감격을 지나, 더 맛있게 만들겠다고 욕심 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배울 게 산더미구나, 라며 아득한 계단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어떻게 해야 더 맛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신 분처럼 가족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띄울 수 있을까. 분명 같은 재료로, 같은 시간을 들여 만든 것 같은데, 라고 간혹 의아해하면서. (칭찬과 물개박수에 대한 욕심을 아직 버리진 못한 것 같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 책이 어느 새 손에 들려 있었다. 분명 ‘음식’, ‘푸드’, ‘미각 탐험기’라는 문구들에 홀렸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저자와 그가 이끄는 서울대 푸드비즈랩 구성원들의 질문은 그 규모가 더 크다. 이름에서 정체성이 이미 드러나는 푸드비즈랩은 식품산업과 긴밀히 연계해 실생활과 접점이 높은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다.


‘왜 맛있을까’를 탐구한 책은 예전에 읽은 적이 있다. 찰스 스펜서의 <왜 맛있을까>라는 책이다. 이 책은 맛을 느끼는 것은 입이 아니라 뇌라고 주장한다. 음식에 대한 개개인의 감상은 미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에 밀접한 영향을 받으며, 기업과 유명 셰프들은 이런 연구 결과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음식을 더 맛있게 보이게 하는 온도와 습도, 소리, 색상이 있다고 말한다. 즉, 맛의 공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책에 따르면 감자칩의 바사삭거리는 소리를 증대시키는 것만으로 제품의 판매량이 늘어났다.


책 <푸드로드> 역시 우리가 느끼는 ‘맛있다’가 미각의 산물 그 이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2011년 푸드비즈랩이 출범한 이후로 연구소 사람들이 직접 발로 뛰었던 프로젝트를 챕터별로 자세히 소개했다. 구성 덕분에 <왜 맛있을까>보다 더 재미있고 쉽게 읽은듯하다. <왜 맛있을까>의 장 구분은 후각, 촉각, 시각 등 감각에 따라 나뉜다. 각 장별로 다양한 사례가 소환되기 때문에 좀더 개론서 같은 느낌이다. 반면 이 책은 좀더 가볍고 쉽게 읽기 좋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느낀 장점이다. 저자 일동의 노력과 연구가 가벼웠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사실 프롤로그에서부터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바다 단백질 기반 간편식'의 특성을 찾기 위해 65개 제품을 하루에 시식했다는 짤막한 이야기에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오뎅, 저도 참 좋아합니다만 그래도 그건. 생각지도 못했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반짝반짝한 신제품 뒤에 이런 눈물겨운 이야기가 있을 줄은.


그뿐만 아니다.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김치와 고추장의 맛을 객관적인 시각 그래프로 표현하기 위해 시중에 출시된 거의 모든 고추장과 김치를 매일매일 먹었다. 기계로도 달고 짠맛을 측정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인간은 달고 시고 짜고 쓴맛을 개별적으로 느끼는 대신 맛의 상호작용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초코 우유에 살짝 소금을 넣으면 오히려 단맛이 솟구치는 것처럼, 당도계와 염도계로 포착되지 않는 맛의 오묘한 세계란. 어쨌든 이렇게 직접 맛을 보며 느낀 맛을 수치화하는 것을 '관능실험'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관능'의 용례와 참 거리가 먼 처절함이다.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 더 잘 노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미션을 위해 위장을 희생해야 하는 아이러니라니.


푸드비즈랩은 대학교 부속 연구기관이지만 활동 영역이 실험실과 강의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타 학문은 물론 다양한 기업과 연계해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 문제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5장 <찾아라, 우리 토종닭!>에서는 토종닭의 의미와 토종닭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화를 설명한다.


한국의 토종닭은 더 빨리 자라고 살집이 두둑한 육계에 밀려 사라져 간다. 사라지는 옛것에 대한 감상적인 아쉬움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종자 주권이 취약해지고 유전적 다양성이 소멸된다는 실질적인 타격이 있다. 저자와 연구진들은 토종닭 보호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답을 찾았다. 토종닭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를 공략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명 셰프의 존재가 중요했다. 연구진은 한국의 셰프와 협력해 토종닭 관련 메뉴를 내놨고, 삼겹살집에서 구워먹을 수 있는 토종닭 숯불구이 메뉴를 개발중이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길. (이 장을 읽으며 청양고추 역시 IMF때 외국에 종자권이 팔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의 내용을 글로 읽으면서 스치듯 궁금했던 점을 뜻밖에 해소하기도 했다. 3장 ‘국산 맥주는 정말로 맛이 없을까’에서는 블라인드테스트를 통해 브랜드가 맛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했고, 8장 ‘팔리는 목소리, 뜨는 광고’에서는 식품 광고에서 잘 팔리는 특정 목소리가 존재하는지 실험했다. 식품 제조업체의 신제품 기획과정이 궁금하다면 산학협력을 통해 신제품을 제안했던 9장의 내용도 흥미로울 것이다.


먹고 마시며, 다음에는 '논다'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나 저자와 푸드비즈랩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일한다. 워낙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다보니 넓게 보는 시야가 필수일듯 싶다. 실제 연구에 붙는 크고 작은 난관을 해결하는 상황대처능력은 덤. 이들의 실증적인 연구가 1차 생산자와 가공업체들에게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힘이 되기를, 소비자에게는 제품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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