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그 25. <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by 몬순




어쩌다 보니 가정 내부의 문제를 다룬 추리소설과 스릴러 몇 편을 같은 주에 우연히 읽게 됐다. 작품들이 같은 출발점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신기했다. 가족 관계가 이야기의 구심점이 된다는 것을 제외하고 배경, 주요 캐릭터, 사건 모두가 제각각인 이야기들이었다. 가족을 향한 주인공의 주요 감정과 그런 태도가 생겨나게 된 계기도 마찬가지였다. 간격이 크지 않았던 독서가 서로 간섭현상을 일으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결이 비슷한 작품을 큰 시간 차이를 두지 않고 읽으면 또 걱정되는 것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작품 간의 서열을 매기게 된다. 나름의 기준에 따른 판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경우 나는 소위 '초두 효과'의 노예가 된다. 첫인상이 경험에 대한 평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인데, 금사빠인 심사위원처럼 처음 몇 페이지 동안 나도 모르게 '최애 작품'을 이미 확정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초반 내용이나 스타일을 보고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인지 아닌지 빨리 깨닫는 것일 수도 있다. 그간의 독서 경험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니까. 그러나,


이미 호불호의 레벨을 어느 정도 맞춰두고 읽어가다 보면 눈에 렌즈가 딱 붙어버린다. 착한 놈이 미운 짓을 하면 매력 있구나, 하고 미운 놈이 착한 짓을 하면 역시 너는 미운 놈이구나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더 후해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에 대해서는 계속 박한 평가를 내린다.


아예 고칠 수는 없을 것 같으나, 이 사실 자체를 깨닫고 나서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또 책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오래된 독자들이 그렇듯 나도 책을 보는 나만의 기준을 신뢰하고,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성향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비교 대상이 있을 때는 왠지 조심하게 된다. 느슨한 공통점으로 연결된 작품들을 의도치 않게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된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내면화된 평가기준 여러 개를 적용해서 각각의 점수에 정당한 점수를 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늘 읽지 않은 책이 더 재밌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꼼꼼하고 진득한 독자가 아니다. 마지막 책을 덮고 나면 총점에 따라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포토샵 레이어가 깔리듯 순위가 매겨지고 만다. 나 말고도 그 책을 사랑해줄 사람은 많겠지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책과 작가는 얼마나 억울할까.


인간관계로 적용한다면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주방일을 하며 내 불평을 듣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고등학생 때였고, 담임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열심히 토로하고 있었다. 불만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엄마의 대꾸를 똑똑히 기억한다. "너 작년에도 담임선생님 마음에 안 든다고 했잖아." 때는 학기초였다. "지금 작년 선생님이랑 비교하는데, 너 작년에도 학기 초에는 담임선생님 별로라고 했어." 그랬었나? 내 미주알고주알을 백색 소음처럼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종합적인 판단을 내놓은 것도 신기했지만, 기억을 떠올려보고 엄마의 말이 맞다는 데 더 충격을 받았다. 엄마 말대로 늘 학기초에는 이런저런 불만이 있었고, 학년이 바뀔 때는 헤어진다는 사실이 섭섭해서 어쩔 줄 몰라하곤 했다.


이야기의 결론이 왠지 자기 칭찬으로 끝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차이점에 몰두해서 상대를 깎아내리더라도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대의 장점을 콕콕 발견해내는 사람이고, 그래서 나는 내가 결국 옳은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래서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일에 특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책이든 사람이든 상황 때문에 눈이 흐려져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내 정체성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써놓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왜 책 이야기는 안 쓰고 자기 분석을 길게 늘어놓았냐.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스스로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아무래도 주간 읽었던 여러 책 중 가장 재미있었던 <조용한 아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전체 줄거리는 흡사 부부의 세계인데, 스타일은 다르다. 아내가 살인자로 각성한다는 점에서 <나를 찾아줘>와 같은 가정 스릴러도 생각나는데, 이처럼 폭주하는 복수의 쾌감에 초점이 맞추어진 작품은 아니다. 더 잔잔하고, 더 내밀하다. 캐릭터의 크고 작은 심리 변화를 촘촘히 따라가면서, 어떻게 살인자의 자아가 각성하게 되었는지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책은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시각에서 교차 서술로 진행된다. 그 여자인 조디와 그 남자인 토드는 부부 사이다. 그리고 조디는 외도하는 남편을 둔 많은 아내들 중 한 명이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떠나지 않을까. 자립할 물질적, 정신적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는 않다. 조디는 석박사 학위가 몇 개나 되는 아들러 심리분석가이자 심리상담가다. 그가 관계 종료를 선언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안온한 일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끔 요동치는 일이 있어도 자신의 가정생활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같은 모양으로 쭉 흘러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외부 사람과 사건에 큰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일상 루틴을 지키는 일에서 충분한 만족을 느낀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집착으로 이성이 마비된 것도 아니다. 그가 아직도 '프로이트적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여자들에게 자신의 성적 욕망을 투사하는' 사람이라고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남편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관계의 미래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조디가 왜 살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까. 토드가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조디는 물건을 숨기는 등 사소한 복수를 하는 데 그쳤다. 이번 외도 상태가 특별히 충격적이긴 했다. 하지만 조디는 이미 토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개과천선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기대지도 않는다. 무너질 기대가 없기에 바닥에 떨어졌을 때의 충격파가 적고,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의지도 있다.


그런데 왜, 라는 질문에 계속 붙들려 한 번도 책을 덮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판을 깔고, 인물의 행동을 통해 내면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의 솜씨가 아주 훌륭하다. 작가 소개를 읽고 나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던 경력, 다방면에 걸친 오랜 저술활동이 준비된 신인을 만든 조건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이 작품이 첫 소설이자 유작이 되었다는 사실이 몹시 안타깝다.


일상에 충실했고, 삶에 단단한 믿음이 있었던 조디의 변화를 보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것을 체감했다. 안정감 있는 성격은 좋은 점이 많고, 누군가에게는 좀 배워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맹점도 있다. 조디의 경우가 그랬다. 발목을 붙들렸고, 현재를 과거로 끊어내려는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책 속에 나오는 조디의 심리상담을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에서 일관성이나 특징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가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바라는 모습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합리적인 결론이라기보다 등골이 서늘해서 한 생각이라는 게 맞겠다. 조디가 살인자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도 그를 떠나지 않았던 첫 번째 순간, 조디의 삶은 정해진 엔딩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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