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그 39.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by 몬순

히라가나도 겨우 읽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알게 된 것. 주인공 이름인 히나코는 일본어로 병아리를 일컫는 히요코와 발음이 비슷하다.


브런치 화면을 띄우고 난 후 글을 쓰기 직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난 것.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많지만 내가 읽은 것 중 이 책과 구성이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작품은 한국 소설 <달리는 조사관> 일지도 모르겠다는 것. 그 책 역시 재미있게 읽었지만 기억이 흐릿하다. 이 계기로 다시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 사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은 언제나 눈에 띄어서 죄책감이 들지만,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쉽게 잊어버리면서도 전혀 켕기는 구석이 없다.


주인공 히나코는 갓 노무사가 된 사회초년생이다. 자신까지 총 4명이 일하는 작은 노무사 사무실에서 일한다. 40대 중반의 동료에게서 '병아리'라는 놀림을 받을 때마다 저는 히나코지 병아리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은근한 끈기가 있다. 이 은근한 일관성이 일하면서 '사회보험노무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덕분에 파견 직원으로 일하며 "거기 직원"이나 "그쪽 여자"로 불리던 과거와 작별하고 자신의 담당 업무에서 전문성을 쌓을 기회가 생겼다.


히나코의 직업인 사회보험노무사는 고객사를 위해 노동 및 사회보험 관련 서류를 처리하고, 노무 관련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무사의 업무 범위도, 책에 등장하는 '재량근무제' 등 관련 법률 규정도 한국과 얼추 비슷한 것 같다. 히나코는 트러블메이커와는 거리가 멀지만, 상사에게서 가끔 주의하라는 당부를 듣는다. 회사가 클라이언트인 것을 잘 알지만 사건 당사자에 대해 습관성 공감과 몰입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 시장의 상황과 관련 법규가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히나코가 특유의 관찰력으로 인물을 관찰한다는 점.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출산 휴가 당연히 필요하지, 근데 이 업계 특성상:)',

'무단 퇴사는 했지만 못쓴 연차에 해당하는 급여는 받고 싶어',

'필수 서류가 없어졌네, 근데 우리 직원이 아닌 네가 눈에 밟히네..?'


책에서 다루는 문제적 상황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병아리 같은 히나코가 사건을 해결하며 사람들의 민낯을 보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뻔하게 보였던 사건 뒤에 전혀 다른 속내가 숨어있다. 그럴 때마다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대사를 했던 사람이 등장인물의 얼굴에 겹쳐 보이곤 한다. 자신은 나서지 않고 남을 부추겨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사람, 희생자처럼 보였지만 사실 자신의 앞가림을 제일 야무지게 해냈던 사람 등등.


출판사의 소개처럼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라고 불릴만하다. 신체적 폭력 지수는 0에 가깝다. 피도, 살인도, 모두가 일찍 퇴근하고 난 다음날 아침 시체로 발견된 같은 부서 동료도 없다. 그저 씁쓸함만이 있다. 완전한 아군도, 완전한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입안에 맴도는 맛.


병아리 같은 신입은 구르고 구르고 버텨서 심드렁한 닭으로 거듭난다. 알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얘기다. 이야기 속의 히나코 역시 요령을 얻고 인류애를 다소 희생하는 그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그것이 일의 보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은 완전히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 덕분에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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