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여기서 멈춰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지금 하려는 일이 흑역사로 남게 되리라는 예감을 무시하지 못할 때다. 갑자기 찾아든 이상한 끌림 때문에 일을 벌이는데, '이상하게도'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착착 진행된다. 교차로에서 연달아 초록불을 만나듯 모든 일들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멈칫하게 된다. 일이 잘 풀리는 동안 찾아드는 마음속 '멈칫'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혼란은 가중된다. 연속으로 초록불을 마주치는 것 같은 흔치 않은 행운이 나에게 쉽게 벌어질 리 없다는 식의 막연한 경계심과 두려움인지, 확실한 근거에 뿌리내린 합리적인 의심인지.
가보지 않은 길을 앞에 두고 마음이 흔들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느끼는 불길함은 어디서 왔을까. 새로운 도전의 발목을 잡는 '타성에 젖은 과거의 나'인지, 소위 삶의 빅데이터에 근거한 타당한 경고음인지 알 수 없다. 정답은 모른다. 어느 경우나 선택은 두 가지라는 것만 안다. '고', 하거나 멈추거나.
<유토피아 실험>의 저자 딜런 에번스는 고, 를 외쳤고 그래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18개월 간의 모의실험과 이후 6년 동안의 마음 정리를 통해 완성된 책이다.
무슨 실험이었나. 미쳐가는 지구 속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들과 문명 붕괴 이후의 삶을 가정하고 생존능력을 점검한 집단 실험이었다. 무대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역. 참여자들은 먹을 음식부터 입을 옷까지, 모든 의식주를 공동체 내부에서 스스로 혹은 협동을 통해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결론적으로 딜런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간다. 붕괴한 것은 현대 문명이 아니라 실험을 계획한 딜런 그 자신이었다.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딜런은 결국 공동체를 떠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고 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책은 공동체의 출발부터 딜런이 망가져가는 과정, 그리고 그가 떠났던 일상으로 돌아오는 엔딩까지를 생생히 복원한다. 마야 문명의 몰락에서 영감을 받은 딜런이 어떻게 실험을 구상했고, 어떻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퇴로를 차단했으며, 다른 두 명의 지원자와 공간을 만들게 되었는지. 자연이 그들의 예상보다도 얼마나 더 냉혹했으며, 칫솔 같은 작디작은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철저한 문명 붕괴를 전제한 실험을 위해서 관청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아이러니했는지. 또, 사람들이 얼마나 모순적이며 통제 불가능한지.
사람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다. 이상주의자들과 이상적 공동체를 꾸리는 계획은 애초의 지향점을 벗어난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와중에 기세 등등하게 안온한 삶을 박차고 나왔던 딜런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에 이른다. 문명의 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납득하며, 떠난 다음에야 떠나온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실험 지원자가 다쳐 병원에 데려다주었을 때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들이 대비하는 근미래에는 의료시스템 또한 붕괴될 것이고, 논리적으로라면 지원자를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인터넷 또한 지원자 모집 외 다른 이유로는 쓸 수 없어야 한다. 딜런은 심경의 변화를 겪고 회의에 빠지지만, 자신이 침잠할수록 다른 지원자들이 열기에 들뜨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딜레마 사이에서 나오는 갈등과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백기를 든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실험에서 이탈하고, 나아가 실패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일이 결코 쉬웠을 리 없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그 이후로 숱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딜런은 자신을 솔직히 돌아보게 된다. 왜 인류의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그렇게 집착했는지, 자신을 이끈 과대망상과 충동이 어쩌면 우울증의 징조였다는 것도.
에드먼드 버크는 1757년에 쓴 미학 논문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두려움은 모호함 때문에 더욱 커진다고 했다. 두려움이라는 괴물은 얼굴을 감추고 있을 때 더욱 공포를 자아내는 법이다. (p.342)
딜런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간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딜런 역시 과거의 실패에 대한 마음의 동요가 점점 줄어들었을 것이다.
잡힐세라 도망쳤던 그는 드디어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딜런은 세상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두려움을 관통해봤다는 점에서 자신의 실패를 긍정한다. 그가 인용한 대로, 두려움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이 두려움 자체를 키운다. 그 순간 고, 하지 않았다면 크게 넘어지지는 않았을지언정,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공포감에 종종 휩싸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 말걸 그랬어. 이 말을 되뇌이는 것 역시 이미 해보았기 때문이다. 딜런은 또다시 자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일이 있다면 '유토피아 실험'에 그랬던 것처럼 진심을 다해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자신의 실패를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란 어렵다. 불필요한 자기 연민과 방어심리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히 과거와의 감정적인 다리를 끊어야 한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되, 그때 느꼈던 쓰라림과 고통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용기 있는 사람만 이런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에서) 심리적 성장은 언제나 고통과 동의어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곱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꼭.